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에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파스타 가게다. 이제 제법 요리에 재미를 붙이니 더 이상 밖에서 파스타를 사 먹지 않게 되었다. 가게에서 먹는 파스타에는 새우가 야박하게 들어가는데 내가 만드는 파스타는 새우를 먹고 싶은 대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리오 올리오에서도, 까르보나라에서도 새우 파티를 열 수 있으니 굳이 돈 주고 사 먹을 일이 없는 것이다. 직접 할 수 있는 메뉴가 많아지면서 즐겨 찾던 식당들이 하나 둘 시야 밖으로 멀어졌다.
반대로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마치 몸속의 어떤 조각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새 조각이 자리 잡은 것처럼.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이 그렇게 살기 위해 알아서 가치관을 재배치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조금 신기하다.
남편과 몇 번의 식사를 만들어 먹고 난 뒤, 비만이 되지 않을 정도의 건강한 포만감은 미래를 잘 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믿게 되었다. 결혼 전 생활양식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땐 배달시켜먹는게 짱이었으니까. 어찌됐든 결혼 후 건강한 식사가 건강한 영혼을 키우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 식탁을 잘 꾸리는 것은 사명이었다. 그 후로 수많은 식료품 가게와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주변 상권과 뒤섞인 하나의 두리뭉실한 덩어리로 인식했다면 이제는 가게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곧 저녁식사를 위한 나의 목적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신혼터를 잡은 동네에는 큰 재래시장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각종 먹거리가 즐비한 세계였다. 발을 들여놓고 나면 왜인지 살림을 통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 마트의 인위적인 상품 정렬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독자적인 진열 방식을 고수하는 시장이 조금 더 좋을 때도 있었다. 퇴근하면 카페 드나들듯 시장을 드나들었다. 진미채를 잘하는 밑반찬 가게는 어디인지, 생생정보통이나 생방송 투데이에 나왔다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닭강정 집 두 곳 중에서 진짜 원조는 어디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시장에서 제일 큰 야채가게에는 신선한 대지의 산물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야채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의외의 복병은 아저씨가 건네는 농담이었다. 마늘 한 봉지에 이천 원이라고 분명 쓰여있는데 이만 원을 부르며 껄껄 웃는 특유의 아재 농담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왜냐하면 나는 웃기지 않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주 박하기 때문이다. 악의는 없으나 재미도 없는 농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보다 적응기간이 오래 걸렸다.
안정을 주는 곳은 과일가게였다. 매대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과일이 보통 제철에 나오는 베스트 상품이었다. 그건 너무도 자연의 일이라서 상술에 대한 방어 태세를 갖출 일도 없었다. 값싸고 맛있는 건 덤이고 심지어 조리할 필요가 없는 완전식품이었다. 온갖 종류의 탐스러움이 자기를 데려가라고 손짓해서 과일가게를 지나갈 때면 발걸음이 느려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여름에 시장에 가면 복숭아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놔서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단내가 폴폴 풍겼다. 도저히 안사고는 못 배길 유혹이었다. 여름밤마다 복숭아를 먹었다. 입안 가득 과즙이 퍼져 나오면 출퇴근의 피곤함이 씻겨졌다. 시장에서는 복숭아에다 모든 것에게 풍만함을 느끼게 하는 만족감을 끼워 팔았다.
가을바람이 불자 키위가 출시됐다. 복실복실한 모양과는 다르게 속 안은 아주 새콤했다. 새콤한 밥반찬을 먹을 일이 극히 없기 때문에 신선한 맛이었다. 겉껍질을 깎을 필요 없이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키위를 먹을 때면 숟가락으로 최대한 키위의 속살을 벗겨내되 껍질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의 강약 조절이 필요했는데 손이 섬세한 나는 거의 완벽하게 키위를 발라내는 반면 투박한 손을 가진 남편은 번번이 키위 까기에 실패했다. 자연은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을 맞이하고 나는 남편에게 완벽하게 깎아낸 키위를 먹이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제일 좋아하는 딸기는 겨울에 나왔다. 모든 생명을 숨죽이게 만드는 추위에 부드럽고 새빨간 딸기가 수확된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딸기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4등분 해서 요거트 위에 올려먹어도 조화로웠다. 하루는 교회 집사님이 큰 바구니에 딸기, 사과, 콜라비등을 잘게 잘라 넣고 요거트와 버무려주셨다. 그건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 같기도 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로 인해 과일을 가까이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육체와 영혼을 건강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드는 과일에 대해서.
가끔은 결혼생활도 과일에서 배우곤 했다. 못난이 귤을 배달시킨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수확했다는 귤은 기성 판매처에서는 아무도 사지 않을 정도로 껍질이 못생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쩍쩍 금이 간 것도 모자라 껍질이 주황색보다는 갈색에 가까운 빛깔이었다.
특이한 것은 맛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겉이 반지르르한 귤보다도 달콤했다. 몸체에 멍이 들고 한쪽이 옴폭 패인 못난이 귤을 보며 외형이 어떠하든 간에 본연의 맛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생긴 그대로 살아도 크게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애써서 더 나아진 자신이 될 의무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살면 된다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까먹는 귤 하나가 그 크기의 몇 배쯤 되는 행복을 가져다주듯, 하루하루를 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훗날 기쁨을 돌이켜보는 삶이 될 거라고. 그 무렵 살림을 익혀가던 새댁은 못난이 귤 하나에도 무언가를 배워가곤 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꾸미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뜻한다. 생각해보면 자연에게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봄이 되면 단맛이 나는 시금치를 키워내고 여름이면 시원한 수박을 길러내듯이, 나도 순리대로 살면 될 것이다. 저녁이면 식사를 차리고, 남편의 하루는 어땠는지 물으며, 밤에는 하루를 감사하며 마무리하는 것.
물론, 아직까지는 평일마다 시흥에서 서울까지 출퇴근 해야 하는 체력을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지만, 곧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이 모든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매거진에서 신혼생활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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