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대신 선택한 이것
대기업 입사 후 나를 고용해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리진급을 1년 특진하는 경험을 맛보았다. 그로 인해 나보다 나이가 많고 입사도 오래된 사람들에게 선배노릇을 해야했다. 개중에는 나보다 직급도, 나이도 선배임에도 이리저리 업무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전문졸 출신이라 나는 그 일은 못한다고 선을 긋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업무가 나에게 몰려왔다. 젊고 싱글이라는 이유로 야근과 특근이 나에게 몰려댔다.
대리 3년차 쯔음, 나는 회사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일 좀 하는 이미지’ 덕분에 업무적으로 나의 말에는 힘이 실렸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창 유행하던 워라밸을 나도 찾기 시작하였고, 회사근처에 살다가 퇴근 후 살고 싶은 동네, 경기도로 올라갔다.
여기도 살아보고 2년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에도 살아봤다.
그러다 결국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까지 임대주택에 사셨던 분당에 정착 했다.
2017년, 나는 만30살이 되었고 생애 첫 주택을 마련했다. 그것도 자주 함께 술마시고 돈 쓰러 다니던 친구랑 같이 말이다. 18평의 작은 주공아파트였다. 그러나 유명한 병원이 있었고, 지하철 역에서 도보 7분 컷으로 도착할 수 있는 곳 이었다. 바로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그 도시에 내집이 생기다니. 회사 근처에서 쭉 살지 않고, 분당으로 거슬러 올라와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하여, 오피스텔 전세를 살고 있던 덕분이었다. 당시에 입사 7년차였는데, 내 연봉보다 전세금과 집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운이 좋게 눈치챘다.
그래서 나의 소비메이트였던 판교친구와 함께 부동산을 역마다 다녔다. 요즘말로 임장이었다. 우리는 그저 시집을 가지 못한다고 해서 혼자 살더라도 이 동네에서 살 수 있는 작은 내집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친구는 판교, 나는 정자에 살고 싶었다. 지하철 역마다를 기준으로 소형평수만 매물을 보러다녔는데, 판교는 소형평형이 아예 없었다. 정자동 부동산은 이미 불장이라 우리같은 조무래기들이 들어갔을 때 인사조차 해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지 못했던 아래 지하철역 까지 계속 내려가봤다. 엄청나게 반겨주는 부동산 사장님들 사이에서, 우리는 18평의 아파트를 각각 한 채씩 매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자축했다. 병세권 아파트에 등기친 것에 대해 말이다.
소비중독에 빠져있던 내가 어떻게 아파트를 매수했을까?
나는 오피스텔 전세 살던 돈을 빼서, 월세로 내려왔다. 그 차액으로 아파트를 샀다. 대출로 아파트를 사는 과감한 짓을 했다. 1억8천짜리 전세에서 5000/50 월세로 바꿔서 살았다. 이듬 해2018년에 부동산 불장이 되면서 나는 아파트를 사자마자 바로 올라버리는 초심자의 행운을 얻게 되었고,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회사원인 이유는, 은행 대출심사 서류제출을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미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마음에 가득 차고나니,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고 있었고, 여전히 적금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에어비앤비의 게스트만 하지말고 호스트를 해보자. 호스트로 월세 50만원 정도만 남는다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이 생각이 머릿속을 약 6개월간 두둥실 떠다녔다.
공실일 때는 어차피 내가 가서 놀면되고, 손님받아서 실수익 월 50만 남겨보자!
그래서 무작정 내가 엄청 빠져있던 강원도의 한 관광 도시를 정하고 그 시골 동네의 부동산의 주택매물을 모두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