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이 넘어서는 이따금씩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궁금했다. 몇 살에 할지, 누구랑 할지, 혹은 할 수 있긴 할지. 왜냐하면 나의 청년 시절은 항상 연애가 어렵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가 안 되는 글들을 자꾸 썼다.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나를 썼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려운 나에 대해서 썼다. 글의 세계에 흔적을 남긴 지 3년이 됐을 때 사랑의 불확실성을 종결시켜준 사람이 나타났다. 휘성이었다.
친구에서 연인이 된 지 한 달째, 그가 결혼하자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들으면 귓가에 종소리가 울린다고 하던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한치 망설임도 없이 꺼내서 놀랐을 뿐이었다. 결혼이란 밀도 높은 사건이어서 왠지 무거운 말일 줄 알았는데 그는 아주 쉽게 꺼냈다.
연이어 내년 6월과 9월 중 언제가 좋은지 물었다. 스물다섯 살부터 시작된 고민의 끝이 아주 가까이 도래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인생의 파도를 넘실넘실 넘어대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줬었다. 결혼은 둘이서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도 같다고. 내 파트너가 노를 젓기에 건강한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고 했다. 또 성실하게 물고기를 잡아서 끼니를 거르지 않게 해 줄 사람인지도 유심히 봐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 기나긴 항해의 여정에서 단 둘이 있을 때 재밌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켜본 그는 그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결혼하자는 말에 당장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으나 왜인지 내년 6월쯤에는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었다. 연애 3년 차인 친구는 내 후년쯤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결혼 얘기가 막 나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잘됐다 싶었다. 어물쩡 거리며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구가 물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결혼하려고 하는지 대답할 준비를 하면서. 그런데 내 예상한 반응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 돌아왔다. 친구는 나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결혼하려고 하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돈을 얼마 정도 모았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의아해하며 내가 대답했다.
“어... 나 150만 원 있는데 이번 달 월급 들어오면 50만 원 적금할 거야. 그러면 200만 원 모은 셈이지.”
친구는 예의 그 평정심 있는 표정을 유지하며 그 돈이라면 결혼은 힘들다고 단정 지었다. 뭐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수도권 전셋값은 1억을 훌쩍 넘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 꼭 집을 사지 않더라도 요즘은 전세 매매가 거의 없기 때문에 월세 계약을 해야 하는데 200만 원으로는 원룸 월세 보증금도 내기 힘든 돈이라고 덧붙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약간 부끄러워졌다. 친구가 나 창피하라고 말한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주변에 몇 없는 현실적인 타입으로 이상적인 나에게 언제나 객관적인 시각을 얘기해주곤 했다.
친구는 마지막으로 그 돈으로는 신혼여행도 빠듯할 거라고 종지부를 찍어줬다. 다만 남자 친구가 모아둔 돈이 꽤 된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휘성이는 나보다 적을 거야. 지금 아르바이트하고 있거든. 내년에 대학원 입학해야 해서."
대답을 하면서 나도 이 결혼은 무리라는데 결론이 미쳤다. 이토록 짧은 순간, 내 말에 내가 설득당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돈을 열심히 모으자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주제들이 우리 사이에 오갔으나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친구와의 대화는 현실감각이 없이 구름 위를 떠다니던 나를 땅으로 착지시킨 격이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꿈결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집값 마련 때문에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세대가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친구는 냉수 마시고 속 차리도록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해준 것일 테다. 그래, 결혼은 무조건 돈이라는데 나는 모아둔 돈이 200만 원 밖에 없지. 정확히 하자면 아직 150만 원이지만. 그래, 좀 그렇다. 그가 아무리 함께 항해하기에 좋은 파트너라 하더라도 우리는 200만 원 밖에 없으니까. 결혼은 여전히 머나먼 이야기여야 하는 게 맞다.
친구를 만난 곳은 연남동 새로 생긴 샐러드 바였다. 저녁으로 샐러드와 스프 한 접시만 시켰었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먹지 않고도 입맛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