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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의 반딧불이 Nov 16. 2021

《히틀러의 부활, 독일 경제와 난민 문제》



 그가 돌아왔다. 


 2대 8 가르마에 엄지손톱만 한 콧수염의 그 남자.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전투적인 연설로 무장한 그 남자. 전 세계를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던 그 남자. 아돌프 히틀러. 2012년, 그가 돌아왔다.


 히틀러를 부활시킨 사람은 대필작가 4년 경력의 티무르 페르메스. 작가는 왜 이런 정치성 만땅의 위험한 인물을 되살렸을까. 당연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그를 지옥에서 건져 올렸을까.


 그것이 궁금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건지 출간 즉시 140만 부가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고, 영화로도 나왔다. 소설 원작의 영화가 늘 그렇듯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에펨코리아.


과거 인물의 생각틀로 현재를 비추어보는 시간여행 소설


 「그가 돌아왔다Er ist wieder da(2012)」. 시간여행(Timeslip) 장르이니만큼, 히틀러가 현시대에 온다는 줄거리만 봐도 내용이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발달한 현대 문물을 보고 놀라는 히틀러, 네오나치를 보고 실망하는 히틀러, 유대인 친구를 사귀는 히틀러, 다시 한번 선전·선동을 하는 히틀러, 유대인 학살과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히틀러, 현재 집권 세력과 독일의 문제를 꼬집는 히틀러…. 


 뭘 생각했건 정답이다. 소설은 그런 예상 범위 안에 안정적으로 착륙한다. 


 히틀러가 옷에서 진한 휘발유 냄새를 맡으며 깨어나는 독한 풍자*부터, 아이의 유니폼에 적힌 아디다스 상표를 이름으로 착각하고,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에 원을 그리는 제스처를 모르기도 하고, 통곡물 과자를 보고 빵조차 만들지 못해 급조한 식품으로 오해하기까지. 

 *히틀러의 시신은 휘발유로 화장되었다. 


 현대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막도 정신을 산만하게 할 뿐이라고 하기도 하고, 비서와 히틀러가 같이 다니는 걸 무슨 내연관계처럼 묘사하는 타블로이드지나, 전국에 텔레비전을 보급했으면서도 요리 방송만 주구장창 해대는 방송국이나, 네오나치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영웅이 된다거나. 뭐, 그런.


 이런 시간여행 장르에 필수적인, 현대로 온 과거인의 문화 적응기는 언제 보아도 재밌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 주므로.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씨네21.


히틀러에게 유대인 친구가 있었더라면


 이 소설은 나치 옹호인가 비판인가 조금 아리송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히틀러를 보는 시각이 약간 온정적이라 그렇다. 멋진 장면이나 정상적인 발언도 꽤 나와서.


 소설에서의 히틀러는 암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정에 약하고 동물과 아이를 사랑하는 순박한 면도 있다. 소설 외적으로 보자면 개연성 확보를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히틀러가 뼛속까지 나쁘면 그런 결말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테니까.


 히틀러와 함께 주인공 위치를 차지한 건 방송국 직원 베라 크뢰마이어. 성격도 발랄하고 유능한 데다 배려심도 깊은 크뢰마이어의 보필과 대화는, 어느덧 히틀러를 감화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크뢰마이어의 할머니를 만날 때 드러나는 사실은 뻔하다면 뻔하고 놀랍다면 놀라운 것이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한국경제.


 베라 크뢰마이어는 유대인이었다. 히틀러가 모두 죽이려고 했던 그 유대인!


 결국 히틀러는 사상과 좋은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사상을 버린다. 유대 혐오 사상을 버리고 달라진다. 이제 돌아온 히틀러는 국민에게 필요한 정치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파이낸셜뉴스.


소설이 주는 정치적 비전


 …(전략). 경제 기사를 보자. 매일 새로운 사람,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 말하고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사람이 다른 말을 한다. 이 사람은 전에 나온 사람보다 더 위대한 전문가라면서 왜 이렇게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 되었는지 분석하고, 앞서 말한 사람과 반대의 해결책이 최고라고 말한다. …(후략).

 과거엔 아무도 관심이 없던 경제 분야를 현대 사람들은 매일 접하고 있다.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경제 테러리즘이다. 주식으로 들어갔다가, 금으로 갔다가, 채권으로, 부동산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순진한 국민을 도박으로 내몰아 평생 모은 돈을 판돈으로 쓰게 만든다. 소박한 국민은 성실하게 일해야 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그런 국민이 돈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이거야말로 최소한의 것이고 정부로부터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다. 언론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을 정치가 허용한다는 것은 물론 어리석음의 최고봉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당황하는 건 더 바보같이 보인다. 걱정과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어 더 당황하게 된다.

