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의 그림 한장

만화가가 꿈이 었던 여자 아이.

by 암튼

난 어렸을 적 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밑 그림을 그리는 것.

스케치는 즐겁고 항상 좋았다.

흰 도화지에 내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이나, 눈 앞에 기억하고 싶은 것을 그려서 존재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즐거웠다. 잘 그린다고 칭찬을 받았던 것도 컸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성격상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이 싫어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말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흘러 30대 초반, 엄마의 생신 겸 본가에 내려갔다. 엄마에게 드릴 생일 선물 현금50만원을 뽑아서 봉투에 챙겨 넣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근 하신 엄마와 외출 한 남동생, 오후에 나는 잠시 혼자 있었다. 엄마 화장대에 용돈을 숨겨 놓으려고 안방에 들어갔다. 안방 한켠의 책장이 눈에 띄었다. 나와 동생의 초등학교 때 파일철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오. 오랜만이네 한번 볼까’

기억도 나지 않는 개근상, 장려상, 우수상 등등 각종 상들이 있었다. 동생의 것 보다 나의 개수가 많음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하나하나 구경하는 순간 초등학교 3학년 때 미래 꿈에 대한 그림 한장이 나왔다.

그 그림 속에는 아파트와 기와집이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아파트 로얄 층에는 내 얼굴이 들어가 있고, 기와집에는 엄마아빠 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리고 종이 윗 편에 쓰인 글씨가 눈에 띄었다.

“나는 내 아파트 한 채, 부모님 주택 한채를 사드리고,

또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월급을 버는 회사원.”

엄마 용돈을 드리려고 온 그날 본 그림일기는 충격적이었다.

난 이미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 아파트를 30살에 매수했었고, 정말 회사원이 되었다. 게다가 강원도의 기와집 하나를 갖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쓰고, 여행하지 않는 날에는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회사원이기 때문에 그래도 다른 직장인들 보다는 여유가 있는 월급이었다. 덕분에 철 모르는 20대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번 돈으로 마음 껏 하며 살았다. 너무나도 신기 했다. 9살에 그려놓은 (나는 7살에 학교를 들어갔다. 빠른 년생 입학이 가능했던 시대.) 미래일기가, 정말 자기확언으로 작용한 것이다. 33살의 나는 가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3학년의 미래의 꿈이 안쓰럽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지도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의 결핍이 보였다.

내성적인 내가 잦은 이사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 그래서 이사 없이 안정적으로 쭉 살 수 있는 내 집.

그리고 엄마아빠가 집 걱정 없이, 돈 걱정없이 편안하게 한 곳에서 사셨으면하는 마음에 그린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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