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주는 힘

by 윤지영



사랑은 사람을 전지전능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처음 그 느낌을 감지한 건 연애시절 때였다. 휘성이와 새벽까지 대화를 주고받느라 밤을 새웠는데도 아침에 가뿐하게 기상할 수 있었다. 빈혈과 저혈압으로 고생하는 내 체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눈 뜨자마자 이 기쁜 소식을 그에게 알렸다. 그는 그게 사랑의 힘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힘. 그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에 빠진 누구나 일시적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었다.



그 기운은 휘성이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왔다. 그는 거의 만날 때마다 엽서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적어서 건넸다. 내용은 주로 이랬다.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떨어져 있는 시간에 자신은 뭘 생각하며 사는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자신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의 엽서는 수험생의 문제집처럼 매번 칸이 모자라 자투리 여백까지 몽땅 활용되고는 했다. 악필이어도 내용이 아름다워 시 같았다. 사랑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연애시절 사랑이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능력을 발휘했다면 결혼 후에는 보다 강력한 힘이 우리에게 머물렀다. 결혼했다면 모두가 겪어보았을, 보편적이면서도 신성한 힘이었다.



나는 자꾸만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이었을 때에는 글을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솟았다. 상상 속의 나는 당장이라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소해 보이는 빨래도 개 놓아야만 다음날 용도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말만 하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두 개의 공모전에 나갔고 몇 개의 강의를 들었다. 회사를 다니고 서툰 집안일을 익히면서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날마다 피곤했고 지하철에서 수시로 졸았다. 그러나 결혼이 준 신성한 힘으로 조금씩 더 버텼던 거 같다.



그 결과 규모 있는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브런치 이외의 채널에서 첫 글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휘성이는 연애시절부터 나를 윤작가라고 불렀지만 내가 정식으로 글을 업로드 하자 자신의 SNS에 대대적으로 홍보해주었다. 그의 팔로워가 몇 명이던 상관없이 그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기뻤다. 꿈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는 꿈만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휘성이도 나만큼 자신을 확장시키느라 성장통을 겪었다. 낮에는 회사, 밤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그야말로 주경야독했다. 그가 다니는 대학원은 일주일에 네 번은 열한 시에 귀가해야 할 만큼 커리큘럼이 꽉 차있었다. 우리 둘 다 늦은 밤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결혼 전 삶을 유랑하듯 자유롭게 살던 휘성이가 쳇바퀴 같은 사회에 끼워져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연애편지를 쓸 시간에 그가 한숨 더 자는 것이 나았지만 이제는 연애편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 직장에서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들어서 그에게 급여를 조금 받더라도 출근시간을 조정해서 아침에 좀 더 자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할 거라면서 이 정도는 각오하고 결혼한 거라고 했다. 낭만적인 남자 친구였던 그는 어느새 책임감 있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토익시험을 안 봐서 졸업이 유보됐을 만큼 건설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안다. 나와 마찬가지로 휘성이도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하고, 내일도 회사와 대학원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밤. 무엇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하는지 생각해본다. 살면서 수시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건강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다.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에 탄생할 생명에게 지금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주고 싶다. 상대방의 성숙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하고 쌓아가고 싶다. 그게 우리로 하여금 일시적인 사랑의 느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게 만든다. 결혼이라는 약속을 함으로써 기꺼이 책임과 인내의 짐을 짊어진다.



게다가 우리는 결혼생활 중에서도 가장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듯이, 신혼부부가 하는 고생은 기특하고 대견하다. 신혼의 버프를 받아, 이번 한 주도 잘 살기를 바라본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을 휘성이도, 그리고 비혼이 대세인 이 시대에 기꺼이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