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를 추는 밤

by 윤지영



그냥 눈물이 나는 날이었다. 결혼 전, 자주 삶이 고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어나기를 항상 무언가를 갈망해야만 하는 채로 태어났다. 그래서 자주 뛰었다. 육체는 앉아있을 지라도 상상의 나래에서 도약하거나 도망을 치는 순간이 빈번했다. 동산을 폴짝폴짝 뛰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자주 피곤했다. 다리도 어깨도 자꾸만 욱쑤셨다.



결혼을 하고 나니 고단함은 정확히 두배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러면 냉장고의 음식들이 쉬어버렸다. 소파에 잠깐 누워있었을 뿐인데 시간이 자꾸만 흘렀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남편과 둘이 알콩달콩 사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나 이건 행복하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는 이분법적인 문제 또한 아니었다. 행복했지만 나를 잃어버린 순간을 문득 알아챌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결혼은 나의 반을 버리고 상대의 반을 채우는 거라는데, 나의 반을 버리는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적어둔 지도를 잃어버리는 일과 같았다. 지도는 남편과 새로이 그려야 했다. 남편의 지도 또한 같은 상태였다.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나를 의심했다. 그때부터 뛰는 걸 멈추었다. 뛰지 않는데도 고단한 건 마찬가지였다.



미세먼지가 한반도 서쪽을 뒤덮은 날, 퇴근길에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며 울고 집에 와 빵을 굽다가 울었다. 대신 빵을 먹으니 더 이상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잊어버리자 했다. 그저 현실을 착실히 살자 했다.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 더미 중 제일 큰 박스를 풀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주문한 온수매트였다.



보일러 본체와 매트가 따로 있고 매트에 붙어있는 호스를 보일러 부분에 연결해야 했다. 호스를 끼우는데 잘못 끼웠는지 물이 샜다. 똑똑똑 떨어지는 게 아니라 주루루룩 쏟아졌다. 오늘 우리 집에 처음 왔는데 너도 운다. 마침 그때 남편이 왔다.



남편을 보자마자 내 안에 어떤 제어장치가 풀어졌다. 호스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 주루루룩 쏟아졌다. 남편은 매일 집에 오면 입맞춤을 하고 안아주는데 오늘도 어김없었다. 입술, 오른쪽 볼, 왼쪽 볼, 다시 입술에 입 맞추는 남편의 입술이 차가웠다. 우리는 이 겨울을 둘이서 살아내야 했다. 눈물이 났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감추면서 집에 와서 조금 울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나를 안으며 우리 야식 시켜 먹을까 그렇게 말했다. 그냥 그뿐이었다. 남편은 원인을 낱낱이 밝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결과 또한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원래부터 그랬다. 대신에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할 줄 알았다. 야식 먹자는 말을 그토록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 말은 형체가 되어 내 마음을 안았다. 나는 내 눈물의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 이전에 내가 울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아주는 게 더 필요했던거 같다.



내가 본격적으로 우니, 남편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부르스를 추자고 했다. 부르스, 그런 말은 내 인생에 들어온 적이 없는 말인데. 남편이 내 인생에 부르스를 가지고 왔다. 몇 번 스텝을 밟더니 나보고 한 번도 안 춰본 티가 난다고 했다. 그러는 본인도 잘 추는 거 같진 않았지만.



울었다 그쳤다 하기를 몇 번, 이제 웃으면서 우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쓰다듬으며 잘하고 있는 거라고, 고생 많았다고 했다. 역시 뭘 잘하고 있는지 어떤 고생을 많이 한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후에 왜 그런 말들을 꺼냈냐고 왜 내 인생에 부르스를 가져왔냐고 물어도 그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전날 들었던 남편의 말이 어깨에 붙고 다리에 붙어있다. 어쩌면 예전처럼 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지형이 나올지 모르니까. 뛰기엔 너무 가파를지도 모른다. 지도는 작은 동산을 벗어나 광야 같은 대지로 나아왔다. 그 길을 가다 보면 골짜기도 있고 샘도 있겠지. 그저 남편과 함께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부르스를 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