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by 윤지영



신혼집에서 출퇴근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부장님께서 물었다. 점심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어느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거라서, 우리는 짬뽕밥과 볶음짬뽕을 주문하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 신혼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출퇴근이 1시간 반 걸린다고 대답하면서, 결혼 전과 정확히 2배 늘어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부장님은 원래 살던 곳이 어딘데?라고 되물으셨는데 이 물음은 한 달 전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물어보신 질문과 같았다. 그때처럼 나는 ‘서울 쌍문동이요’라고 대답했고 부장님은 그때처럼 ‘으와~ 응팔의 그 쌍문동?’ 하셨다. 부장님은 전라도가 고향이라서 감탄사부터가 찰졌다.


곧이어 ‘출퇴근 길어서 힘들겠네’ 하셨다. 난 그렇다고, 요즘 악몽을 거의 매일 꾼다고 답했다. 최근의 꿈들은 매번 등장인물이 다르고 배경장소도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었다. 내가 심한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과 꿈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꾼 꿈은 이런 내용이다.



그곳은 동물학교였다. 선생님은 코뿔소였고 학생들은 사자, 토끼 이런 식이었다. 나는 얼룩말이었다. 얼룩말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스쿨버스를 놓치고 만다. 지각의 기운을 느낀 얼룩말은 교실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달그락달그락 그의 마구는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무늬만 아니었다면 경주마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부랴부랴 교실문을 열어재낀 얼룩말의 출석 타이밍은 하필 선생님이 막 얼룩말의 이름을 부르고 직후였다. 그러니까 지각을 했단 소리다. 그것도 아주 간발의 차로. 선생님께 출석을 반영해달라고 손을 들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손이 없다. 오로지 네 개의 발만 있을 뿐. 변명을 해보려 입을 열었지만 히잉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긴박감 넘치면서도 찜찜한 꿈을 날마다 꾸었다.



부장님은 내 꿈을 듣더니 탄식하며 이건 완전 회사 늦을까 봐 꾸는 악몽이라고 해석해주셨다. 나는 맞다고, 출퇴근 시간에 스트레스가 꽤 크다고 말했다. 부장님은 이사를 오라고 하셨다. 나는 이 집이 남편의 할아버지께서 주신 거라서 당장은 이사를 갈 수가 없다고 말했더니 부장님은 ‘아 그랬지’ 하셨다. 이것도 저 테이블에서 했던 대화와 동일했다. 부장님과 함께한 그날의 점심은 마치 데자뷰 같았다.



결혼 전 잠자리에는 항상 동생이 함께 있었다. 우리 집은 우리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항상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아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같이 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교적 잠을 곱게 자는 편이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면서 360도 턴이 가능한 부류였다. 종종 잠을 자면서 말도 했다. 잠꼬대라기엔 매우 정확한 발음으로 ‘나 좀 그만 관찰하라고 해’ 같은 온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을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종종 그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다. 반대로 나의 몸은 늘 냉했고 겨울이면 손과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자주 냉한 발을 그녀의 발에 갖다 대곤 했는데 그녀는 늘 차갑다 말하면서도 자기 발로 내 발을 포갰다. 어른들이 몸이 따뜻한 사람은 마음이 차가운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어렸을 적부터 알았다. 세상에는 몸도 따뜻하고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체온을 느끼다가 잠드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잠꼬대 킥에 한두 대 얻어맞고 가끔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같이 자는 대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꿈을 자주 꾸었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면 옆자리에 동생이 아닌 남편이 있다. 그는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너무 크다. 동생은 부드럽고 푹신푹신했다면 남편의 살갗은 단단하다 못해 딴딴하다. 그러나 같은 점은 그의 몸도 아주 따뜻하다는 점이다. 몸도 따뜻하고 마음도 따뜻한 또 한 명의 사람과 가까워졌다. 나는 그런 것이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그들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되뇌인다.


좀비 미드를 실컷 보고 잔 어느 날, 남편은 ‘그 버스에 타면 안 돼!’ 하고 아주 또박또박 외쳤다. 발음이 몹시 정확해서 나는 정말 좀비가 이 세상에 출현한 줄 알았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그도 잠꼬대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남편의 정도가 더 심했다. 잠들기 전에는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베개에 머리를 댄 그가 금방 잠들지 못하도록 침대 옆 작은 조명을 켜 둔 채.


우리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 부당함, 웃긴 에피소드, 지하철 1호선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잠들려고 하면 나는 그에게 한쪽 다리를 척 올렸다. 나는 평소에 얌전하게 자는 편이지만 진짜 편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 다리를 올려야만 마음에 안정을 느끼는 습관이 있었다.


“여보 내 다리가 무거워?”


그는 아니, 가벼워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나는 두 다리를 다 올리고 물었다.


“여보 이래도 무겁지 않아?”


그러면 그는 응, 무겁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배에 두었던 두 다리를 심장까지 올려놓고 세번째로 물어보았다.


“이래도?”


그제야 그는 적당히 하라고 말했고 나는 아쉽게도 다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다행히도 두 다리가 그의 심장까지 올라갈 동안 마음의 안정감은 차곡차곡 채워져서 잘 잠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뒤숭숭한 꿈을 꾸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