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글, 옷

by 윤지영



파리에서, 지영.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매일 하루를 마감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줄 알았다. 여행을 고대하던 이유 중 하나도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정원, 충실히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 지나친 낭만. 그래서 파리에서 눈뜨면, 감을 때까지 영감이 떠다닐 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는 샴페인에 취해,

하루는 3만 보를 걸어서,

또 하루는 콧물이 폭발하는 바람에(망할 비염),


그렇게 나는 여행자이지만 글쟁이는 아니었다.



파리 시내의 카페 테라스



예전부터 기억력이 나빴던 나는, 기억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은 기록뿐이라고 믿고 사진과 일기로 나의 살아감을 남기곤 했다.


내 캐리어에

켄트지 44장과 오일파스텔, 아크릴 물감, 프리다 칼로 표지의 무지 노트, 약간의 마카와 블랙 윙 연필은

기록. 널 위한 건데.



우리집 뷰



잠깐 캐리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또 옷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기록에 대한 욕심만큼 옷 욕심도 많았다. 파리에서 입을 로맨틱한 도트 카디건, 스위스 소녀 같은 자수 원피스, 열정적인 스페인 분위기에 맞춘 강렬한 레드 원피스까지. 아휴.


한국의 나는 티셔츠와 청바지, 캐주얼 마니아인데. 이 곳에 챙겨 온 옷은 절반이 공주풍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친구들은 지영이 공주놀이하러 갔네? 했다. 그리고 지영아, 너무 예쁜데 너는 지영이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나도 이렇게 소녀처럼, 예쁜 옷으로 변신한 내가 어색하긴 하다. 그래도 좋은걸. 새로운 장소에서 드레시한 나. 그러려면 캐리어 무게를 반드시 감당해야 한다.


욕심과 짐을 내려놓고 싶은데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 이 나이엔 어쩔 수 없나 보다.



좋아해 크로아상!
애완견을 사랑하는 파리지앵
안녕?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쓰지 못했던 글은 여기서도 볼게 많아서 쓰지 못하고, 한국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입지 않던 옷은 여기서도 한번 입고는 캐리어에서 꺼내지 않는다.


욕심을 버리고 나를 인정할 때, 옷도 글도 가장 자연스러워질 텐데 말이야. 근데 이런 나도 참 나란 말이지.



할아버지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