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나아가야 해
"친구라 말하기도 뭐한, 얼굴만 알고 인사 가끔 하던 애가 있는데 순박하게 생겼고 하는 행동도 소극적이어서 그냥 그런 애인가보다 했거든. 어제 친구들 만나서 그 애 근황이 잠깐 나왔어. 벌써 결혼을 했더라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맨날 술 마시고 들어와서 와이프를 엄청 갈군다네? 하도 소리소리를 질러대서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저런다고 신혼집 차린 동네에 소문이 다 났나 봐. 내 일도 아니고 내 주변 일도 아니어서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적잖이 충격적인 소식이었어. 절대 매칭 안되거든. 얼굴도 그렇고 성격은 더 그렇고. 와, 정말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진짜 순진하게 생겼는데 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나도 요즘 사람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일 몇 번 있었어. 엄청 조용조용한 사람이 알고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리더십 있는 사람이거나, 밖에선 하도 반듯하고 부지런해서 집에서도 마냥 똑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던 전 남자 친구도 실체는 완전 뺀질이. 첫인상이나 평소 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해버리기엔 사람은 감출 수 있는 모습이 참 많아."
“하긴 나조차도 그런 모습이 있으니까. 별 할 말이 없네. 나도 두루두루 친한 사람들한테는 쾌활하고 웃긴 이미지인데 몇 안 되는 친한 관계에서는 나름 진지해지니까. 일대일 관계는 또 다르고. 으 일대일은 영 어색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페르소나로 환경에 맞추어 바꿔 낄 수 있는 가면이 많지. 너 가면 몇 개냐."
"나 한 열다섯 개쯤 되는 거 같은데. 특히 회사에서 랑 친한 친구들한테서랑은 완전 양극단일걸.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운 거리보다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편안해진다."
"적당한 거리는 나를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 편하지. 먼 거리일수록 단점도 티끌도 안 보여서 서로를 좋게 평가해주는데 가까워질수록 허물도 더럽게 많고 얘는 진짜 상종도 말아야겠다는 치명적인 모습도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원래 적당한 거리는 누구나 잘해."
"허 참.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적당히만 할 수도 없고. 단점을 보여주면서까지 친해지기도 싫고."
"예를 들면, 남들보다 자주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목말라서 그럴 수도 있고, 또는 남들보다 즐거운 게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시시때때로 웃긴 상상을 하는 허파에 공기 들어간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고, 하다못해 웃으면 노화가 더디 온다는 소리를 듣고서 웃는 연습을 많이 하는 외적인 것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이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여러 이유로 웃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왜 웃는지는 말하기 전까진 모르는 거야. 그런데 또 우리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웃고 있는 얼굴에 대해서는 무엇 때문에 그런지 단번에 알아맞히기도 하잖아.
결국 상대를 깊이 아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깊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관계는 절대 사랑으로 발전될 수가 없어. 뜨뜻미지근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거야.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선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가야 해. 가까울수록 미운 점이 보이는데, 가까워져야만 사랑을 할 수가 있어. 아이러니한 인간관계의 숙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