250-251p. 소설 22장 中.


 소설 속 히틀러는 이미 독일 국민들에게 필요한 사회의 모습을 알고 있었으니까. 성실하게 일하는 자가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회. 국민이 도박으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주는 정치적 비전이다. 


 현실의 히틀러와 굉장히 동떨어진 비전이기에, 이걸 얘기하기 위해 굳이 히틀러까지 불러와야 하는가 싶지만, 천만에.


 이런 히틀러의 갱생과 비전의 제시는 그 히틀러조차 국가의 문제와 국민의 욕망을 알고, 또 적극적으로 나서 행할 줄도 아는데 왜 너희 정치인들은 못 하느냐는 통렬한 비판의 역할과 더불어, 히틀러조차 감화시키는 독일 사회는 그런 비전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쟁취할 수 있는 나라라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CNN 뉴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요 메시지는 나치와 히틀러의 미화도 아니고, 독일 사회의 비판도 아닌, 독일을 자랑하는 것이다. '지금의 독일은 그 시절의 독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히틀러가 돌아와도 우리 독일을 보고 감화될지언정, 우리를 선동하고 악에 빠뜨리진 못할 것이다.'라는 자랑.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악인도 악을 버리고 선인이 되는 나라라니.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따위의 말보다 훨씬 이상적이고 매혹적이다. 



2015년, 달라진 시선.


 그런데 영화에서의 히틀러는 다르다. 그냥 나치다. 보는 그대로 악당이며, 하는 말도 수십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유대인은 나쁘다. 외국인을 쫓아내자. 독일인만의 낙원을 만들자.


 소설에서 약간이나마 남아있었던 인간성은 당연히 없다. 친절한 크뢰마이어 양이 실은 유대인이었다는 걸 알고 실망해 험담을 한다거나, 정 많은 동물애호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강아지가 자기 손가락을 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쏴 죽이고, 심지어 개의 사체로 인형놀이까지 하는. 맛이 가도 단단히 맛이 간 인간이다.


 그렇기에 변화도 없다. 네오나치에게 테러를 당해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간이 되어 온갖 정당에서 러브콜을 받는 건 같으나, 딱히 희망적이진 않다. 그저, 옛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불길함 뿐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교보문고.


 이를 가능케 한 건 주변인들. 히틀러를 본 사람도 그냥 히틀러 따라 하는 얼치기 배우 정도로 여기고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하고, 그 이전에 이미 얼굴에 검은 칠 하고 오바마 흉내 내는 백인 희극인이 적절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


 부사장 벨리니는 히틀러를 보자마자 흥행의 냄새를 맡을 정도로, 또 히틀러가 첫 방송에서 침묵하는 걸 보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유일하게 눈치챘을 만큼 통찰력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눈앞의 이 히틀러가 가짜가 아닌 진짜배기 히틀러라는 걸 알아챘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 인간의 정체가 뭐건 시청률만 올려주면, 돈만 벌어다 주면 되니까. 이 히틀러가 옛날의 히틀러처럼 국민들을 선동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에도 독일 사람들은 70년 동안이나 나치의 해악을 들어왔으니 괜찮다며 대수롭잖게 넘겨버린다.


 방송이 혐오방지법 위반으로 신고를 받았지만, 검사마저도 히틀러 쇼 애청자여서 기소하지 않고 가버린다. 히틀러를 소개하고 보필했던 프리랜서 PD 자바츠키는 뒤늦게 히틀러가 진짜라는 걸 알았지만, 그를 막으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정신병원에 갇힌다. 


 국민들도 히틀러가 개를 쏴 죽였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방송에서 내쫓아버리긴 하지만, 곧 독일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꼬집는 히틀러의 소설을 읽고 다시 그를 방송으로 불러낸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 속에선 희망을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에서의 독일은 자신의 나라를 우회적으로 자랑하는 소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연합뉴스.


아랍의 봄, 독일의 겨울.


 언뜻 보면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히틀러의 차이에서 온 것 같지만, 실은 시간적 배경 차이에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11년.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14년. 이 기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로 '아랍의 봄(Arab Spring)'. 경제난과 사회 곳곳에 산재한 불평등, 포악한 독재자의 탄압 속에서 신음하던 아프리카와 중동의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독재자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다음 정권은 새 군부 세력과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 정부수반의 이름과 파괴된 기반시설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문제는 그대로. 독재타도와 민생안정을 목표로 싸웠던 국민들에겐 절망적인 결과였다. 


