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중에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라고 말할 것이다. 인상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인 고흐는 과감한 색감과 생명력 넘치는 붓터치 때문에 현재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이지만, 그 때문에 그의 삶 자체는 절망이었고 안타까웠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의 인생의 무게란 어쩌면 너무 가혹할지도 모른다.
1년 전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국가 우선순위는 단연 프랑스였고, 고흐는 압도적 이유였다. 유럽여행을 할 땐 반시계 방향으로 많이들 돌던데, 우리는 한시라도 체력이 좋을 때 미술관을 가고 싶었다. 고흐가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초상화를 실제로 보는 건 어떤 경험일까. 나는 파리에서 고흐를 만나고 싶었다.
뮤지엄 패스를 끊은 첫째 날 일정이 루브르 박물관이었고, 우리는 하루 동안 3만 부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코스가 바로 인상파 회화가 전시되어있는 오르세였다. 루브르보다는 아담하지만 작지 않은 규모의 오르세 미술관. 우리는 1번 방부터 찬찬히 당시 미술가들 자부심의 전부를 감상했다.
감사 사랑 정직함 들판 자연스러움 자연과 사람이 느껴지는 밀레의 만종.
거친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강인함, 대담한 색조만 보아도 누구의 그림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고갱의 작품들.
빛의 화가로도 불리며, 사물은 고유의 색이 아니라 빛이 비치는 것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작품에 투영시켜 인상주의를 연 모네의 회화까지.
미술사 한 시대를 개척한 수장들의 섬세함을 만나며 놀라기도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나의 변치 않는 소망, 고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고흐 그림은 언제 나올까. 고흐는 2층에 있대. 이 그림, 점묘법이 참 아름답기도 하지. 고흐의 그림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렇게 평화롭고도 불안한 작품들 뒤에 나올 고흐를 기대하며 2층의 한 코너를 돈 순간,
드디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고흐의 초상화를 만났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에서 만난 그의 눈빛은 백 년이 지나도 어찌 이리도 강렬한가. 그가 선택한 물감의 색은 자연보다 조화로웠고 굽이치는 배경 속에서 유화 자국은 깊이를 알 수 없이 푸르렀다.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렸던, 그래서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그림에 그대로 나타낸 화가. 혼란 강박 긴장감 그러나 이상. 죽은 후에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생애 단 한 점의 그림만이 팔려 당시 평가로는 예술가로서 철저히 실패한 인생.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군가의 인생은 복권처럼 팡팡 터지는데, 누구의 인생은 노력이 배신을 하는지. 그럼에도 그 인생을 살아낸 고흐 앞에 나는 고개가 숙여졌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동생 테오가 후원하는 돈으로 가난하게 삶을 영위하면서도 물감을 아끼지 않았던 고흐. 만약에 나라면, 그림 그리기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조금의 피로에도 글쓰기를 뒤로 미루고 잠깐의 쾌락을 위해 노력의 시간을 유예하는 나에게 고흐의 눈빛은 명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 나는 그림을 사랑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여긴다. 정신병도, 가난도, 인정받지 못함도 내가 하고 있는 이 행위를 막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척박한 길도 옳은 길이기에 결국 꽃 피운 사람. 고흐는 내 마음에 도전을 주었다. 1888년도의 고흐와 2016년도의 나. 우리의 시대가 서로 달라도 그는 예술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어서 펼쳐지는 고흐의 그림을 찬찬히 마주했다. 모네의 수련처럼 큰 그림이 아니어도, 드가와 같이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어도 고흐의 몇 점의 그림만으로 나는 프랑스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르의 교회에서도, 고흐의 방에서도,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도 강렬하고 부드러운 그를 만났다. 감동을 넘어선 충격적인 마음으로 수십 분을 그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고흐는 나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니 그 후에 만나는 예술작품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도 슬슬 무거워질뿐더러 고흐 이후엔 어떤 그림도 밋밋해 보인 것이다.
고흐의 그림이 맨 끝에 있었다면, 나는 아마 모든 그림을 오래 참으며 둘러봤겠지. 그리고 비로소 고흐를 만난다는 폭발 감에, 드디어 만났다는 감격에 그 앞에서 보다 오래도록 서있었겠지.
목적을 이룬 삶이란, 그 후에 만나는 것들에 대한 가치 절하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고흐가 만일 살아있었을 때 화가로써 성공했다면, 그가 자화상을 그렇게 그릴 수 있었을까. 그의 인생 스토리가 절망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그를 사랑했을까. 한국에서부터 프랑스까지 그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기까지.
어쩌면 기구하기까지 한 그의 인생은 그에게 가장 알맞은 세팅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돌던 길거리에서 오베르의 교회가 탄생했을 거고, 불안한 내면 덕분에 흡입력 있는 초상화가 창조되었을 것이다.
- 만약에 고흐가, 고흐의 인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오래 기다렸다가 이뤄내는 인생이 더 축복인지도 몰라.
오래 걸리는 삶, 그것이 주는 쓰고도 달콤함에 대해 오래 걸리지 않아본 날에 생각해본다. 아. 그러나 아직도 고흐의 인생을 살아볼 테냐고 물으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