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있는 삶

두 달짜리 마감 인생

by 눈큰


새로운 번역을 맡아 계약서를 쓰고 나면, 원서 파일과 함께 내게 약 두 달의 시간이 주어진다. 두 달은 분명 제법 긴 시간이지만, 내게 주어진 두 달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지나갔다.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마감이 있는 인생은 빨리 간다’고 말했는데 나는 늘 그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네다섯 번의 마감을 끝내고 나면 나이 한 살을 먹고, 또다시 대여섯 권의 마감을 끝내고 나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으니까.

돌아보면 두 달짜리 마감 인생을 반복해서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나처럼 변덕이 심한 사람에게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지겨워질 만하면 새로운 책을 만나고, 힘들어질 만하면 일이 끝나서 조금씩 쉬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감은 내 인생 중간중간 끼어들어 끊임없이 나를 재촉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우리 가족은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내 번역 마감일을 대충 알고 있다. 왜냐하면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항상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나도 모르게 짜증이 늘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아니, 부린다고 남편이 말했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며 눈치만 살피던 남편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우리 마누라가 또 마감이 다 되어가나 보군’ 하면서.

집안 꼴이 갈수록 엉망이 되어도 마감이 다가오는 것. 빨래가 밀리고, 수건 등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 쓴 물건들이 제때 채워지지 않으며, 좀처럼 새 반찬을 볼 수 없을 때가 바로 그때다. 다소 불편하지만, 아이들은 눈치껏 엄마를 자극하지 않는다. 조만간 마감이 끝날 테고, 그러면 집이 다시 원상 복구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감을 더욱 바쁘게 만드는


마감을 앞두고 안 그래도 마음이 바쁜 그때, 내 머릿속에 자꾸만 딴생각들이 생겨난다. 대개 ‘이번 번역만 다 하면’으로 시작해서 ‘~을 해야겠다!’로 끝나는 생각들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수능만 끝나면’으로 시작하는 리스트들을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처럼. (사람들은 왜 일할 때는 놀 궁리를 하고, 놀 때는 일할 궁리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만 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가끔은 괜히 살짝 건드렸다가 끝장을 보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다가 평소와 다르게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음식 재료들을 보며 ‘아이고, 이번 번역만 다 하면 냉장고 정리 한판 해야겠다!’ 해놓고선 그만 나도 모르게 냉장고 정리를 시작해버리는 경우다. 그래 놓고는 밤이 되어서야 바쁘다 바빠하며 밤샘 번역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감을 더욱 바쁘게 만드는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는 징크스와도 같은 것으로, 번역하는 동안 열심히 진도를 나간 덕분에 비교적 여유로운 마감을 앞두고 있으면 이상하게 급한 일이 생겨 굳이 나를 마감에 쫓기게 만든다. 가령 아이 혹은 내가 갑자기 많이 아프거나, 예전에 번역했던 책의 역자 후기를 써달라는 메일을 받거나, 출간을 앞둔 책의 최종 검토 부탁이 급히 들어오는 것이다. (일은 왜 바쁠 때는 더 바쁜 일이 생기고, 안 바쁠 때는 정말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것일까?) 이런 일이 종종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어차피 이렇게 될 거면 열심히 진도는 빼서 뭐 하겠어’라는 기이한 논리까지 펼치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그래도 밤샘은 NO, NO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마감’은 기어코 이름값을 하지만, 요즘엔 마감에 쫓기더라도 웬만해서는 밤을 새우지 않는다. 일단 체력이 못 따라준다. 차라리 새벽에 2~3시간 일찍 일어나서 번역하는 게 오히려 낫다. 새벽잠이 슬슬 없어지는 나이라 그럴지도. 한때는 저녁형을 넘어 오밤중형 인간의 대명사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감에 쫓기는 일에도 어느 정도 이력이 나서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졌다. 진도가 밀리면 희한하게도 평소와 달리 낮에 거의 괴력에 가까운 집중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오직 이 세상에 내 손가락과 키보드와 원고만 남은 듯, 모든 것이 새하얗게 등 뒤로 사라지는 무아지경을 느끼며 번역해내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어느 번역가의 말처럼 ‘스케줄 관리를 못해 마감일이 개학 날처럼 악몽으로 바뀌는’ 경험도 해보았고, 밤샘하며 완성한 원고가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웠던 경험도 여러 번 해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득 아주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오른다. 아마 마감을 코앞에 두고 며칠간 밤을 새우며 번역했을 때였을 것이다. 계속되는 ‘밤샘’으로 오전 내내 해롱거리던 나는 그날도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밀린 집안일과 애들 뒤치다꺼리를 끝낸 후 또다시 밤을 새울 준비를 했다. 인공눈물, 커피 한 대박, 그리고 졸음 방지용 간식(질겅거리기 딱 좋은 쥐포며 오징어)까지 옆에 쟁여놓고 말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그래, 난 역시 오밤중형 인간이었어!’ 하며 혼자 열심히 번역하다가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눈 한번 감았다 떴는데….


새벽 5시.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 있고, 어두컴컴한 거실 한가운데 홀로 켜진 노트북 화면에는 ‘ㅇㅇㅇㅇㅇㅇ’이란 글자가 마치 귀신 눈동자처럼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나도 모르게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둔 채로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순간 얼마나 무섭고 또 서글프던지. 곧바로 노트북을 닫고 얼른 안방 침대로 쏙 숨어들었다. (다음 날 원고를 확인하니 다행히 실수로 삭제된 부분은 없었고 ‘ㅇ’이라는 글자만 무려 6페이지 넘게 찍혀 있었다.)



고마운 마감


그럼에도 마감이 감사한 이유는 그것이 번번이 번역가인 나를 더욱 부지런하게 만든다는 점 때문이다. 생활의 다른 부분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마감이 일일이 정해져 있다면 난 지금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명절 연휴다, 몸이 찌뿌둥하다, 귀찮다 핑계 대며 수십 일 만에 글 한 꼭지를 겨우 완성하고 있자니, 마감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