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

by 윤지영



건강의 적신호는 불현듯 찾아온다. 몇 달 동안 피곤에 절어있던 어느 아침, 몸이 더 이상은 못한다는 선언을 내렸다. 몸의 언어는 직감적으로 와서 닿았다. 그때부터 지난 몇 년간 유독 겨울만 되면 아팠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쪽 뺨이 따끔거렸다. 간지럽기도 해서 몇 번 긁었더니 곧바로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거울 속엔 너무도 생경한 모습의 사람이 있었다. 오른쪽 얼굴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친구들이 볼거리가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다. 살면서 딱히 잔병치레가 없었던 나는 조금 심각해졌다. 웬만하면 병원에 잘 가지 않지만 증상이 워낙 눈에 띄는지라 안 갈 수가 없었다. 나와는 달리 조금씩 자주 아픈 동생은 평소 자신이 아토피 치료를 받던 동네 허름한 피부과로 데려갔다. 나에게 내려진 진단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였다.



의사 선생님은 흰머리가 지긋한 할아버지셨다. 차근차근 말씀하시길 세상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훨씬 많다고 했다. 내 두드러기가 왜 발병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전까지 나는 병원에만 가면 모든 병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의사들도 정확히 모른다는 게 어떤 인간적인 부분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바르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하루에 세 번 소량만 바르라고 하셨다. 동생을 따라 병원에 오길 잘했다.



정체불명의 두드러기는 밤이 되면 더욱 활발해졌다. 아주 작은 사람이 피부막에 침투해서 표면을 꽝꽝 쳐대면 이렇게 볼록볼록 해질까? 더 고통스러운 점은 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치도록 가려웠다는 점이다. 아직도 떠올리면 당혹스러운 그다음 해 겨울을 기억한다.



아는 언니의 꽃집에서 연말 파티를 했다. 연말 파티라 함은 자고로 셀카, 필름 카메라, 남이 찍어주는 카메라 등 모든 카메라가 총동원되는 때라서 친구들은 모두 예쁜 얼굴과 근사한 분위기로 연출을 했다. 두드러기의 습격만 아니었다면 나도 근사했을 텐데. 친구들이 너무 예뻐서 내 얼굴이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원래 그런 분위기의 판을 깨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나는 기분이 아니어도 신나 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신나지 않았다.



하필 그날 파티는 내가 시를 지어와서 낭송하는 것으로 서막을 알리려고 했는데 얼굴이 이지경이라 시를 지을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윤동주의 시를 읽겠다고 말했다. 평소 흥 많은 꽃집 언니는 어떻게 이런 날에 그럴 수 있냐고 했다. 그래서 30분 동안 쥐어짜서 시를 썼다. 어찌나 영혼이 없었던지 낭송한 시의 단 한 구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깊숙한 무의식 저편으로 가둬둘 정도로 형편없던 시였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집에 가는 길이 더 가관이었는데 강남역에서 140번 버스를 타자마자 하필 히터가 가열차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피부가 두들 대기 시작했다. 저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나는 이성을 잃고 피부를 벅벅 긁어댔다. 캐롤이 울리고, 이 세상 모든 화려함이 가득한 강남 한복판에서 나 혼자 얼굴을 긁고 있었다. 얼굴은 점점 제빵사가 아무렇게나 빚어 발효되는 빵과 흡사해졌다. 그 날을 하나의 기사로 만든다면 헤드라인은 이렇게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 낭송 여인, 강남역의 한 버스에 올라타 얼굴을 벅벅 긁다.



다시 찾은 피부과에서 의사 선생님은 두드러기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유추해볼 수는 있다고 했다. 호르몬이나 생활에 큰 변화가 있다던지,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면역력이 떨어졌던지 하면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두드러기가 생긴 건지, 두드러기가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선생님은 내 삶이 어떨 때 두드러기가 생기는지 스스로 잘 알아두는 것이 앞으로도 본인에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이 왜인지 이 병을 평생 앓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지막으로 두드러기에는 건조함이 쥐약이니 최대한 피부 보습에 신경 쓰라고 덧붙이셨다. 이로써 강남역 버스 사건 내막은 히터로 인한 주변 공기의 건조화로 인함이 밝혀졌다.



몇 번의 겨울을 지내면서 두드러기의 습격을 받고 나니 이쯤 되면 두드러기가 재발하겠구나 하는 타이밍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울적하다고 생각하면 거의 그 즉시 오른쪽 뺨이 욱신거린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 주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평생 데리고 다녀야 하는 바이러스 세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신혼을 사는 요즘, 다시 오른쪽 뺨이 예사롭지 않다. 마침 겨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