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움은 실패로부터 시작되는 걸 안다. 그러나 어제의 나는 양파를 썰기 3초 전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3초 후에 양파를 썰면서 손도 같이 썰었기 때문이다. 종종 3초보다 더 큰 단위의 시계태엽을 감고 싶을 때도 있었다. 10분 전, 혹은 3일 전. 그때로 돌아가면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실수를 통해 잘 배워야 프로 주부의 길로 입성할 수 있다지만 나는 실수를 하고 나면 항상 얼마간 넋이 나가곤 했다.
어느 주말의 끝무렵. 남편은 티비를 보고 있었고 나는 티비 보는 걸 즐기지 않아 딴 걸 하고 싶었다. 이 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골똘히 생각한 끝에 빨래를 삶아야겠다고 결론을 냈다. 평소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최근 들어 수건에서 쉰내가 나는 건 더욱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주말에 종종 빨래를 삶곤 했다. 나는 집 안에 따뜻하게 퍼지는 락스 냄새를 좋아했다. 그건 잘 꾸려진 살림살이에서만 나는 냄새였다. 그런 집을 만들고 싶었다. 쉰내가 나는 모든 섬유 더미들을 삶으면 새것이 되어 돌아올 것처럼 기대하며.
남편은 베란다와 주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내가 미심쩍었는지, 이따금 눈을 힐끗거렸다. 내가 빨래를 삶는다고 하니 검은색은 같이 삶으면 큰일 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의문점이 생겼다. 그럼 검은색 옷은 삶지 못하는 걸까? 냄새난 채로 입어야 한다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모든 옷이 검은색으로 변하면 안 되므로 검은색은 바구니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 남색의 팬티는 넣었던 것이다.
보글보글 연기가 올라오고 집안에 옅은 락스 향이 풍겼다. 이제야 살림 좀 하는 것 같아 으쓱대며 바께스 안을 본 내 동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보고야 말았다. 온통 남색 빛으로 물든 수건들을. 남편의 반쪽짜리 남색 러닝셔츠를. 신혼을 기념하여 산 나의 첫 번째 레이스 속옷도 거무죽죽한 색이 되어 있음을.
나는 아연실색하여 남편을 소환했다. 바께스 안에서 벌어진 사태를 본 그의 동공 또한 흔들렸다. 왜 남색 팬티를 넣었냐고 물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검은색 빼고 나머지 색깔은 넣어도 되는 줄 알았다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변명할 뿐이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나에게 의상학과 나오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머쓱... 화장실로 가 남색 범벅이 된 한 뭉탱이의 옷가지들을 바닥에 부었다. 마음이 쓰렸다. 그 후로 다시는 빨래를 삶지 않았다는 이야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1박 2일로 출장을 간 남편이 청소기 좀 돌려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집안일은 요리하기, 설거지, 빨래 널기, 정리정돈,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 순이다. 다시 말하면 청소기와 걸레질이 제일 노잼인 노동이라는 뜻이다. 그걸 안 남편은 내게 여태껏 청소기를 돌리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 근래 며칠째 집 청소를 못했다며 오늘은 꼭 돌려달라고 당부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청소기를 돌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노잼'인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아서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청소기의 전원을 켰다. 원래 우리 집 청소기는 장판도 들어 올릴 만큼 흡입력이 엄청난데 그날따라 파워가 몹시 딸렸다. 심지어 최고 레벨로 올려놨는데도 뭐랄까, 수명을 다한 성능감이었다. 나는 얼른 처분하고 무선청소기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청소기를 돌렸다. 집의 절반쯤 돌렸을 때 어디선가 바람이 쉭쉭 들어왔다. 뭔가 뜬금없는 바람이어서 두리번거리다가 곧 근원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쓰는 모델은 먼지통을 분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한 깔끔하는 사람이라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먼지통을 분리해 씻어놓고는 했는데 내가 그걸 다시 끼우지 않고 청소기를 돌린 것이다. 흡입구가 먼지를 빨아들여도 모아놓는 통이 없으니 먼지가 다시 바닥에 흩뿌려지는 꼴이었다. 나는 또 넋이 나갔다. 집의 절반을 돌리는 동안 이걸 몰랐다니. 이렇게 한심한 청소기 데뷔식이라니. 스물아홉 살 먹어 청소기 하나 제대로 못 돌리는데 결혼은 한 게 신통할 지경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면 음식도 맛있게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건 정말 정답이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내가 온라인 레시피를 보고 리조또, 카레를 뚝딱 해냈다. 앞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안일이 요리라고 했는데, 요리는 하면 할수록 느는 맛이 있기 때문에 금방 재미가 붙었다. 물론 그만큼 실패가 잦은 영역이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쌀을 씻어놓고 밥솥에 얹혀놨는데 그날 식사 메뉴가 바뀌어 따로 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필 주말 동안 밖에서만 식사하느라 밥솥은 무려 사흘 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생쌀이 물에 불려지면 죽이 되는 걸까? 나흘째가 돼서야 그게 궁금해진 나는 혹시나 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쌀을 씻어놨는데."
"으응."
"그게 나흘 동안 그대로 있어. 괜찮겠지?"
잠들려던 남편이 눈을 번쩍 떴다. 내 삶에 또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는 전개가 벌어진 게 싫어졌다. 별 일 없겠지, 있어봤자 죽이 되어 있겠지 하며 밥솥을 열었다. 거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음식이 있었다. 쌀이 물을 모두 흡수하여 빵빵해져 있었다. 만져보니 딱딱했다. 우선 죽은 아닌 걸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말하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강타했다. 3일 동안 밀폐된 밥솥 안에서 쌀이 발효될 대로 발효가 된 것이다. 과장 안 하고 마치 토사물을 액기스로 모아놓은 것과 흡사했다. 어찌나 고약하던지 남편과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으악! 여보 이거 버려!"
부랴부랴 음식물쓰레기봉투에 쌀을 버리는데 사람의 손보다 빠른 냄새는 온 집안에 폴폴 번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새벽 6시 홍대입구 선술집 앞에서 누군가 만취상태로 오바이트했을 때 이런 비슷한 냄새가 날까? 남편은 이런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본다며 얼른 방으로 도망가자고 했다.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우리의 모습은 냄새와의 전쟁에서 완전히 패전한 모양새였다.
내가 이렇게 최악의 냄새를 제조하다니. 너무 역해서 구역질까지 유발하는 냄새를 맡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살림에 있어 구제불능 같았다. 충격을 받은 내가 넋이 빠져있자 남편이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지영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할 수 있을거야."
따뜻하게 말하는 그의 손에 왜인지 힘이 실린 것만 같았다. 토닥임과 타이름, 그 중간의 손길을 느끼며 실패의 하루를 또 흘려보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칼질로 손을 다치고서야, 검은 옷과 흰 옷을 동시에 빨아보고서야, 무리해서 장을 본 탓에 냉장고 안 음식을 한가득 버리고 나서야 조금씩 살림을 터득하게 되었다. 수건에서 쉰내가 날 경우, 삶지 않고 버릴 것. 밥은 며칠 씩이나 물에 불려놓지 말 것. 여전히 청소기를 돌릴 일은 별로 없지만, 가끔 남편이 없을 때에는 꼭 먼지통을 확인 후 전원 버튼을 켤 것.
실패한만큼 배우는, 이토록 정직한 살림의 세계에 자진해서 발을 들였다니. 세상의 모든 새댁들이 위대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