 그나마 안정화됐다는 곳도 이슬람 근본주의 특유의 반서구주의와 파괴된 인프라, 불안정한 치안 등이 외국 기업의 투자기피 요인이 되어 경제가 살아나는 일은 없었고, 나머지는 수 백 개가 넘는 부족 세력의 전투, 급진주의 세력의 침투, 군벌의 대두까지 겹치는 게 대부분. 혁명의 끝은 끝없는 전쟁의 수렁이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인터넷뉴스 신문고.


 그런 나라의 국민에게 주어진 운명은 총알받이와 노예 둘 중 하나.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인간적인 삶이 있는 땅, 유럽으로 향한다. 


 유럽은 피난을 잘 받아주었다.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체면 때문에라도 안 받아줄 수가 없었으니까. 마침 저임금 단순노무직 인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그래서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유럽에 들어온 난민은 많았고,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례로,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독일에 들어온 시리아 국적의 입국자 수는 약 10만 명. 2011년 이전에 들어온 시리아 입국자의 수가 2만 4천여 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굉장히 많은 수치이다.**

 ** 이승현, 《유럽의 시리아 난민유입과 독일의 노동정책》,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16년 3월호; BT-Drucksache 18/5799, 2015에서 재인용.


 아니, 그 3년 동안의 변화라고 해봐야 고작 난민 좀 들어온 건데, 그것 가지고 그들은 그렇게나 엄살을 부리는 건가? 조금 들어왔다고 히틀러 같은 세력의 재집권을 진지하게 걱정할 정도로 나라가 변했다면 오히려 난민보다는 국민들에게 문제가 있던 게 아닐까? 그들을 매도하기 이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느 사회 현상이 늘 그렇듯, 한 줄로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KBS 뉴스.


문제 1: 문화 갈등


 일단 제일 많이 언급되는 건 문화 갈등. 동화를 거부하고, 국가의 법률을 따르는 대신 샤리아법을 강요하는 공동체를 멋대로 꾸린다거나, 교리에 입각한 선민사상으로 인한 충돌, 난민 틈바귀에 몰래 숨어 들어오는 테러리스트, 돼지고기가 들었다는 이유로 세금으로 산 구호물품을 돌려주는 것도 아닌, 길바닥에 버리는 모습 등. 난민 유입 문제라기엔 애매한 것도 있지만, 어쨌건 난민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는 데에 일조하는 사건이 많았다.


 물론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소수이지만, 집단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건 시끄러운 소수(Vocal Minority)이므로, 동화될 의지가 있는 선량한 사람도 싸잡혀 피해를 보곤 한다. 아니, 사실 난민 반대자들이 내쫓아달라는 것도 그 시끄러운 소수들이다. 


자신의 설명에 울음을 터뜨린 난민소녀 림 사윌을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달래주고 있다. 출처: DW.com.


 독일인들은 동화될 의지가 있는 선량한 사람은 환영한다.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 림 사윌의 이야기가 적절하겠다. 2015년 TV 대담회에 출연한 사윌은 '독일에서 살기를 꿈꿔왔기에 독일어도 영어도 다 배웠고, 앞으로 통역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며 똑 부러지게 얘기했는데, 메르켈 총리가 '독일은 난민을 모두 받아줄 수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해 그만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를 본 독일인들은 메르켈을 향해 너무 심하다고 비판하며 사윌을 받아주자고 하였다. 모든 난민을 배척했다면 있을 수 없는 반응이다.


 그래서 독일인들도 악질분자만 비판하는 편인데, 문제는 그런 악질들은 선을 넘어도 혐오방지법 뒤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정부는 혐오발언이 각종 시위와 충돌을 부추긴다고 여겨 날이 갈수록 난민 이슈에 민감해져, 처벌과 규제 등 대응강도를 높이는데, 이런 탓에 논의 자체가 안 되는 상황.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 「바더 마인호프Der Baader Meinhof Komplex(2008)」 中.


