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필요한 모든 역할

by 윤지영


엄마가 그런 말을 했었다. 네가 태어나고 반년 만에 동생이 생기는 바람에 젖이 말라버려서 모유수유를 못해줬다고. 넌 그때부터 첫째의 몫을 견딘 거라고.



엄마 말처럼 동생이 태어나면서 집 안의 아기 역할은 동생에게로 자동 승계되었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연년생이어서 신체 발달이 제법 비슷했다. 유치원을 졸업하면서부터는 동생이 내 키를 앞질렀다. 그런데도 우리 애기, 똥강아지 등 귀여운 호칭은 동생에게만 붙었다. 나는 그냥 지영이 아니면 큰 딸로 불렸다. 어딘가 모르게 의젓해야 할 것 같은 '큰 딸'은 어감부터가 별로였으나 호칭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불려지는 것이기에 나는 자동으로 '큰 딸'이 되었다.



동생은 이 옷 입기 싫다고 떼쓰기, 맛있는 반찬 해달라고 어리광 부리기, 받아쓰기 공부하기 싫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댔다. 그러는 모습은 정말 똥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 살 어린 동생이 맘껏 막둥이의 특권을 누리는 동안 나는 엄마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묵묵히 김치를 먹고, 책상에 앉아 받아쓰기 예습을 했다. 사람은 정말 이름대로 살게 되는지 큰 딸인 나는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나이를 더 먹어봤자 고작 한 살이지만 의젓한 어린이는 왠지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척척 해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큰 딸은 자라면서 점점 어린이의 모습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 외형적으로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로 보이는 일은 없었다. 회사에서도 챙김 받기보다는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자 언제는 내가 아이였던 시절이 있긴 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 것은 휘성이 때문이었다. 그는 사귈 때부터 나를 향해 숨 쉬듯이 귀엽다는 말을 했다. 또래 중에서도 몸집이 큰 휘성이가 여성 평균 체격보다도 작은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까마득하게 위에 있는 그를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뻐근해져 오는 딱 그만큼 그는 내가 작아 보였을 테다. 연약하고 작은 생명체를 대하듯 그는 나를 자상하게 바라보고 쓰다듬었다. 조금 민망하게도 휴대폰에 저장한 내 애칭마저도 '아기자기'였으니 그의 눈에는 내가 정말로 아기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혼한 지금도 전화를 걸면 그의 아이폰에는 아기자기라는 이름이 뜬다.



어느 날에는 내가 이부자리를 갰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귀여워하며 칭찬을 해댔다. 그가 내 엉덩이를 토닥이는 순간 나는 '무려 이부자리도 갤 줄 아는' 7살 어린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대단한 일을 해낸 아이의 마음에 담기는 뿌듯함이 이런 걸까? 서른 살에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막상 당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무궁무진하게 좋았다.



그가 나를 아기처럼 대했기 때문에 때때로 양말을 신겨 달라거나, 머리를 말려달라는 등 평소라면 하지 않을 부탁을 해보기도 했다. 부모의 손길을 꼭 필요로 하는 진짜 아이처럼 말이다. 그는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어설프고도 부드러운 손길로 양말을 신겨주고 머리를 말려주었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에게 보살핌 받았던 느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런 날이면 건강한 토양에서 햇빛을 넘치도록 쬐는 작은 나무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휘성이 역시 내 눈에 마냥 아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가 손톱 근처에 난 가시들을 잘라달라고 손톱깎이를 가지고 내게로 올 때, 수백 번의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를 때(미안하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일은 없을 것이다), 톡 터지는 식감이 싫다며 방울토마토를 거부할 때 나는 넓은 그의 등판 안에 감춰진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른은 어른인 동시에 누구나 아이다. 다 커버린 몸 안에 어린아이를 하나씩 데리고 산다. 상대의 어린아이를 가장 빠르게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같이 사는 부부. 가까울수록 상대방의 미완성된 모습과 연약함을 빨리 알아채니까. 그럴 때는 그냥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볼을 쓰다듬어주면 된다. 상대에게서 어린아이를 봤다면, 이미 그를 사랑함과 동시에 그의 어린 시절까지 사랑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허했던 마음까지도 채워줄 수 있겠다. 나는 오늘도 어릴 적 박탈당했던 자리로 되돌아가 그에게 어리광을 부릴 거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에게 '세상에 필요한 모든 역할'이 되어준다. 부모, 아이, 반려견, 사회생활 선배, 그리고 남편과 아내. 세상이 멸망해도 둘이서 가장 작은 사회를 꾸려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온전함이다. 확실히 부부는 뜨거웠던 연인의 사랑보다 단단하고 커다란 사랑을 배운다. 앞으로 수백 번의 저녁을 먹고 어느덧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인생에서 꼭 필요한 '악인'의 역이 기꺼이 되어줄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기 이전에 아직은 아기 같은, 때로는 아빠처럼 듬직한 그를 모자라지 않게 사랑하고 싶다.




여담.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동안 휘성이는 잠들어버렸고 오늘의 어리광은 내일로 미루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