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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야

두려움이 용기를 붙잡다

by 윤지영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성취도 있지만 정말 이 길이 맞는 길인가 하며 넋두리하는 후배를 만났다. 흘러가는 대로 방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녀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 시기에 고민하고, 충분히 갈등하는 게 너에게 무조건 이롭다는 생각을 해. 우선 고민할 수 있는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은 베이스로 깔고 가고. 나이가 들면 고민을 못 해. 알지? 네가 지금 몇 살이지?"


"스물네 살. 내년에 벌써 스물다섯 살. 언니 나 나이 많이 먹었지."


"그러게. 너 처음 만날 때 스무 살. 완전 애기였는데 벌써 5년이 흐른 거구나. 나는 아직도 너가 트렌치 코트에 아디다스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온 그 날, 기억해. 패션혁명이었어."


"아 그때. 완전 아침부터 비염에 시달리면서 겨우 집 밖으로 나왔던 날! 기억난다 기억나. 언니가 두고 두고 놀릴 줄 알았으면 그날 콧물이 무릎까지 흘러도 다른 바지를 입고 나갔을 거야."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겨. 그랬던 너가 5년 뒤에 이토록 세련되어질 줄이야."


"시간이 정말 흐르긴 흐르는구나. 그때는 지겹도록 멈춰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서 더 무서운 거 같아. 약도 안 닳고 계속 달리니까. 너가 두렵다고 했지. 해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행동은 당연히 두렵지. 마치 이거와도 같아. 우리가 용기를 내려고 하면 언제나 두려움이 뒤에서 꽁지를 잡고 놔주질 않는 거. 그리고는 이렇게 협박하겠지. 용기를 냄으로써 너가 돈을 못 벌게 되고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으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 조금씩 줄어들 거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하고싶은 것을 향해 죽도록 달려야 하는 용기를 붙잡아. 그러고는 조금씩 용기를 먹어 삼키고는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며 말하겠지. 어쩔 수 없었다고. 대신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벌지 않았냐고."


"그럼 언니. 나는 두려움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결국 모두가 다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정착하고 살게 되는 건가.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담보로?"


"너가 여지껏 하고 싶은 걸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도 만족이 안되잖아."


"응. 늘 내 일이 내 몸에 꼭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아."


"용기를 내면... 후회할 수 있겠지. 그동안 쌓아왔던 커리어가 날아갈지도 모르고. 근데 말이야.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은 결국 용기를 위해 치뤄야 하는 어느 정도의 선불금이 아닐까? 용기가 힘을 낼수록 기회도 오고 더 큰 돈과 효율적인 시간이 오잖아. 기회비용은 말할 필요도 없지. 만일 너가 하고 싶은 거에 도전했는데 처절하게 실패하면 앞으로는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 그 후에 선택하는 건 책임을 지고 할 수 있을 걸. 결국은 그것도 용기고. 죽이 됐건 밥이 됐건 용기를 내는 게 돈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버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리고 요즘은 죽도 밥도 사랑받는 시대잖아."


너의 고민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나는 안정보다 모험을 택하길 기도한다. 아직 우린 잃을 것이 많고 얻을 것은 더 많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값을 치르고, 더 값진 것을 얻어오길, 삶을 통해서. 그러나 이 모든 말이 직장을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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