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긴 어게인>을 다시 보며
나의 인생 영화는 <비긴 어게인>이다. 2014년 8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다. 큰 기대 없이 아침 첫 시간으로 관람 후 돌아오는 버스에서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던 초가을 바람과 영화 마지막 장면의 여운에 깊게 취했던 그날의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그 뒤로도 친구들을 데려가 두 번 정도 더 관람했다. 영화관에서 내려간 후 지금까지 짧은 공연 클립은 셀 수 없고 풀 영상으로는 다섯 번은 더 본 것 같다. 특히 그레타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과, 이때 터져 나오는 'Lost Stars'의 후렴은 지금껏 내가 본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엔딩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저 음악과 분위기가 좋았다. 주인공 그레타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음악에 매료되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이별의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성장 서사'라고 그저 형식적이고 교과서적으로 받아들인 채 감상할 뿐이었다. 이렇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영화의 분위기를 좋아했을 뿐이지 주인공의 감정선, 심지어 내가 최고로 꼽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도 와닿지 않았다. 전 연인이 내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눈짓하는데 왜 가만히 서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본인이 거절해 놓고 왜 우는 거지?' 싶었다. 심지어 뛰쳐나가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시원한 듯 웃는 주인공이 참 묘했고 아리송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던 요즘, 출퇴근 길에 알고리즘을 통해 'Lost Stars'를 들었고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확실히 경험을 많이 할수록 시야가 넓어진다고. 이전에 감상했을 때와 또 느낌이 달랐다. 특히 헤어진 전 연인 데이브에게 보낸 작별 노래 'Like a fool'의 가사와 감정이 제일 심심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바보같이 사랑했다는 노랫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전 연인을 마음에서 보내주며 배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건 물론, 조금은 충동적일 수 있는 가수 도전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영화 속에는 6개월 전, 그리고 얼마 전 이별한 내가 있었다. 나 역시 그레타처럼 연인과의 세상 속에서 살다 헤어진 후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많은 위로와 치유를 받았고 내 인연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여덟 번도 넘게 본 영화지만, 이번처럼 마음이 시원하고 모든 부분이 맞아떨어지는 퍼즐처럼 느껴진 관람은 처음이었다. 특히 가장 큰 깨달음은 위에 언급했던 마지막 장면에 있었다. 예전에는 전 연인 데이브와 사랑으로 보나 음악으로 보나 서로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는 생각에 놓아주는 마음으로 후련함의 눈물과 웃음이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감상은 달랐다. 그레타에게는 이미 데이브와의 관계는 끝이었고 더 이상 사랑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데이브의 공연 속 팬들의 환호를 보며 자신이 붙들고 있던 음악의 진정성에 대한 고집 내지는 가치관이 부서지며 느끼는 깨달음의 감정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난 인연에 안녕을 고했고 음악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이다.
여전히 이 엔딩은 내게 최고의 장면이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레타의 눈물과 웃음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럽다. 그녀를 보며 나도 언젠가 이 미련의 고치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레타와 마찬가지로 나도 '비긴 어게인'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