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열린 문

by 윤지영



연애시절이었다. 집 가는 길에 휘성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는 방에서 피씨 게임을 하고 있어서 책상에 대충 폰을 걸쳐놓고 게임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마 집 앞에 만개한 벚나무 사이를 걷고 있었던 거 같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그에게 팝콘 같은 벚꽃을 보여줬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휘성이 뒤쪽으로 휙 사람이 지나갔다. 실루엣이 성인 남자는 족히 돼 보이는 크기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누구냐고 물었는데 휘성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게임과 영상통화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등 뒤로 지나간 아빠는 신경도 안 썼다.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아버님을 스마트폰을 통해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인사드릴 틈도 없이 획 지나가시다니. 나는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상에서 자꾸 제3자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분명 늦은 밤이었는데 전화기 너머는 시끌시끌했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가족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너무 놀래버렸다.



휘성이가 게임하면서 나랑 통화도 하고 가족들과 대화도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에 놀란 것이 아니다. 사적인 통화를 방문을 닫지 않고 이렇게 오래, 공개적으로 한다는 점에 놀란 것이었다.



그는 모든 문이 열려있는 집에서 살았다. 안방도, 그의 방도, 화장실도, 베란다도 활짝 열려 있었다.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통화를 하거나 게임을 할 때, 그 외 사적인 시간을 가질 때에도 구성원이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했다. 홈쇼핑 열혈 매니아인 아버님이 거실에서 어떤 상품을 보는지, 요리 솜씨가 끝내주는 어머님이 어떤 조리를 하는지 가족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열려있는 문. 그게 휘성이네 집 문화였다.



내가 경악했던 점은 우리 집은 정반대, 모든 문을 꽁꽁 닫는 문화에서 내가 자랐기 때문이다.



안방도, 화장실도, 내 방도, 동생의 방도 언제나 정갈하게 닫혀있는 모양새였다. 그중에서도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곳은 단언컨대 내 방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집에 있는 날이면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했다. 밀폐된 방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노래를 들었다. 나에게 방의 의미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 취향이 밀집된 장소를 뜻했다. 내 방은 3칸의 옷장과 책상, 책꽂이가 단출하게 배열되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취향 수집의 산물들을 켜켜이 쌓아놓는 것을 하나의 기쁨으로 여기곤 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주로 글을 썼는데 글이 한 자도 떠오르지 않을 땐 그림을 그렸다. 노을 진 경리단길을, 제주도의 오름을 그렸다. 그것도 안되면 기형도 시인이나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했다. 매일 밤마다 창작의 에너지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방문을 꼭꼭 닫았다. 그러다 졸리면 동생 방으로 가 같이 잠을 잤다. 그게 집에서의 패턴이었다.



엄마는 방에서 아바의 팝송을 듣고, 민정이는 방에서 유튜브 먹방을 봤다. 나 스스로 상당 부분 기여한 우리 집의 문화는 개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는 모양새였다. 때문에 나는 한 번 방에 들어갔다 하면 무언가에 몰입하느라 연락이 잘 되질 않았다. 그에 반해 휘성이는 멀티태스킹의 귀재였다. 기습적으로 연락해도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었다. 저녁마다 그의 가족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짜짜가 짖는 소리는 덤이었다.



종종 그는 연락이 잘 안 되는 게 서운하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고 우리는 연애시절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을 겪었다. 그랬나 보다. 우리가 싸웠던 이유는 가정의 환경, 살아온 문화가 달라서였다. 우리는 평생을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산, 아주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소중한 것을 아껴두는 편이다. 이를테면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오랜 세월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많은 글을 써 본 후에야 친구들에게 조금씩 얘기했다.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주변에는 내가 글을 쓰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도 이게 편하고.



반면 휘성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갑자기 래퍼가 되고 싶어서 쇼미더머니에 지원한 걸 말한다던지,(그는 실제로 쇼미더머니 시즌6에 지원했다. 물론 서류 탈락했지만.) 원하는 진로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라고 원서도 넣기 전에 퍼트리고 다닌다던지. 내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픈을 그는 만인과 공유했다.



연애하는 태도도 달랐다. 나는 결혼을 확정 짓기 전까지 SNS에 연애 분위기가 풍기는 글은 전혀 올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티 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연애하는 스타일.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휘성이는 얼마나 많은 #럽스타그램의 충동을 자제했었는가.



소중한 것을 아끼고 숨기고 싶어 하는 나와 모든 것을 순환시키는 그는 서로 가정의 문화를 그대로 빼닮았다.



나는 이것이 결혼에 있어서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린 문에서 자란 그와 닫힌 문에서 자란 내가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결혼은 한 공간을 함께 사유하는 것인데, 침실의 문은 닫을 것인가? 서재의 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 화장실의 문은 또 어쩔 건지. 연다면 얼마나 열어야 할지. 절반 정도? 절반의 반? 절반의 반의 반?



문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다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진 않을까 골똘히 염려를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이란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그 집의 문은 몇 개인지 조차 모를 아주 막연한 미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우리가 살 집이 결정되었다. 시할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는데 결혼예산 200만 원뿐인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시댁 친척들의 배려였다. 경기도 시흥시의 오래되었지만 깔끔한 빌라, 거기가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집에 가구가 하나씩 채워지면서 예의 그 어색하고 소박한 신혼집이 꾸며졌다. 신기했던 것은 결혼 전 했던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문에 대한 갈등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우리가 집에 있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대학원을 다녀 밤늦게야 집에 왔다. 나도 마찬가지. 퇴근하고 와 밀린 집안일을 하면 금방 밤이 되었다. 문을 열고 닫고 할 틈도 없이 어린 부부는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문은 때로는 닫혀있었고 때로는 열려있었다.



결혼은 자연스럽게 둘의 문화와 역사가 섞이는 거였다. 이전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이 생겨났다. 막연히 걱정할 때는 몰랐는데 말이다. 결혼을 해보니 내가 했던 걱정들이 정말 쓸데없었구나 한다.



결혼을 한 지금도 시댁에 가면 언제나 모든 문이 열려있다. 친정의 문 또한 여전한 방식으로 닫혀있다. 이렇게 다른 문화가 뒤엉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는 현상의 중심에 있다니. 살짝 경의로우며 조금 신비롭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에 대해, 미혼자들의 혹은 결혼을 앞둔 이들의 걱정을 안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로 한 걸음 떼기가 어려운게 당연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들려주고 싶다. 결혼이 어떤지 직접 살아본 경험자로써 가감 없이. 눈 앞에 자욱이 깔린 안개를 조금은 걷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막연함 두려움 때문에 이 좋은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서.



결혼을 두려워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지영아. 괜히 걱정했어 그치? 결혼이 그렇게 막 문화적 충돌이 빅뱅처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마음 쓰느라 고생했어. 결혼이라는게 생각보다 무탈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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