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없다
결혼이라는 카테고리를 제외하고, 나의 삶은 균형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이 무엇인지, 어른이 되어서 성장하고 싶은 분야에 스스로 공부한 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되었다. 몰입 자체가 고3 수험생일 때와 비할 것이 아니었다. 아마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빡세고 처절한지를 알아서 일 것 같다. 어른수험생 34살, 대기업 다니는 좀 늙은 싱글 여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돈 공부를 시작하며 얻게 된 독서라는 습관을 들인 지 3년이 되어 갔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그들이 또 원동력이 되어 또 달리고 성장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 경기도 18평 아파트도 갖고 있는 여자인데. 신혼집으로는 살만한데, 남자가 없구나.
그리고 이성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이 궁금해졌다. 2세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났다. 마치, 투자 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를 할 때 조바심이 나고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33세 여성, 내년이면 30대 중반이다. 결혼 적령기가 아무리 늘어났다고 한들 35세부터는 노산이라고 하던데, 나는 결혼할 남자조차 없는 33세 여성이 되었다. 조바심과 열정을 기반으로 결혼할만한 연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주변의 소개도 모두 받아냈다.
1년 간의 과정에서 여러 남자들을 소개받았다.
‘아 그래도 호감을 살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조급한 중년의 연애는 잘 성사되지 않았다. 실패들이 점점 쌓여갔다. 나중에는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은 영화나 뉴스에서만 떠드는 소리인가 보다.
성격, 외모, 친절, 직장 등이 최악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직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남자들에게는 철저하게 마이나스가 된 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애꿎은 나이 탓만 하면서 건방진 생각을 해댔다. 자괴감에 빠진 나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마음이 너무 외로웠다. 고독했다.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타협해야 하는 건가. 무기력함이 왔다.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왜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가? 세상을 탓할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력하게 며칠칠을 보냈다.
그런데 또 한 권의 책이 나를 살렸다. “신녀성의 레미장센”이라는 책이다. 여우 같지만 밉지 않은 똑똑한 여성. 당신은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룬 에세이였다. 자기계발하고는 완전 딴판인데, 마음이 힘들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에 그녀의 유튜브가 떴다. 그녀의 화술술에 매료되어 책까지 구매해서 샀다.
그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내가 나를 대접해 주지 않았구나. 내가 나를 34세라는 중반, 중년이라는 키워드로 스스로를 옥죄었구나. 깨달았다.
토요일 이른 아침,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나를 실어 날랐다. 주차비도 낼 생각이었으며, 커피 한잔에 18,000원을 썼다. 그래도 크로와상을 두 개 정도 함께 주었다.호텔 커피 값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평소 해보고는 싶었는데, 스스로 벽을 치고 못해 본 것이었구나.
어쩼든 내가 나를 좋은 곳에 데려갔다. 그리고 좋은 책을 읽었다. 호텔 직원에게 대우를 받았고, 책의 저자에게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나를 존중하고 대우해 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했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란 무엇일까?
일단 공대 출신에, 남초회사에 다니는 나의 위치가 유리했다. 내가 수년간 친구로서 잘 지내는 남자 동료들이나, 친구들의 공통된 자질은 무엇이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상대가 그나마 몇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오래도록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데, 중년의 나이에 결혼상대를 이상한 쪽에서 찾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화가 참 잘되고,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차고 유머러스하거나 성격 대찬 남자가 아니라, 잔잔한 쪽이었다. 내가 나를 잘 보여주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남자가 결혼하기 좋은 남자였던 것이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란? 진짜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남자가 나에게 결혼하기 좋은 남자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 여성독자들이 계시다면, 이 부분을 꼭 참고하시라. 그리고 본인의 오랜 남사친들의 공통점을 한번 생각해 보시라. 그럼 대충 답이 나온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고, 다시 또 열심히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저 좋은 사람으로 하루하루 살아냈다.
그리고 34살 가을 무렵,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를 양재천 카페거리에서 처음 소개받게 되었다. 결혼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내가 먼저 주말에 뭐 하냐고 묻게 만드는 남자인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에 영화를 봤고, 데이트를 하였다. 고백을 받고, 이듬해 봄에는 청혼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만난 지 1년도 안되어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34세에 만난 것이 아쉬운 것은 나이가 들어서 이 사람을 만난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우리는 말한다. 과연 우리가 조금 더 철없고 어릴 때 만났으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었을까?
그렇다.
몰랐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어떤 남자가 나에게 가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이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 정말로 신기하고 세상에 감사하다.
내가 유일하게 고를 수 있는 가족. 배우자를 나는 이렇게 만났다.
결국, 내가 스스로 무너지고 또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좋은 책을 통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정신이 또렷해진 상황에서 보석이 지나갔고, 나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늦깎이에 정신이 깨친 것은 또 나의 순리였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