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by 윤지영

갓 결혼해서 따끈따끈한 신혼 라이프를 씁니다.

오늘의 글은 아래 순서대로 읽으면 좋습니다 :)


① 돈이 200만 원 밖에 없는데 - https://brunch.co.kr/@noowhy/135

② 아프리카에서 - https://brunch.co.kr/@noowhy/136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지금 이 글)


- 매거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글 전체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20180602









생각해보면 스무 살이 되고 나서는 거의 노동을 쉬어본 적이 없다. 대학시절에도 성적장학금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었다. 성공에 대한 열정 때문은 아니고 그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니까 딱히 목표 없이 열심히 산 셈이다. 나중에 글을 쓰려면 경험이 풍부한 게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가 있었을까. 덕분에 추억과 경험이 풍부한 청년이 되었지만 추억과 경험에 지불한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수중에 돈은 별로 없었다.



그런 내게 200만 원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은 잔고였다. 그런데 그가 결혼하자고 말한 이후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진입장벽이 높은 결혼산업 앞에서 예산 200만 원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해 보였다. 결혼이 이렇게나 빨리 내 앞에 놓일 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질 무렵, 200만 원뿐이 없어도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건 오히려 그와의 다툼에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데이트였다. 퇴근 후 을지로에서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식전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와중에 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휘진이 여자 친구한테 패딩 받았대.”



평소에도 그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 말 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말에는 악의가 없어서 절반은 실없는 소리, 절반의 반은 조금 웃긴 얘기, 그리고 남은 절반의 반은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가 일부러 아픈 말을 나에게 하는 거 같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휘진이 여자 친구와 비교당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휘진이는 휘성이의 남동생이다. 괜스레 내가 패딩을 사줄 능력 없는 여자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가뜩이나 쪼그라든 자존심인데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쏘아 올린 말이 정면으로 꽂혀버렸다.



그 무렵 나는 마음이 아주 많이 가난한 상태였다. 청혼을 받은 사람의 넉넉함은 진작에 사라지고 돈 앞에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있었다. 너의 결혼하자는 말에 내가 요즘 얼마나 근심하고 있는지 알고 말하는 거니. 자격지심이란 걸 알지만 이성적인 판단이 되질 않았다. 순식간에 그가 생각 없고, 이기적이고,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빈정이 상하면 영원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어 지는 성격인데 그 자리에서도 그러고 싶어 졌다. 하필 식탁 위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스스로가 애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이 굽혀지지도 않았다.



수십 초의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음식이 나왔다. 원래 사람은 분노하면 부자연스러워지는 법. 기계 같은 손동작으로 새우를 깨작깨작 먹으니 그가 왜 그렇게 먹냐고 했다. 대꾸가 없자 그도 슬슬 이 분위기를 눈치챘다. 그가 알아차렸으니 더 이상 새우나 먹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냐고 연거푸 물었지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우리 주변에는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풍요롭게 차려진 식탁 위의 정적. 을지로의 모든 레스토랑이 행복한데 그 가운데 우리에게만 불행이 닥친 것 마냥, 그리고 그 불행을 휘성이가 데려온 것 마냥 그가 더 미워졌다.



이 분위기를 견디고 있을 바에야 자리를 뜨는 것이 나았다. 우리는 벗은 지 얼마 안 된 외투를 다시 걸치고 식당을 나왔다. 지하철 역 앞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대치하길 몇 분째. 네가 잘못 말한 거라고, 나는 지금 많이 속상하고 슬프다고, 나쁜 자식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얼떨결에 영원히 아무 말도 안 하는 컨셉을 잡아버린 나는 집에 갈 거라고 말을 해버렸다. 역으로 내려가려고 했을 때 휘성이가 나를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너는 왜 싸우기만 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집에 가려고만 해.”