 그리고 한 번 들여온 사람 내쫓기도 쉽지 않다. 난민들을 아직도 전쟁 중인 본국에 돌려보내는 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기도 하고, 또 목숨 걸고 넘어와 겨우 정착해 안정을 찾은 난민들이, 이제 와서 돌아가길 원하지 않을 건 당연한 일. 작정하고 돌려보내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럼 집집마다 숨은 난민을 경찰이 수색해 잡아가는 모양새가 될 텐데, 그 순간 세계 각국의 신문에 헤드라인 하나 걸릴 것이다. '가스 없는 나치'.


 그런데 참 슬픈 건, 그런 문화 충돌이 없었더라도 이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최후의 수호자Soylent Green(1973)」中.


문제 2: 노동 생태계 붕괴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언급되는 문제 중 하나는 노동문제이다. 인구의 대량 유입은 임금 하락 압력을 만든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람이 많아지니 '너 없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말이 허풍이 아닌 진짜가 된다는 것. 최저임금제를 채택했다면 임금 하락 대신 동결이 되는데, 물가는 매년 오르니 실질적으론 임금 하락이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 근로자가 노동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매우 미약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늘어난 인구가 곧 시장이 되어주어 수요가 늘고, 현지인과 일자리 충돌이 의외로 적다는 보도가 나오기에 난민 문제를 '무식한 네오나치들이 사람 패려고 대는 핑계'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박복영, 《난민이 해외 수용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제사회보장리뷰, 2018, 가을호 Vol. 6; Kerr Sari P. & Kerr W, 《Economic Impacts of Immigration: A Survey》, 2011에서 재인용. 


 네오나치를 보면 행동부터 문제적 난민보다 폭력적이고 구성원도 저학력 저소득 근로자가 대부분이라 하는 말이긴 한데, 그런 한마디의 말로 넘겨버릴 이야기는 또 아니다.



독일의 학제를 설명하는 이미지. 출처: 권은비, 오마이뉴스,《독일 15세 소녀의 일침... 한국 중학생이 보면 열받겠죠?》, 2015-03-10. 


독일의 학제: 약속된 자리를 보장하는 학교.


 독일의 문제를 파악하려면 독일의 학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건 중등교육.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교사 평가에 따라 기본학교(Hauptschule), 실업학교(Realschule), 인문학교(Gymnasium) 등으로 진학이 나뉜다.


 대학입학자격(Abitur)을 위한 커리큘럼이 짜여 있으나 학업 성취도가 우수해야 졸업할 수 있는 인문학교. 이론적 이해가 필요한 직업훈련을 받는 실업학교. 기초교육과 실무 능력 위주의 직업훈련을 받는 기본학교. 


 인간의 계급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알맞은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라 말은 하지만, 성적이 높은 순으로 인문학교, 실업학교, 기본학교로 진학하는 데다, 대학 진학률과 전문직이 되는 학생의 비율도 같은 순서에, 인문학교나 실업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기본학교로 전학조치를 받으니 실질적으로는 계급을 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진학을 결정하는 시기가 10살.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가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이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빠른 편인데, 너무 어릴 때 결정하다 보니 학생의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가진 배경에 좌우되는 면이 크다. 거기에 직업훈련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된다는 건, 다시 말해 직업훈련에 투자한 시간이 많다는 건 사실상 이미 결정된 진로에 관성이 붙는다는 말이므로, 뒤늦게 진로를 수정하려면 보다 높은 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비판이 있어 종합학교(Gesamtschule)나 통합학교(Gemeinschaftschule) 등이 생기긴 하지만, 아직 주류는 아니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KBS 뉴스.


 이런 제도가 오래도록 유지되었던 이유는 당연히 그럭저럭 잘 굴러갔기 때문이다. 고학력자의 공급이 처음부터 조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고학력자는 전문직 혹은 사무직을 보장받기 수월하며, 고학력자가 아니어도 청소년 시기부터 받는 이원직업교육(Ausbildung)은 기업과의 연계가 매우 긴밀하게 되어있어 취직 후에도 적응 문제가 적은 편이다. 심지어 기술과 직무 능력도 국내 업장이 대부분 표준·공통화돼있어서 같은 직종이라면 이직도 쉽다.


 또한 청소년기의 기업연계 직업훈련은 근로자로 하여금 해고나 임금 하락 등 여러 압력에서 구제해준다. 특히 외국인. 어릴 때부터 기업에서 배우고 일을 하며 호흡을 맞춰온 숙련공과, 언어도 안 통하고 경력도 불분명한 외국인 근로자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급히 들여와도 기술직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는 편이다. 실업률 높은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허가하지 않는 등의 자국민 근로자 보호조치가 되어있기도 하고.


