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왠지 운동화는 그만 사야 될 거 같은 마음

by 윤지영



“벌써 스물일곱 살이 되어버렸어. 여전히 나는 복숭아 뼈가 보이도록 롤업 한 데님진과 나이키 스니커즈를 즐겨 신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팔자걸음으로 걷는 걸 좋아하는데. 문득 ‘누가 이런 날 스물일곱으로 생각은 할까? 스물일곱이 아직도 저러고 다닌다고 끌끌 혀를 차진 않을까.’ 생각이 들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도 여전히 풍파로 인해 소용돌이치고 시간과 돈만 있다면 세계 각지로 떠나고 싶은데. 남들은 자소서니, 토익이니 하며 스펙 쌓으며 바쁘게 살지만 난 아직 취업 전쟁터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없거든. 졸업한지는 6개월이나 지났다 벌써. 사람들한테 철부지 같은 속마음까지 들키면 날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볼까.”


“스물일곱이 뭐 거창하니. 아직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뿐더러 더럽고 치사한 배신에 부들부들 떨거나 눈물로 허덕이는 밤을 두어 번 경험이나 해볼까 하는 나이인데. 심지어 생일 아직 안 지난 사람은 만 25세라서 내일로 티켓팅도 가능하다니까.”


“난 스물일곱 살이 되면 어른처럼 점잖게 옷 입고 교양 있게 말할 줄 알았거든. 왠지 구두를 신고 머리도 단정하게 넘길 줄 아는. 이십 대 후반은 그럴 줄 알았어. 까마득히 멀리 있는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나 봐. 이렇게 눈 깜박한 순간 번뜩 눈 앞에 나타날 줄이야.”


“어릴 땐 누구나 미래를 보통보다 이상적으로 그리잖아. 네가 그리곤 했던 스물일곱은 어른의 정석인 모습이었나 보다. 참 웃긴 게, 각 사람마다 고유한 눈동자와 피부색, 나아가 각자의 가치관, 사고하는 방식이 있는데 보통은 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채 그럴싸한 교과서 같은 인생 몇 개 정해두고 모범답안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면 다 Fail이라고 이름 붙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또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면 어때. 아니, 어른다운 건 어떤 건데? 나이 마흔 먹었는데 여전히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이상적인 꿈을 꾸면 그건 어른답지 못한 건가. 터벅터벅 걷는 배낭여행은 꼭 청년시절에만 해야 하는 거냐고. 마음의 문제야.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네 마음속 기준을 조금만 여유롭게 두면 너는 언제든 그 자체로 훌륭한 스물일곱 살이 될 수 있어. 나이키 슈즈 신고 헐렁한 칼하트 맨투맨 입은 27살도 충분히 멋져."






너무 빠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하는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생각들은 우리를 빠르게 점령하여 '느려 터지고 게으른 습성 때문에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은 낙오자'라고 이름 붙이며 패배감을 안긴다. 또는 아직 세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면을 두고 '아직도 철들지 못해서 성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어른 아이'라고 평가절하 해버리기도 한다. 한숨이 동반되는 늦은 밤, 찌뿌둥한 몸을 뉘어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평소 좋아하는 스트릿 브랜드가 세일을 해서 내일 후드 하나 구매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꿔 좀 더 어른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베이직한 로퍼를 구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나이키 슈즈를 좋아한다면 이십 대 후반이 되었든, 서른을 지나 마흔이 되었든 나이키를 멋지게 신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 엄마 친구의 자녀가 하이힐을 신기 때문에 나도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라는 편승보다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신념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 엄마 친구의 자녀, 어른이면 어른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타인이 아니라 당신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