그렇게 말하며 내 외투 끝을 잡은 그의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는 울 때마다 소년의 모습이 되고는 했다. 나는 이전에도 휘성이가 우는 걸 몇 번 보았으나 우리 사이가 안 좋아서 우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소년 같은 두 눈이 묻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잘못되었냐고.



눈이 마주친 순간 방어적인 냉소가 깨지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얼른 그의 손을 잡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그는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종종 그를 토끼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정말 더 그랬다.



카페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를 잡고 그보다 더 이상한 폼으로 말을 꺼냈다. 영원히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아까의 입장이 조금 부끄러워 떠듬떠듬거리면서.



“휘성아 미안해. 사실은 내가 너무 부담이 돼서. 결혼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돈이 없잖아. 적어도 같이 살 집이라도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좀 막막해서 요즘에... 네 말에 괜히 날카로워졌나 봐.”


그 말을 하는데 이번엔 내가 마음이 이상해졌다. 회피하면서 보따리에 묶어놓았던 것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사랑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는 현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결혼 앞에서 좌절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이제 나의 이야기가 된 점. 돈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여태까지 인생을 잘못 살았음을 반증하는 것 같은 타인의 시선, 그리고 나 자신의 시선. 위축대는 자아. 쏟아진 내용물은 그런 것들이었다.



휘성이는 사실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네가 너무 좋아서 결혼은 해야겠는데 자기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많이 두렵다고 했다.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도 다시금 눈 주위가 붉어지는 듯했다. 둘이서 잠깐을 멍하니 있었다. 가끔은 어떤 말보다 침묵이 담담한 위로를 전하기도 하니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백팩에서 주섬주섬 노트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내가 성경을 읽었는데 지영아. 이런 내용이었어."



그는 조용히 말을 마치고, 며칠 전 읽었다던 시편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내가 많이 두렵다고, 내가 숨어있사오니 나를 건져달라고 부르짖는 시였어. 완전 내 모습인 거야. 너랑 살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렇다고 내가 취업을 할 예정도 아니고 대학원에 갈 건데. 나도 너한테 쓸데없는 말을 한 걸까 싶었어. 내가 했던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할까. 그런데 옆에서 같은 내용을 읽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시인이 기뻐 노래한다고.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다고. 분명 나랑 같은 본문을 읽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해석을 한 거야. 나에겐 보이지 않던 문장이 그 사람에게는 보였어. 신기하지. 그래서 이 시를 다시 읽는 순간, 더 이상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결혼은 돈의 문제가 맞지. 맞는데. 그런데 돈의 문제가 아닌 거야.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어쩌면 우리는 결혼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일 수 있어.”



휘성이는 요즘 이 시인의 입장이 되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통 중에서 시선을 달리하니 시인의 기쁨이 보였다고 했다. 돈이 없는 이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한편, 돈이 없어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쩌면 이 시의 화자는 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는 사조들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돈이 결혼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사랑으로 기쁘고 즐거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사람들은 결혼의 조건으로 왜 모아둔 돈을 얘기할까. 왜 남자 친구가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는지, 우리가 어떤 상처들을 극복하고 맞춰나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 걸까.



사실 지극히 현실적인 입장도 필요한 시각일 테다. 문제는 나의 믿음이었다. 돈이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는 사조를 믿어버린 나에게서부터 이 모든 고통이 왔다. 우리의 사랑은 돈이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왜인지 결혼 앞에서는 돈이 뭐든지 보장해줄 것만 같이 느껴졌다.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익숙한 고통을 선택한다고 한다. 나 또한 결혼에서 오는 미지의 기쁨보다는 익숙한 고통들, 돈이 없으면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을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니, 뱃속에서 어떤 것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어마어마한 허기가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이 전쟁을 치르느라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와 상의 하에 딸기 와플 하나를 주문해서 와구와구 먹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일전에 네가 물었었지. 9월과 6월 중에 언제가 좋냐고. 나는 9월보다는 6월이 좋을 것 같아.”



그가 웃는 것 같은, 동시에 우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인지 내 표정도 비슷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