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포레스트

by 윤지영



퇴근길 내내 유투브를 보고 또 봤다. 컨텐츠 제목은 '차돌 된장찌개 끓이는 법.'



먼저 적당량의 차돌박이를 뚝배기에 넣고 살살 볶는다. 곧 고기가 쪼그라들어 불투명해질 것이다. 익고 있다는 증거다. 다진 마늘, 고추장, 된장을 넣고 차돌박이와 어울리게 풀어준다. 재료들이 한 데 엉켜 자글자글 끓어오르면 쌀뜨물을 부어주고 2-3분간 더 끓여낸다. 이때 애호박, 팽이버섯, 파 등을 송송 썰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오면 썰어둔 재료들을 투하하여 익혀준다. 파는 나중에 고명처럼 올려야 아삭한 맛을 살릴 수 있다.



머릿속으로 차돌 된장찌개를 수십 번 끓이면서 지하철역 출구를 올라왔다. 코 끝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는 걸 보니 찌개 먹기 좋은 저녁이다. 거의 대부분의 재료가 냉장고에 있지만 없는 것이 있었다. 차돌박이와 마늘. 이 두가지는 오늘 매우 중요한 역할이므로 재래시장을 향해 종종걸음을 뗐다.



야채가게에 도착했다. 살림을 해보니 마늘은 웬만한 음식에 거의 다 들어가기 때문에 떨어지면 안 될 식재료 중 하나였다. 야채가게 아저씨가 마늘 외에 다른 건 필요 없냐고 물었다. 사과같이 반질한 파프리카가 눈에 들어왔다. 한 봉지 살까 하다가 최근에 하도 먹질 않아서 물러 터진 걸 버린 게 기억났다. 마늘만 있으면 된다 했더니 아저씨는 마늘 한 묶음에 이만 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천 원을 내고 그곳을 나왔다. 옆 옆 옆 가게 모퉁이 고깃집에서는 차돌박이 190그램을 구매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차돌박이를 찾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지 포스기에서 한참을 차돌박이를 찾다가 겨우 결제를 해주었다. 랩에 쌓인 차돌박이의 결이 곱디고왔다.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는 달음질이 낯설었다. 게다가 차돌박이와 마늘을 품고서 가다니. 신혼 몇 개월 만에 주부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은 낯간지럽기도 했다. 모든 엄마들이 나처럼 종종걸음으로 퇴근했을까. 저녁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아내의 사랑을 배워가는 걸까 나도.



남편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결혼하고 나서 6개월 만에 먹는 첫 찌개라서 우리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겉옷을 벗은 뒤 손만 씻고 주방 앞에 섰다. 결의를 다지는 무사처럼 칼을 들었다. 서걱서걱 마늘을 잘랐다. 지난주에 베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에 조심하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신혼집에 정식으로 들어온 날, 제일 먼저 한 일은 밥을 해 먹는 것이었다. 그때는 잠깐 시댁에 들려 가져온 냉동새우볶음밥을 프라이팬에 대충 볶아서 먹었었다. 식탁에 앉아 인스턴트 밥을 마주하니까 왜인지 웃음이 터졌다. 요리에 적극적이냐, 수동적이냐에 따라 앞으로 이 식탁이 전혀 다르게 바뀔 것을 생각하니 약간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난감한 상황에 주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 집을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채우기에는 뭔가 아까웠다. 음식이란 먹는 사람의 정서에 분명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뚝딱 나오는 편리함이 아니라 오래 걸려도 집안을 훈훈하게 데우고, 고소한 음식 냄새로 채우고 싶었다. 가정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돈독해지듯이 식탁을 채우는 음식도 비슷한 과정이길 바랬다. 어느 정도 노동이 들어가고, 레시피를 익혀야 하는 수고로움. 필요한 과정을 온전히 겪어내어 실력이 쌓이면 좋은 아내가 될 거라는 마음도 한 켠에 있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먹이면 가족 구성원들이 집에서나 사회에서나 좀 더 고운 마음을 쓰게 될 것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끼는 사람에게는 무언갈 잘 해먹이고 싶어 하는 나의 사랑의 결을.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헌신이었다. 결혼은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결혼 전 이미 파스타나 덮밥을 만들어먹을 줄 알던 남편은 신혼 초 메인 요리를 도맡아주었다. 나는 할 줄 아는게 없으니 설거지를 성실히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접시들을 닦고 있으면 나도 빨리 요리에 능숙해져서 남편에게 영양가 있고 감칠맛 나는 음식들을 해먹일 날들을 상상했다.



상상은 현실이 되어 곧이어 저녁마다 음식을 하나씩 만들었다. 다행히도 결혼 전 무수히 많은 맛집을 섭렵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잘 먹는 사람이 요리도 잘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남편이 대학원에 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은 좋은 실습의 시간이었다. 평일에는 밑반찬을 만들어보고 남편이 공강인 날에는 메인요리를 만들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요리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불 조절이었다. 무조건 강불로 조리하다가 몇 번 까만 고기를 만들고 나서야 중불 약불의 미학을 터득했다. 에그 인 헬, 김치볶음밥, 감자조림, 야식으로 떡꼬치, 주말에는 브런치. 오래 걸리지만 나름 먹을만한 것들이 식탁을 채워갔다. 식탁에 앉은 남편은 내가 만든 상차림 앞에서 매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맛에 나는 또 주방 앞으로 가고 이것은 기쁨의 선순환이었다.


냄비받침 위에 뚝배기를 올려놓았다. 차돌박이에서 올라온 고깃기름이 진하게 올라와있다. 배추전도 함께 했더니 저녁 먹을 시가은 거의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차돌박이가 너무 많아서 국물이 약간 걸쭉했지만 남편은 오늘도 ‘여보는 사실 요리사였어. 요리 천재야.’ 했다. 나는 그 말이 진짜 맛있어서인지,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기분 좋기로 했다.



오래 걸리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더불어 오래 걸리는 삶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행복한 저녁, 맛있는 신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