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평범해질 일만 남았어

by 윤지영


야간대학원을 다니는 남편은 열한 시가 되어야 집에 귀가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느라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온 남편은 소파에 무너진 자세로 눕는다. 그 모습이 흡사 시든 깻잎 같아서 안쓰럽다. 그의 소강상태가 눈에 보일 정도니 오늘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글렀다. 오늘 하루 잘 살아냈는지 간단하게 나눈 뒤 보일러를 데우고 그를 화장실로 보낸다. 쏴아아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접어두었던 책을 다시 펴서 읽는다.






푸르렀던 유월. 그 날을 기억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이목을 받은 날이자 두 번 다시는 그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을 일이 없을 날. 우리가 결혼한 날이었다. 오직 나와 휘성이를 보러 많은 이들이 먼 길 오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에 동이 트기 전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얼굴에 여러 겹의 파운데이션이 덧칠해지는 동안 눈을 감고 이런 대접을 매일같이 받는 연예인의 삶을 잠깐 상상했다.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치장이 내 삶에는 단 한 번뿐일 테니 이조차 몹시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이모님이 입혀주는 드레스를 입으니 드디어 실감이 났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 부담감과 설렘이 온몸을 에워싸 손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우리는 20대에 결혼했기에 자리를 채운 하객들의 얼굴도 풋풋했다. 친구들은 놀라워하며,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축복의 손길을 보냈다. 그 모습이 녹음이 깃든 작은 숲처럼 싱그러웠다.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주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고운 가사에 화음이 보태진 노래를 들으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식이 마무리되고 식당으로 내려가 찾아와 준 분들께 인사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차츰 사람들이 돌아가자 그날 들어온 축의금을 합계하고 식사비용을 결제하는 것으로 결혼식이 끝났다.



몇 개월의 준비기간이 무색하리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는 신부의 자리에서 평범한 여자로 돌아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호텔에서 머리에 꽂은 핀들과 인조 속눈썹을 떼어내며 직감했다. 어쩌면 결혼은 화려한 화장을 지운 뒤 거울 속 맨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겠구나. 앞으로 평범해질 일만 남았구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부터 인생은 평범하기 그지없이 흘러갔다. 거동이 불편해진 시할아버지께서 요양병원에 입소하게 되었고 시댁 식구들의 배려로 돈 없는 우리가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집이 마련된 것 자체로 감사했으나 내가 살던 서울 도봉구에서 신혼집까지 지하철로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문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야 친정에 닿을 수 있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도 그만큼 멀어졌다. 동시에 낯선 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 무렵 악몽을 자주 꾼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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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내용은 회사에 지각하거나, 마을 전체가 침략당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마다 서사는 불길하게 전개되었다. 도망치거나 싸우다가 퍼뜩 깨어나면 아직 밖은 컴컴한 새벽이었다. 잔뜩 긴장한 어깨와 팔 부근이 아려왔다. 꿈 풀이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에게 해석을 부탁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친구는 네가 그 도시에서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해서 불안이 꿈으로 표출되는 거니 자주 산책을 하면서 동네와 친해지라고 조언해줬다. 단골 가게와 친한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석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이 넓은 시흥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남편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연고지가 없는 이 동네에서 휘성이 마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들어오니 혼자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히 집안일도 나의 차지가 되었다. 시흥 중에서도 우리 동네는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한 동네여서 티끌만큼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 카페나 맛집보다는, 논이나 공장부지가 훨씬 눈에 띄는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색해 여가시간을 개척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이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이 내 인생을 구원할 줄 알았다. 틈만 나면 새로운 것을 찾아 방황하고 실패하던 청년의 때가 인생의 1막이었다면 결혼을 통해 문을 연 2막은 찬란할 줄로만 알았다. 희망찬 미래와 든든한 가정이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이었다. 신선한 재료로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 식탁과, 주말마다 근교로 나들이를 가는 일상.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 미래를 도모하고 막차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는 침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막 역시 또 다른 평범한 세계로 입성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출퇴근을 해야 했고 오히려 집안일이라는 지난한 과제가 추가로 얹어졌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 겪는 좌절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지인들 역시 꿈꾸던 신혼과 현실의 낙차에 혼란스러워했다. 핑크빛 미래를 꿈꿨는데 막상 현실을 마주하니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시련들이 산재했다. 당장 하루 세끼를 꾸리는 일부터 갚아야 할 대출금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월급이 그들을 잠 못 들게 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자들과 아이가 생길 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실존의 문제였다.



내게는 당장 갚아야 하는 전세대출금은 없었지만 생경한 곳에서 사는 것,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서부터 결혼에 대한 권태가 몰려왔다. 특히 혼자 저녁밥을 먹으면서 급속도로 침울해졌다. 혼자 먹는 밥이니 균형 있는 식단을 챙기지 않았고 두 어 개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애정이 담긴 식사는 내일을 희망차게 살게 할 만큼 강한 원동력을 제공하지만 반대로 대충 차린 저녁은 도리어 에너지를 빼앗는다. 내일도 이렇게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루를 천 년같이 길게 느껴지게 했다. 나는 자주 울었고 남편은 주경야독으로 지친 와중에 나까지 달래야 했다.



그 와중에도 태양은 속절없이 떠오르고 지기를 반복했다. 집 앞에 얼어붙은 작은 천이 녹아내렸고 조팝나무의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며 여름철에는 태풍이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간은 잘만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샤워를 마친 휘성이가 침실로 들어온다. 그가 씻는 동안 읽은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여러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겪었던 실화를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다 이가 나간 그릇들을 마주했다. 포르투갈에서 사 온 접시와 선물 받은 국그릇에 미세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언제까지 새 것 그대로 유지될 것 같았던 가전들도 하나 둘 본래의 모습에서 낡아져 갔다. 접시의 균열과 낡은 가구 모퉁이들이, 결국 우리도 세상에 수많은 평범한 부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점점 평범해질 일만 남은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나를 의연해지게 만들었다. 서울이 아닌 시흥이 내가 발 붙이고 살아야 하는 도시라는 것. 남편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정성을 들일 것. 현실감 없는 낭만을 놓아주고, 평범한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니 그때부터 결혼생활이 살만 해졌다.



결혼 후 일 년 안에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나 또한 크고 작은 시련에 연단되는 데에 꼬박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라는 역설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은 덜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결혼이 선물한 삶을 괴로워하지 않게 된 것에도 감사하다. 나는 더 이상 침울해하지 않는다. 혹여 침잠하는 기분이 들더라도 금방 헤어 나온다. 혼자서도 정성껏 밥을 차리고 꼭꼭 씹어 음식을 소화한다. 집 주변에 작은 도서관을 발견한 후로 그곳에서 빌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는 동네에 헬스장이 생겨서 그토록 다짐하던 필라테스도 끊었다.



내 눈 앞에 놓인 길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더라도 이 길을 나의 길이라고 인정하는 것. 그때부터 위대한 인생은 막을 연다. 유구한 시간을 평범하게 보내다 훗날 뒤를 돌아볼 그 날이, 조금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