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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남용

'좋아요'에 대한 고찰

by 윤지영


한파가 불어닥쳤다. 일기예보 덕에 온 몸을 칭칭 감고 나오긴 했지만 칼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우리는 카페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소파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꺼낸 안부.



"연말이라 바쁘지?"


"난 몰랐다네. 이렇게나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니. 중요한 건 연말에 참석했던 모임 중에 자발적 기쁨이 있었던 모임은 두어 개가 끝이었단 거. 나머지는 다 왜 참석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흐지부지한 자리들이었어. 나 거기에 왜 간 거지. 돈 쓰고 시간 쓰고 감정 노동하고."


"바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나이가 들수록 의무감으로 맺는 관계들이 많아지는 건 사실인 거 같어."


"그렇기도 하지. 근데 기분이 묘했던 건, 예전에는 그래도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은 뭐랄까. 인스턴트식 관계? 쉽게 내뱉는 말들로 관계가 형성되고 또 잠깐의 부재로 그 관계들이 사라지는 느낌이야. 좋아요 하나로 얄팍하게 친해졌다가 다음날에 좋아요 하지 않으면 허물어지는 거. 그런 인간관계 너무 싫어. 진짜 SNS가 근본적인 문제일까? 이걸 끊으면 다시 예전처럼 오랜 시간 걸려서 만들어지는 끈끈한 인간관계가 돌아올까?"


"무분별한 관계가 판을 치는 건 맞지. 내 생각에 인스타나 페이스북이나 그런 건 이 시대의 문제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거뿐이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 노력을 들이면 응당 보상이라던가 성취가 주어져야 하는데 노력에 비해 결과가 야박한 때를 살고 있다 보니 다들 노력 없이 빨리빨리를 외치며 문어발식 성취를 지향하게 되는 거 아닐까. 인간관계도 물론 그렇고. 오랜 시간 긴 호흡으로 관계를 맺는 게 아니고 엄지 하나로 쉽게 해결하고 싶은 관계 남용 시대."


"참 매력 없다. 근데 나도 또 외로우니까 거기서 발 빼진 못하고. 사실 아까 지하철에서도 좋아요 엄청 누르면서 왔어."


"나도 똑같아. 너 만나기 전까지 인스타 하고 있었어.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기에 좋아요 라는 말은 꽤 매혹적이잖아. 그냥 우리가 다 외로운가 봐."


"왜 우리는 점점 외로워질까. 진짜 웃기지. 방금 전까지 사람 많이 만나서 소모된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는데 지금은 또 외롭다고 하고. 나도 모르겠다. 단지 연말이라 마음이 뒤숭숭 한 건가."


"내일도 약속 있니?"


"응. 생각해보니 방구석에 처박혀서 외롭게 바닥 긁고 있는 것 보다 적당히 친한 사람들 만나서 노는 게 더 나은 거 같기도 하다. 다들 그러니까. 내일 송년회 사진 올릴 테니까 좋아요 눌러."


"그래. 너 사진엔 혼을 실어서 세게 눌러줄게. 재밌게 놀아. 무리하진 말고."


기승전 좋아요의 시대. 내년엔 좋아요 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걸 아는 멋진 우리가 되길 바란다.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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