 요약하면 처음부터 진로와 계급을 나눠주는 대신, 약속한 사회적 지위는 보장하는 학제이다. 처음부터 급을 나누긴 해도 일자리를 확실하게 보장한다니, 노력하여도 삶이 위태로운 사회의 사람들이 보기엔 괜찮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이론과 실제의 차이: 깨어진 약속.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문학교나 실업학교에서 부적응 문제를 겪은 학생이 기본학교로 전학 간다는 말에서 눈치챘겠지만, 기본학교 학생의 질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다른 것보다 불량학생이 가는 경우가 많아서. 게다가 불량학생이 유입되니 학교 폭력도 늘고, 면학 분위기 조성도 되지 않아 공부가 힘들다. 문제학교(Problemschulen)라는 멸칭이 붙은 이유도 그 때문.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은 회사에 들어가서도 사고 칠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니 기업에선 기본학교 학생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분별을 위해 구직자에게 대학입학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경제 둔화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도 공급 부족을 겪으면서 기술직을 지망하는 인문학교 학생이 늘어났다. 때문에 대학입학자격을 얻기 힘든 기본학교 학생들은 노동시장에서 점점 도태되는 상황. 결국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살게 된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뉴스1.


저임금 일자리와 대체가능성.


 저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저숙련 직종. 막말로 팔다리 멀쩡하고 돈 계산할 줄 아는 머리만 있으면 되는 일. 이런 직종의 문제는 근속연수와 숙련도가 쌓인다고 해서 근로자의 대체가능성(Substitutability)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고참도 신참으로 갈아치우기 쉽다는 말.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무학력자나 외국인 근로자 등으로 언제든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임금동결·하락 압력이 심하다. 그래서 안 한다. 사실, 기피직종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면 자연히 고용 유인을 위해 임금을 올리기 마련인데, 외부 인원의 유입이 있으면 급여를 올리지 않아도 구인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안 올린다.


 물론 독일 정부도 그런 걸 예상 못 한 건 아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을 창설할 때 몇 가지 조항을 만들어뒀다. 그런 외부 압력에 취약한 업종을 보호업종으로 지정해 국가 간의 도급계약 협정이 없으면 근로자를 파견하지 못하도록 해 숫자를 제한하고, 외국인도 독일에서 일한다면 독일의 임금 규정을 따르도록 해두었다. 자국민도 외국인으로 똑같은 값으로 해두면 기업은 자국민 쓸 테니까.


 근데 2011년에 풀렸다. 저 조항들은 과도기적 임시 조항을 연장한 거라, 여기서 더 연장할 수도 없었다. 결국 외부 유입이 생기니 압력이. 여기에 아랍의 봄으로 인한 난민까지. 이땐 최저임금제도 없어서 그 충격을 직격으로 받았다.


 문제는 일이 이렇게 되니 학교가 자리를 보장한다는 사회적 약속은 깨져버린 것. 그러니까 저임금 노동자는 단순히 노력하지 않은 저학력자라기보다는 국가에게 배신당한 사람, 약속된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동아일보.


비정규직, 미니잡.


 독일에서 저임금 근로자가 범람하게 된 계기는 하르츠 개혁. 그로 인해 생긴 소규모일자리(Mini-Job)는 근로자를 녹슬게 만들었다. 근로자의 월 소득이 450유로 이하인 경우 근로자에게 소득세와 사회보험 가입 면제를, 사용자에겐 낮은 보험료 부담률의 혜택을 주는 정책이다. 진짜 대충 설명하면 1명 월급 쪼개서 3명 고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 


 싸게 쓰는 만큼 주말에 몰아서 일하거나, 평일에 적은 시간으로 근무하는 계약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제대로 이루어지면 2,3개의 미니잡 혹은 미디잡(Midi-Job, 월 451-850유로의 일자리)을 병행하며 돈을 벌 수 있지만,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 그냥 450유로 받고 전일제로 일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추가지원금(Aufstocken)이 주어지는데, 빈곤 위험선 1,000유로에 맞춰서 부족분을 지급받으므로 450유로를 벌었을 경우 주 정부에서 550유로를 받게 된다. 그러니 최저소득은 1,000유로. 유럽 저소득자를 천 유로 세대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YES24.


