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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는 친구

시간을 증명하는 대화

by 윤지영


"그 말 기억나? 스무 살 때 고대부고 앞을 지나가면서 했던 말. 어른이 되면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는 것도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그거 다 뻥인 거 같고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자고 했던 거."


"기억나. 난 최근에도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어. 그 말을 하는 어른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고. 진짜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


"나 군대 갔다 오고, 너도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고 이러다 보니까 진짜 만날 시간이 없네. 한 달에 한 번은 무슨, 분기별로 볼 수만 있어도 많이 보는 거지."



정말, 스무 살 때 그리고 스물한 살 때까지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많이도 놀았다. 나는 아직도 우리가 그 당시 신도시로 이름을 날렸던 일산이 궁금해 무작정 찾아갔던 것과 그의 알바 자리를 구하기 위해 성신여대 일대를 다니면서 함께 알바 자리를 알아본 것이 기억나는데. 결국 그는 어느 일식집에서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내가 두어 번 먹으러 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정말- 수도 없이 시간을 함께한 추억들이 적당히 편집되어 떠오른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렸던 우리는 세월 앞에 단단해지고 마음이 커진 만큼 적당히 냉정해졌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가 좋은 이유는 단단한 가면을 벗고 여린 모습을 다시 내보여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삶의 흔적을 봐봐. 정말 열심히 산 건 맞는데 가금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야. 소중한 것을 잃는 건 아닐까. 현실적인 자세를 갖추는 게 미덕이고, 이제 각자의 스케줄이 있으니 예전보다 서로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든 게 어찌 보면 잘 사는 걸 수도 있는데, 그냥. 우리가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우수에 젖어 이야기하던 어린 시절을 외면하는 건 아닐까 하고."


"나도 그립지. 근데 아마 누구나 겪는 성장통일 거야. 여기서 현실의 과제에 항복하고 단념한 채 살 것이냐. 아니면 추억 어린 순수성을 간직할 것이냐. 그거는 이제부터 우리가 적절히 균형을 갖춰야 할 몫이고."


"결국 무엇에 더 우선순위를 두느냐가 그 사람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거겠다. 이건 옳고 저건 잘못되었다는 편협한 시선은 우리 관계의 두께 앞에서는 전혀 치명적이지 못해.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증명하니까. 밤 되니까 고3 때 우리가 뭣도 모르고 미래를 예측해보던 너네 집 옥상도 생각나고 그러네."


"이렇게 살 줄은 상상도 못했지 그땐. 좀 더 멋지고 폼나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개미다 개미. 빡빡하네. 우리 자주는 못 보더라도 오래 보는 친구하자. 말 나온 김에 연말도 얼마 안 남았고 애들이랑 바람 좀 쐬고 올까? 걸쭉하게 추억팔이나 해보자고."


"좋아! 애들한테 연락해보자. 11월 말쯤 해서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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