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목조로 지어진 복층 주택이었다. 햇살이 잘 드는 오후였고, 집의 모퉁이마다 잎이 넓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내려앉은 햇살 덕분에 잎사귀의 미세한 줄기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그야말로 나른한 시간이었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가정집의 단상. 직감적으로 집주인은 따뜻한 사람일 거라고 느껴졌다. 감수성이 풍부할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집은 주인을 따라가기 마련이니, 집주인도 반드시 이 집과 꼭 닮은 사람일 것이었다.
희한하게 그 집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점박이, 누렁이, 흰 고양이, 낮잠을 자는 고양이, 늘 그렇듯이 심드렁한 고양이. 거실에도, 주방에도, 2층 난간에도 고양이들은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이 이 집의 주인이라도 되는 마냥. 나는 최대한 고양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그 집에 있는 동안 걸음걸이를 조심히 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내 걸음이 마치 고양이를 닮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쉽게 드러나는 사람을 좋아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은 편하지가 않았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별로였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나에게는 고양이었다. 고양이 족속들은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었다.
머릿속에서 그런 잡생각들이 이어지던 순간,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고양이는 뭐랄까 항상 미스터리 한 구석이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집에 있는 모든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일이라 상체에 닭살이 돋았다. 점박이의 갈색 눈동자, 누렁이의 누런 눈동자, 하얀 고양이의 파란색 눈동자와 골고루 눈이 마주쳤다. 그 뒤에도 몇 마리의 고양이가 더 있었다. 그들은 나를 가만히 주시했다. 너 지금 감히 우리 고양이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그런 눈빛이었다.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몸을 펴고 대열을 만들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물론 고양이는 내 몸보다 훨씬 작았지만 다수가 단결성을 보이니 신변에 위협이 느껴졌다. 혹여나 그들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간 해를 입게 될지도 몰랐다. 겉으로 활짝 웃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나는 너희에 대해 아무런 적개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 이 상황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 고양이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내가 계속 뒷걸음을 치는 동안 고양이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 집에 모든 고양이가 모인 것 같았다.
열심히 뒷걸음친 결과 등 뒤로 방문 손잡이가 느껴졌다. 나는 다급하게 손잡이를 움켜쥐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고양이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 시발.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는 데 성공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이게 뭐야. 격정적으로 뛰는 가슴을 부여잡는 와중에도 왜인지 고양이가 문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아 문을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니 그 방은 내 방이었다. 그러니까, 이 목조주택은 나의 집이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얼른 상황 파악을 하고 궁리를 모색해야 했겠지만 우선은 고양이 떼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는 진이 빠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시 한번 고양이는 기괴하다는 생각을 또렷이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 고양이들이 더 이상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이 닫힌 나는 이 방에서 안전하니까.
그런데 그다음 정말 더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문을 잠궜는데, 문 사이에 아주 작은 틈도 존재하지 않는데 아까 봤던 흰 고양이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는 액체라는 설이 있던데 과연 그랬다. 그 고양이는 액체처럼 매끈하고 납작한 몸이 되어 문을 통과했다. 나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 파란 눈은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선 나를 향해 달려들어 그 날카로운 이빨로 내 팔뚝을 덥썩...
그 순간 꿈에서 깼다.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나는 밤마다 평생 꿀 꿈을 다 꿔버릴 기세로 악몽에 시달렸다. 꿈마다 공통점이 있다면 꿈속에서 매번 가슴을 졸인다는 점이었다. 동물학교를 다닐 때도, 마을에 젊은 여자를 탐하러 오는 무리들 가운데서도 살 떨리는 긴장감이 있었다. 오늘은 고양이 떼를 만나 또 한 번의 서스펜스를 겪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왜인지 팔뚝이 시큰거려 화장실로 가 따뜻한 물 마사지를 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4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대충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출근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출근거리가 짧은 남편은 아직 자고 있었다.
- 여보. 간밤에 꿈을 계속 꿨어. 집에 고양이가 엄청 많이 있었어. 어느 방에 숨었는데 문틈으로 고양이가 계속 들어왔어.
출근길에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 두었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매번 이상한 꿈을 꾸니 같이 병원에라도 가보자던 남편이었다. 거의 바로 회신이 왔다.
- 응응ㅠㅠ
- 너무 무서웠다. 끔찍스러웠어.
- 으 고양이 무서웠을 거 같아! 나 같아도 무서웠겠다.
그도 나도 조금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이어서 카톡 알람이 울렸다.
- 강아지를 키워야 해. 그러면 우리를 지켜줄 거야.
그가 나를 안심시킨답시고 보낸 솔루션은 강아지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나는 뜬금없이 강아지 타령을 하는 휘성이가 너무 웃겼고 그제야 비로소 엄습해오던 꿈의 기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그가 어처구니없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속이 훤히 보이다 못해 투명할 지경이었다.
그와 첫 데이트를 하던 날에는 한강에 갔었다. 아직 겨울이어서 앙상한 공원에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 몇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휘성이도 강아지를 키웠다. 종은 요크셔테리어고 이름은 짜짜였다. 그는 여태까지 7~8마리의 짜짜를 키웠다고 했다. 그중에는 차에 치어 죽은 짜짜도, 얼어 죽은 짜짜도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얼어 죽은 짜짜를 따뜻하게 해 주면 다시 살아날 줄 알고 몇 시간을 꼭 껴안고 있던 날을 말해주었다. 나는 어쩐지 죽은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년의 심상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계속해서 추억을 꺼내는 그의 등에 가만히 기대어 귀를 열었다. 그게 우리가 한 첫 번째 스킨십이었다.
어느 날은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고등학생 때였다고 한다. 엄마가 집을 잠시 비웠을 때 아빠는 휘성, 휘진을 소집한다. '너희, 강아지 키우고 싶지? 그래서 아빠가 너희를 부른 거야.' 어리둥절한 두 형제 앞에서 아빠는 작전회의를 한다. 그가 보기에 강아지를 제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빠인 것 같았다고 한다. 아빠는 결국 엄마와 상의 없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두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강아지였다. 휘성과 휘진 모두 그 강아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주 작은 생명체를 보고서는 아빠에게 따졌다. 더 이상 강아지는 키울 수 없다며 너무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그의 부모는 옥신각신하다 갑자기 아빠가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집을 나갔다. 휘성과 휘진은 어리둥절했다. 이 일이 집을 나갈 정도의 일은 아니지 않나? 엄마 아빠가 싸울 정도의 일이라면 강아지는 키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휘성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아빠가 대답한다. 아까 우리가 작전 짠 거 기억나냐고, 이것도 그 작전 중에 일부라고. 휘성은 생각한다. 아무리 봐도 아빠가 삐져서 집을 나간 거 같은데.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키우기로 한다. 그때 그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 소형견의 요크셔테리어가 되었다. 지금 짜짜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그와 함께 살았다.
강아지 없이 살아온 세월이 극히 적은 휘성이는 아직도 가끔 푸념하듯이 얼른 짜짜를 키워야 할 텐데 하고 말한다. 꿈자리가 뒤숭숭할 땐 짜짜를 끌어안고 자면 꿈속에서 짜짜가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어쩌면 그의 말대로 강아지가 나를 지켜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같이 고양이가 떼거지로 나오는 날에는 분명 강아지가 나를 지켜줄 수도 있을 테다.
휘성이가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는 분명 강아지가 어느 정도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어머님처럼 강아지를 키우는 데에는 필요 이상의 수고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여 아직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