 어쨌든 정부에서 주거나 말거나,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계속 오르니 실질소득은 연마다 감소. 그렇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 날이 갈수록 팍팍해진다. 거기에 한 푼 아쉬워 건강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 미니잡 종사자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나이가 들고, 혹은 사고가 생겨 의료 지출이 생기면…. 아이고야.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데다, 기업이 내야 할 월급을 애먼 정규직 세금을 뜯어서 준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라, 독일 정부는 2015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2021년 기준 독일 최저임금은 9.6유로. 미니잡 월 수익 제한은 450유로 그대로라 근로시간은 월 46시간 정도. 주 46시간도 아니고 월 46시간으로 뭘 어떻게 하겠는가. 보다시피 미니잡 근로자를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었는데, 효과는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규직도 부업으로 미니잡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활비가 부족해서인데, 무엇 때문에 부족해졌을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YTN Star.


문제 3: 치솟는 집세.


 월세가 올랐다. 집이 모자라서. 독일의 인구는 2002년 8,25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난민과 이민확대정책의 영향으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600만 명의 인구가 늘어났다. 


 사실, 문화 갈등이 없었더라도 충돌이 예상됐던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이것이다. 문화와 고용문제는 교육과 정책으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데, 집만큼은 안 된다. 원한다고 하루아침에 지을 수도, 하루아침에 지어서도 안 되는 것이 집이다 보니.


 주택 공급 문제는 철저히 돈 문제이다. 사업자는 주택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얻기를 원하며, 정부는 주택이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길 원한다. 목표가 서로 정반대이므로 싸울 수밖에 없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뽐뿌.


 그런데 이 싸움은 정부에게 매우 불리하다. 패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사업 계획도 지리도 의도까지 매우 뻔하기에, 수를 읽는 것도 매우 쉽다. 어떻게든 사람 많은 곳에 집을 짓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월세를 덜 받게 해야 한다. 안정적인 불로소득에, 은행이자보다 남는 장사라 말을 하며 유인은 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옆의 사업자가 다른 투자로 돈 펑펑 벌면 손해를 봤다고 여긴다. 잘못된 투자로 말아먹은 사업자를 향해 고개를 돌려줘도 눈은 계속 대박 난 테이블만 본다. 정부가 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있긴 한데, 이러면 상대는 아예 테이블 박차고 나가버리니 살살 달래 가며 이끌어내야 한다.  


 즉, 실수를 유도하는 싸움이다. 조급하게 굴어선 안 된다. 천천히, 차분하게 상대의 패를 읽고 행동해야 한다. 어떻게든 발 한 번 담그게 한 뒤, 스며들듯 압박한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놀이닷컴.


 말은 이렇게 했지만, 힘으로 찍어 눌러도 되긴 된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정책이 꽤 재밌는데, 이 친구들은 사업자를 구슬리는 연약한 방식은 안 쓴다. 주택 사업의 통제권은 민간에 양보하지 않고 지자체가 가진다. 부유층 증세 등으로 세금을 확보하는 족족 공공 임대주택 사업에 투자하는 과감한 방법. 사업하고도 돈이 남으면 땅을 사둔다. 그리고 수요가 늘면 곧장 확보한 토지에 공공 임대주택을 짓는다.


 오스트리아의 최저임금은 산업별로 다르지만 대강 월 1,500유로 정도.**** 빈의 공공 임대주택 월세는 약 450유로. 

****KOTRA 해외시장뉴스, "오스트리아는 최저임금을 규정한 법이 없고, 산별 노사협약 때문에 산업별로 월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있다. 2021년 9월 기준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월 1,500유로(1,829.28달러) 수준으로, 이를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0.09유로(12.30달러)이다.".


 근데 그건 오스트리아고 독일은 독일. 지금 와서 따라 하자니, 지독한 주택난을 겪고 '집', 그 하나의 단어를 전 국민의 뼈에 새긴 오스트리아의 백년대계를 어떻게 따라 하겠는가. 그나마도 전쟁과 금융위기로 땅값이 매우 쌀 때 해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그런데 가만히 버티면서 이런 심리전을 벌이고 있자니, 정부에게 압박이 계속 들어온다. 늘어나는 노숙자, 낮아지는 서민들의 구매력, 집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부부. 이런 지구전은 조급한 쪽이 먼저 움직인다. 정부와 베를린 시는 과감한 수를 던진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서울경제.


더 이상은 못 버텨. 집 내놔.


 임대료 상한제. 2014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새로 증개축을 거친 주택을 제외하고는 확 낮추라는 요구였다. 솔직히, 수준 미달의 낡은 집으로 그렇게 많이 받아먹는 건 상도덕 없는 짓 아니냐 이거다. 


