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알바, 대기업 면접

겉은 밝고, 안은 썩어있던 대학생

by 암튼

겉으로는 즐거워 보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던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3학년, 여고동창이면서 같은 대학교를 간 민정이가 마트 알바를 소개시켜주었다. 얼굴이 예쁜친구라서 이미 대형마트에서 알바로 돈 벌이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방학 때 집에 내려가지 않고, 내 용돈과 월세를 받지 않았다. 내가 벌어서 내가 해결 했다. 마트 알바를 하는 여고 친구들과 방학 때 한 곳에 같이 살면서 월세도 N빵을 하였다. 그렇게 월세를 아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과 힘들어도 재미있는 방학 생활을 보냈다. 하루 일당 4.5만원 부터 시작했다. 나의 몸값이 올라가면, 명절 시즌에는 무려 일당 7만원 짜리도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주말 혹은 시즌에만 바짝 일해도 50만원 전후로 꾸준히 들어 왔다.

경쟁이 치열한 음식 상품이나 세재류 코너의 일은 전쟁이었다. 그렇게 경력을 쌓고, 나는 결국 불스원샷으로 정착했다. 졸업할 때 까지 꾸준히 했다. 웃긴 것은 나는 운전면허도 없었다. 그런데 차량용품 브랜드의 마트 알바생이라니. 가끔 아저씨들에게 상품 설명을 하는데, 그 고객들이 “운전은 해봤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럴 때 너스레를 떨면서 “저희 엄마아빠 자동차에 꾸준히 넣고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대꾸하기도 했다.

하루에 8시간, 점심시간도 스스로 사먹어야하고 휴게 시간도 적었다. 서서 일하는 것 그리고 영업이라는 것이 내 성격과 너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 언니들의 기가 너무 드셌다. 말투도 상스러운 사람들이 많았고, 제일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인드가 너무 싫었다. 엄마 아빠가 불륜을 저질러도 자식으로서 치가 떨리게 싫을 것 같은데, 그 행위에 대해 “요즘 애인 없으면 바보취급이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꼭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직장인이 될 꺼야.”

한창 마트알바에 경험치가 쌓일 때 쯔음에는 어느 회사에서 아예 직원으로 들어올려냐는 오퍼를 받기도 했다. 나는 이 알바는 정말 알바로만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거절 할 수 있었다.

너무 내성적이어서 엄마가 항상 말했다.

“너는 너무 물러터져서, 정말 세상 어떻게 살려나 걱정이 너무 많았어”

그러던 내가 마트 알바 2년을 경험하며, 나의 내면에 깔린 드센 모습이 장착 되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 모르는 상품을 벼락치기하며 설명했던 그 경험들이 내 안에 장착 되었다.

그렇게 마트 알바 2년 뒤, 그 알바생은 4년 대졸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다.

면접 당일 새벽, 나는 거울에 있는 나를 다독여 주었다. 면접 장 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기댈 곳은 바로 나 자신 뿐이었기 때문이다. 거울에 있는 나에게 “넌 밝고, 어리고, 또 프레젠테이션을 잘할거라서 바로 붙을 거야. 얼굴 보고 하는 임원면접에서 점수 높게 받을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모든 입사 서류가 탈락 되었고 유일하게 단 한 곳에서 받은 면접 기회였기 때문에 너무 절실했다.

그렇게 최종 임원 면접에서 나는 만족 스러운 PT를 하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우리 아버지께 합격 전화 소식을 전했다. 수화기 넘어 아버지의 숨소리를 통해, 소리없는 눈물이 보였다.

나는 세상 모든 일에는 100% 나쁘기만 하거나, 100% 좋기만 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어 선택한 비평준화 고등학교, 지방 국립대학교, 월세와 대학생 용돈벌이로 시작한 마트 알바 2년의 시간들이 나를 23살에 대기업 입사한 여성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내 인생의 작은 성공의 맛들을 취해보며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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