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목표와는 조금 달랐지만
이번 설 연휴, 난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해외로. 평소 혼자 하는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지난 12월, 후쿠오카행 1인 왕복 항공권을 덜컥 결제했다. 후쿠오카는 이미 두 번 다녀왔다. 지난 2013년 첫 여행으로 여러 도시 중 한 곳으로 다녀왔고, 2018년에는 대학 동기와 졸업 기념으로 다시 찾았다. 낯설지 않은 도시이고, 텐진과 하카타를 중심으로 동선이 단순해 이동이 수월하다는 기억이 있었다. 무엇보다 비행 시간이 1시간 20분으로 짧다는 것이 여행지로 정한 가장 큰 이유였다. 연휴, 연차중에도 일을 놓을 수 없는 직무의 특성 상 인터넷 없이 자리를 오래 비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혼여(혼자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가지 고민을 정리해보는 것. 첫 번째는 연애였다. 첫 이별의 아픔이 회복되지 않은 채 시작한 두 번째 관계로 상처가 덧나버렸다. 외로움과 조급함이 뒤섞여 마음이 자주 답답해졌다. 낯선 곳에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며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환기하고 싶었다. 전 인연을 정말 단 한 조각의 조각이라도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 년째 고민 중인 퇴사와 새 진로에 관한 생각 정리였다. 언제쯤 퇴사를 해야할지, 정말 퇴사하는 게 맞을지, 그리고 글쓰기라는 새 진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자 떠나면 생각할 시간이 많겠거니 하고 스스로에게 내린 숙제 내지는 목표였다.
결론은, 보기좋게 어느 하나 달성하지 못했다.
관광을 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행 온 연인들이 가득해 자꾸 생각에 잠겼다. 요리를 좋아했던 그 사람이 일본에서 칼을 사고 싶다고 했던 말까지 스쳐 지나가니 잊기는커녕 기분만 더 가라앉았다. 퇴사와 진로 고민 역시 깊게 할 새가 없었다. 휴양지가 아니라 관광지다보니 길을 찾고 돌아다니는 데 집중하느라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카페도 붐볐고 휴대폰으로 회사 이메일을 자꾸만 확인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 시기를 정리하러 떠난 여행에서 일 생각만 잔뜩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 없이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혼자 있을 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는데 1인석 같은 문화가 자연스러워서 그런지 훨씬 편하게 돌아다녔다. 일행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허리가 아프면 무작정 앉아서 쉴 수 있었다. 또 오전에 일을 해야만 했는데 이 역시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됐다.
현지인이 일본어로 계속 말을 걸 만큼 자연스럽게 혼자 돌아다니며 복잡한 지하철을 뚫고 다소 먼 외곽 지역까지 다녀왔다는 점에서 이번 여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도 아주 즐겁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도 혼자 해낼 수 있다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어깨가 조금 더 펴졌고, 별것 아닌 자랑거리가 하나 생긴 기분이다. 결국 두 가지 고민의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혼여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언젠가 내 고민의 해답도 인생의 방향도 이렇게 하나씩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