 독일은 세입자 보호가 잘 되어 한 번 들어간 사람을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고, 주택을 일부러 비워두면 투기 행위로 벌금 씨게 물릴 수도 있다. 거기에 증개축은 돈깨나 드는 일이니 고급화될 건 고급화되고, 오래된 집은 서민을 위한 저가 주택으로 남으니 월세도 잡히지 않겠는가. 정말 완벽한 계획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Nirvana, 「Nevermind(1991)」 中.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계약서 자체는 다들 어기지 않고 잘 써서 대충 보장된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베를린에 월세를 얻는 사람은 직장이나 학교가 거기에 있어 집이 급한 사람이 대부분이니 결국 물밑 거래. 몰래 더 주고 들어갔다.


 물밑 거래가 안 되는 곳도 내쫓으려는 노력이 대단했는데, 집주인 가족이 살아야 하니 나가라는 건 모범적인 경우고, 수리를 핑계로 공사 소음으로 못살게 구는 경우나, 심지어 화장실을 고장 내는 경우까지.  


 상한제가 위헌 판결을 받을 때를 대비해 미리 관련 조항을 달아두기도 했고. 임대업자가 내야 하는 비싼 부동산 중개료를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아예 자기소개서와 면접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경쟁률 1대 100으로 취업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예상과 달리 총체적 난국에, 이런 제한 조치로 오히려 집세만 더 늘어났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알라딘.


 이래도 저래도 안 되니 아예 시민들 사이에서 주택을 몰수해 공공 임대주택으로 쓰자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마침 독일엔 토지 공개념이 있어서 투표에 부칠 수 있었다. 법안 투표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장의 판단에 따라 시정 반영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어느 쪽이건 말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또 이 분위기, 가만 놔두기만 해도 사업자에게 압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언제든 뺏길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면, 지금 당장 팔아버리는 게 이익이니까. 그럼 조금 내려가지 않겠어? 


 이참에 위기감을 더 확실히 느끼게 정치인이 살살 자극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텐데, 안 된다. 지금 분위기가 엄청 달아오른 상태라, 여기다 대고 '좋습니다. 몰수합시다!' 해버리면 관성 타고 진짜 빼앗게 된다. 이러면 당장은 주택 가격이 낮아질지는 모르나, 이후로는 주택 투자가 완전히 없어진다. 어차피 뺏길 거 왜 지어? 안 지으면 빼앗기지 않은, 혹은 빼앗을 수 없는 이미 지어진 집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정부의 원래 목적과는 멀어진다.


 어쨌든 여러 문제의 원인은 급격히 늘어난 인구. 이 인구 얘기에 난민이 빠지지 않고, 또 문제의 원인으로 난민이 자주 지목되기야 하는데, 분석이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로 빠져나갈 구석이 많은 얘기이긴 하니까. 어쨌건 나쁜 난민의 수보다 많은 좋은 난민도 많은데, 무작정 그러기도 그렇고.


 또, 섣불리 했다간 히틀러의 재림이라는 오명을 덮어쓸 테니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뉴시스.


우익의 으뜸패(Trump).


 그런데 바다 건너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생겼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반이민, 불법체류자 퇴출 정책으로 인해 2018년~2019년 동안 임금과 고용률이 오른 것. 심지어 완전고용에 준하는 상태. 분명 다들 실패할 것이라 말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부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당장 명목 급여가 올라 좋아 보이지만, 임금 상승으로 인한 소비재 가격 상승은 오히려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며, 또 그런 불법체류자들도 엄연히 소비자인 만큼, 내쫓는 숫자대로 시장이 줄어들어 경제에 악영향이 생긴다는 예측이었다. 또한 기업들이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노동집약적인 사업을 재편하는 등의 적응을 마치면, 이민자들이 도맡아 하던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결국 자국민이 하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이야기까지.


 시간이 지나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관측이 불가능하게 됐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메디게이트뉴스.


 19년 말,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세계 경제가 너나 할 거 없이 망가지는 바람에 미국의 반이민정책 효과를 검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반이민정책의 결과는 학자들에겐 안갯속의 섬처럼 관측 불가의 무언가로 남았으나, 몇몇 사람들에겐 분명한 이정표가 되었다. 몸값 오르면 셔터 내린다고 으름장 부리던 기업도 외국인 없으니 웃돈 주고 자국민 부른다. 고교졸업장 없어도 취직된다. 워낙 사람 없으니 전과자까지 쓴다.  


