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투어를 하면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더니.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드레스샵이 밀집해있는 청담동에 동행한 이는 남편과 내 동생과 시동생이었다. 의외의 조합이지만 우리는 다 같이 친해서 종종 그렇게 만났다. 그날도 투어를 마치고 근처 커피빈에서 죽치고 앉아 결혼과 전혀 상관없는 주제의 수다를 막 떨었다. 그동안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문제는 지하철에서 터졌다. 내내 서서 가다가 집 거의 다와가서 자리가 났다. 공교롭게 두 자리가 동시에 나서 동생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무렇지 않지 않아졌다. 눈물이 차오르더니 급기야 볼을 타고 툭툭 떨어졌다. 동생이 놀라서 왜 우냐고 물어봤다. 정작 울고 있는 나도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을 뿐이었다. 갑자기 왜?
“언니 왜 울어?”
“나도 몰라. 끅끅.”
평소에도 감정에 둔한 편인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울고 있으면서도 머쓱했다. 눈물의 이유를 찾아 하루를 되감기 하는데 드레스 샵에서 난감해했던 부분에서 기억이 정지됐다. 조금 그렇긴 했다. 나에게는 심각한 결정장애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드레스 중에 단 하나를 고르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원인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온전히 나를 위한 날이 아닌 것 같았다는 느낌만은 확실했다.
'결혼식은 신부가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날이야. 그래서 그날 하객들은 너무 예뻐도 안돼. 신부가 가장 빛나야 하거든.' 주변 언니들이 결혼할 때 모두가 입을 모아 했던 말이다.
샵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신부님, 신부님이 주인공인 날이니까 예쁜 드레스 고르도록 도와드릴게요. 신부님, 바로 전에 입었던 것도 잘 어울리셨는데 지금 것도 잘 어울리세요. 첫 번째 것도, 두 번째 것도, 세 번째 것도, 네 번째 것도 다 예쁘세요. 너무 곱고 우아하세요.' 어쩐지 무지막지한 칭찬이라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말을 한 시간 내내 들어야 했다.
칭찬세례와는 별개로 코르셋을 꽉 조인 거울 속의 나는 마냥 어색했다. 평소에 면, 마, 모 소재의 심플한 옷만 즐겨 입던 터라 이런 공주 옷은 자아가 형성된 후로 처음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네 벌의 드레스 중 과연 어떤 것이 나에게 최선인 걸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줄 옷이 이 중에 있긴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어코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게 이 세계의 룰이었다. 통상적으로 1시간 동안 4벌의 드레스만 착용할 수 있었는데 우선 입어봤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번복할 수 없었다. 다음 신부가 대기하고 있어서 정확한 시간에 피팅룸을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갈 때 봉투에 3만원 현금을 넣어 지불해야 했다. 1시간 동안의 피팅 비용이었다. 카드는 안된다고 했다. 이미 스드메 패키지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음에도 또 내야 하는 돈이 남아있었다. 업계는 이 일련의 행위를 통틀어 드레스투어라고 불렀다. 신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줄 옷을 고르는 일 치고는 공장의 기계 돌아 가는 듯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다.
이런 거 태어나서 처음 입어봐서 한 시간 만에 고르기 힘든데 어떻게 안될까요 라는 눈빛을 보내봐도 1시간에 4벌이었다. 혹시 모른다. 애걸복걸하며 떼를 써가며 강성 고객으로 나갔으면 1벌을 더 추가해서 입혀줬을지.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런 성격이 못되었다. 더군다나 드레스로 몸을 겨우 가리고 어깨를 헐벗고 있는 차림으로는 더 그랬다. 그들은 거대한 흐름이었고 나는 돈 없고 결단력도 없고 공주가 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는 일반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패기 어린 지영이보다 부끄럼이 많아진 지영을 마주하고는 하는데 그날이 수줍은 지영이의 끝판왕이었다. 찌질한 내 모습에 눈물 한 방울 추가.
하물며 친구의 결혼식에 갈 때도 옷을 4번 이상은 더 입어보는데, 일생에서 가장 예뻐야 한다는 결혼식에서 입는 드레스를 이렇게 골라야 하다니. 심지어 나에게 계속 제일 예뻐야 하는 신부님이라고 했으면서. 과연 피팅룸에서 들었던 칭찬이 진짜일까? 마구마구 솟아났던 의구심에 눈물 두 방울.
드레스 뿐만이 아니었다. 스튜디오, 메이크업의 세계가 다 그랬다. 다 정해진 시간에 딱딱딱 처리했다. 다른 말로 하면 돈돈돈. 일평생을 함께하기로 다짐한 남녀의 앞날을 축복하기보다는 얼마나 돈을 쓰게 할지, 어떻게 하면 이 산업을 효율적으로 굴릴지가 우리나라 결혼산업의 목표인 듯 보였다.
더 애석한 점은 예산이 부족할수록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는 일반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스몰웨딩보다 더 저렴한 것이 있다. 어떤 공식을 외우듯 일반적인 시장구조를 따르는 것이 그나마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비결이었다.
온라인에서 결혼 준비하기를 검색하면 죄다 일관된 '결혼식 준비 체크리스트. xls' 파일이 떴는데 다운로드하면 스드메, 예물 예단, 혼수 등이 당당하게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결혼은 미래라는 바다를 함께 항해할 파트너를 고르는 거라는데. 미래를 약속한 예비 신랑 신부가 결혼을 위해 맡은 중대한 프로젝트가 상대 집안 문화의 이해나, 살면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나누는 것이 아닌 결혼식에 필요한 절차와 예산집행이라니. 자본주의 세계에서 첫 단추를 꿴 두 사람이 그 후로도 계속해서 돈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살아야 하는 건 어쩌면 숙명과도 같을지 모른다.
남들 다 하는 결혼 준비인데 뭐가 그렇게 유난스럽냐 싶지만 나는 그날 가장 예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결혼에 대한 로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주가 될 마음도 없었다. 그저 한 사람과 평생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싸울 텐데, 한탄하는 날들도 많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보지 않은 앞날을 함께하기로 서약하는 그 날이 의미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밤엔 웨딩드레스에 대한 낭만이 깨진 거 같아 계속 울었다. 거대한 결혼산업 앞에서 패배감을 맛본 줄도 모르고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해보니까 결혼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신혼 라이프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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