: 김승일, 「재미의 발견(2021)」
책을 보게 되는 경위는 다양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저자를 보고 산 책이다.
국제학·경영학 전공, 문화부 기자 4년, 퇴직 후 글쓰기에 매진.
저자의 글을 알게 된 건 모 사이트의 알고리즘을 통해서였는데, 주요 콘텐츠는 일일 아침 경제 기사 요약 보고. 계속 보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기업에서 읽는 일일 동향 보고서와 내용과 형식이 같아서. 알짜배기만 골라놓은 데다, 가독성도 좋다.
그렇기에 책도 기대가 되었다. 저자의 경력과 강점이 그렇기에 이 책에서 기대하는 바 또한 당연히 문화부 기자의 시선으로 본 콘텐츠 동향과 분석이었고, 책의 내용도 기대와 일치했다.
제목이나 표지만 보면 무슨 작법서 같은 인상이지만, 펼쳐보면 작법서보다는 강의록에 가깝다. 그 왜, 가끔 있잖은가. KOCW 같은 공개강의나 인터뷰에서와는 달리, 강의실에선 편하게 얘기하시는 교수님들. 대개 현장에 있다 교수가 되신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었는데, 저자도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저자 본인도 편안하게 작성한 만큼, KOCCA 연구보고서보단 훨씬 말랑말랑한 책이다.
그리고 강의록이라는 비유가 과장은 아니다. 책의 톤도 그렇고,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여서 더욱. 게다가 텍스트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건지, 이미지 한 장 없이 글만 있다. 그래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이미지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도 하고.
마음에 들었던 건 어투였는데, 친근함을 준답시고 구어체로 서술하다 이따금 선을 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 책은 어투가 강의에 가까워서 그런 불편함을 주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재미는 콘텐츠. 그중에서도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룬다. 특이, 전의, 격변으로 설명하는데,
특이(特異):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름.
전의(轉意):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
격변(激變): 상황 따위가 갑자기 심하게 변함.
이 셋이 당혹감과 집중을 이끌어내는 핵심. 더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야만 본다는 것.
이렇게만 보면 콘텐츠에 반전과 파괴만 있으면 되는가 싶은데, 아니다. 형식의 파괴는 형식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해 없는 파괴는 혁신이 아닌 단순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콘텐츠를 접하고 난 뒤의 불쾌함은 없어야만 한다. 이유는 불쾌함은 콘텐츠를 완전히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 그리고 불쾌함이 없어야만 다시 찾는다. 그러니까 특 · 전 · 격은 단순히 시선을 끄는 비법이 아니라, 콘텐츠를 다시 찾게 만드는 비결도 포함해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이 요소 세 가지의 언급만으로는 크리에이터의 '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여기에 갖가지 사례로 보충해준다.
여기서 언급되는 콘텐츠는 보진 않았어도 이름은 들어본, 그러니까,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 위주로 다룬다. 영화관부터 게임 심지어 인터넷 방송인까지 전부 다루는데, 이런 책이 늘 그렇듯 대충 자기가 어느 분야에 무관심했는지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트렌드와 인기 요인으로 한국인의 콘텐츠 선호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가령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예시로 들자면, 이 게임의 성공요인을 얘기할 때 소비자들이 돈이 아닌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는데, 정작 그 공정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의 조건은 설명이 없었다.
이 책에선 '불안정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게임 룰과 진행을 설명하면서 왜 배틀그라운드에서 공정한 게임이 형성되는지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존의 분석에서 약간 미흡했던 부분을 채워준다.
뉴트로의 경우도 좋은 예시다. 뉴트로의 경우 옛날 가요의 역주행, 곰표 맥주 등의 사례가 언급됐는데, 뉴트로 열풍에 올라타기 위해 나타난 복고를 흉내 낸 새 브랜드의 언급도 있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브랜드들은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뉴트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젊은 층이 옛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옛 브랜드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또한 2030세대가 가진 '좋았던 옛 시절'의 환상도 세일즈 포인트이므로 그 당시에 실존했던, 역사성을 가진 브랜드만이 뉴트로의 단 과실을 먹을 수 있다는 씁쓸한 얘기였다. 쉽게 말해 뉴트로 시장은 신생기업이 어설프게 발 담글 곳이 아니라는 것.
이 책에선 성공 요인을 좀 다르게 다루는데, 일례로 SBS드라마 유튜브 채널에서 <올인(2003)>은 뉴트로 기류 탑승에 성공하고, MBC드라마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또 보고(1998)>는 뉴트로 탑승에 실패한 이유를 다룬다.
요약하면 MBC는 단순히 15분짜리 축약 편집만 해서 올리고, SBS는 드라마에서 일본 제품이 나오자 '시국 때문에'라는 자막과 함께 빨리감기로 돌려버리거나, 배우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장면에 '설마'라는 시청자가 보일 법한 반응을 자막으로 넣는 등. 요즘 사람 감각에 맞는 편집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단순히 옛 것을 끌어올려서만은 성공할 수 없고, 요즘 세대 감각에 맞는 옷을 좀 입혀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자의 분석은 공산품을 포함한 산업 전반에 해당하는 얘기고, 이 책은 콘텐츠만을 다루기 때문에 그렇다. 범위가 좁아진 만큼 자세해진 것.
이것 외에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콘텐츠 소비 심리와 인기 비결과 그러한 콘텐츠를 멀리하는 소비자의 심리도 해설하는 등, 적어도 봐야 할 건 다 들어있다.
이 책은 진부하지 않은 콘텐츠의 핵심요소를 다루고, 또 그런 콘텐츠를 찾는 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예시의 대부분이 고전이 아닌 최근 한국 트렌드와 그 분석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읽으려면 좀 빨리 읽어야 한다. 트렌드 분석은 새것일수록 가치가 있으니까.
이 책은 21년 4월 6일에 발행된 책이다. 책 내용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사고, 빨리 읽었을 텐데, 어쨌든 지금도 늦진 않았다. 빨리 읽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