 이런 이야기는 난민 혐오자로 하여금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누리는 인간다운 삶의 과실은, 국민의 피와 살을 거름으로 먹고 자란 게 아닐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체면의 값이 우리네 삶의 질이라면, 그건, 너무 비싼 값을 치르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러니 과격해진다. 내가 하는 고생도 그렇고, 내 것을 빼앗겼다는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것 같은 증거 비스무리한 무언가까지.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데에는 이만한 이야기가 없다. 


 이런 기류를 타고 급성장한 정당이 있었으니, 바로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반난민, 반유럽연합, 반이슬람. 구호도 단순하다. 이슬람은 나쁘다. 외국인을 쫓아내자. 독일인만의 낙원을 만들자. 어쩐지 매우 익숙하지만 어쨌든 이 친구들은 나치가 아니라고 한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프레스뉴스통신.


히틀러와 친구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AfD 대신 나치가 당당히 나왔어도 이런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는 주요 장면에 노이즈를 넣어 자신이 다큐가 아닌 영화라는 점을 밝히고 있긴 하나, 노이즈는 없고 모자이크가 있는 장면이 이따금 나온다. 그것은 실제상황이다. 히틀러를 욕하는 청년에게 덤벼드는 히틀러 옹호자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히틀러와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나치 경례를 하는 학생…. 


 심지어 나치와 히틀러는 인터넷 유행(Meme)으로 즐기기까지 해 젊은 층에게 정서적 친밀감(Rapport)이 높을 것이다. 상관관계를 증명할 연구결과는 모르지만, 어쨌든 감독은 안다. 저 어린 친구들이 히틀러에게 아무런 경계심이 없는 까닭은 인터넷에서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 「몰락Der Untergang(2004)」 中.


 감독은 영화에서 히틀러가 인기를 얻을 때, 아주 싸이키델릭하고 정신없는, 그러나 빠져드는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그 위험성을 설명하지만, 정작 그런 것들은 영화가 경고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흔했다. 그 유명한 「몰락Der Untergang(2004)」도 그렇고, 무슨 짤막한 패러디 그림도 그렇고. 아예 잊어버릴까 참고영상으로 언급하고, 또 작품에서도 패러디를 시도한다. 이게 새삼 무서운 건, 영화가 그런 무방비함을 계속 경고하고 있음에도 그런 패러디가 매우 재미있고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어쩌면 감독도 히틀러를 일종의 문화코드로 즐겼던 사람이기에 그 위험성을 더욱 잘 아는 건지도 모르겠다. 수록곡을 보아도 그렇다. Beach Parade, Spinning Waltz, Bubba dub bossa 등. 상당수가 인터넷 영상에서 자주 쓰이는 친숙한 곡이어서 패러디가 아닌 장면도 패러디로 보이게 만든다. 모르겠다고? 여러분, 세상은 인터넷 안에 있습니다. 인터넷 좀 하고 사십시오.


 어쨌든 이렇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온 AfD보다 나치와 히틀러가 유리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두려움을 준다. AfD 같은 극단적인 정당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정서적 친밀감을 확보하면 집권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옛날의 히틀러처럼?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위키백과.


비가 와도 소풍은 갑니다.


 여러 상황은 부정적인 예측을 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2021년 독일 총선이 되니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AfD는 의석을 잃었다. 제1당은 최저임금 인상, 시민배당금 도입, 사회주택 연 10만 채 건설 등의 민생공약을 외친 사회민주당. 


 사실, 앞서 말한 트럼프 얘기나 난민 이슈는 더욱 큰 문제인 코로나에 밀려 묻혔고, 코로나, 대홍수, 대봉쇄 등 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은 보다 확실한 비전을 가진 자의 리더십을 요구했다. 이런 커다랗고 정교함을 요하는 문제들은 아무런 비전 없는, 군복 없는 나치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1952)」 中.


 그렇다고 해서 사민당이 정말로 독일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극우의 폭풍을 막아줄 수 있느냐는 모르겠지만, 글쎄. 일단 결과를 보니 감독이 걱정했던 폭풍은, 사실 폭풍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세차게 내린 소나기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그동안 마주한 건 폭풍이 아닌 장마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냥, 조금 긴 장마.


 히틀러를 감화시키는 나라까진 못 되어도, 적어도 히틀러가 부활하지는 않는 나라. 


 인터넷의 히틀러에게 좋아요를 주어도, 현실로 나온 히틀러에게 표를, 그, 많이는 주지 않는 나라.


 독일은 그런 나라였다. 


 우리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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