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삶의 일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파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드러운 곡선의 조각상들을 만난다. 파리에 와서 연신 놀라워한 부분이 있다.
1.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운동복을 갖춰 입고 조깅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는 운동이 삶의 일부이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2. 네모네모 스펀지처럼 정갈하게 다듬어진 나무와,
3. 키스 키스 키스.
이처럼 낯선 풍경은 집을 나서자마자 선물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가든.
뤽상부르 정원이나, 튈르리 정원이나 파리의 공원엔 항상 주민들이 그곳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러 나온다. 태닝을 하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정원 문화는 이들 일상의 터전이다.
여행 2일차. 우리도 철재의자를 그늘진 곳으로 끌어와 우리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시간은 그림이다. 흰 종이에 투박한 터치와 사랑스러운 컬러로 이 정원을 그렸다.
그림을 그린지 한 시간 조금 안 되는 동안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노년의 연인이 우리 앞을 지나갔을 거고, 내 옆으로 담배 피우는 젊은 남자(덕분에 담배연기 잘 마셨다), 세 명의 대학생,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가 차례대로 앉았다.
선글라스를 벗어두고 네모나게 재단된 나무와, 따뜻한 회색의 인상적인 건물들을 바라본다. 이 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자. 봐야 할 것, 꼭 가야 할 곳, 반드시 먹어야 할 맛집은 수도 없이 넘쳐난다. 파리는 무궁무진하므로. 크루아상, 루브르, 마레지구, 크레페, 몽마르트르 언덕, 노트르담 대성당...
나는 항상 무언갈 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공부를 하고 취직을 했으며 여행마저도 그런 방식으로 해왔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시간이 있을 때 하자고 항상 뒤로 미뤘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은 오지 않았다. 나에겐 여전히 만나야 할 사람과 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으니까.
나는 파리가 기쁜 만큼 한국의 내가 슬퍼졌다.
정규직임에도 불확실한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 시간을 쪼개 쓰다 보니 오는 낭만의 부재.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그런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정원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을 누리다 보니 얼마 전까지 휴식이란 의자에 엉덩이조차 붙이지 못했던 내가 보인다. 그 좁은 어깨를 그림 속 회색과 초록색이 토닥토닥. 종이에 삐뚤빼뚤한 그림이 완성될수록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잖아' 한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오늘 허락된 태양의 건강함을 누리자고, 해야 할 것을 뒤로 미루지 말자고 약속한다. 나의 해야 할 것은 그림과 글을 쓰는 거다. 몰두했을 때 가장 나답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여행을 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 둘째 날이니까. 이 정원을, 파리의 높은 하늘을 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