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방송작가 되는 법

현직 방송작가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

by N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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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1. 서른이 넘어도 방송작가가 될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이 방송작가는 20대에 시작해야된다고 생각하실 텐데 사실 서른이 넘어도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음 방송국에 발을 디뎠고, 그때 맡은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하지만 예능이나 오락 같은 경우에는 서른이 넘었다면 일을 시작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특히 이 분야에서는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면 여러분 위로 5번 작가, 4번작가, 3번작가 등등이 있을 텐데 전부 20대 중후반의 파릇파릇한 분들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에게 오더를 내리는 방식은 절대 파릇파릇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루에 참을인()자를 3백번씩은 새겨야 살의를 꺾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제 경우엔 30대 초반까지도 생계와 같은 먹고사는 문제에 굉장히 무능했기 때문에 그 나이에도 20대 선배님들을 머리에 이고, 최저시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시켜주세요, 라고 했을만큼 상황이 절박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큐멘터리의 경우엔 사람을 아주 짓밟는 환경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2. 그래도 삼십대엔 방송국에 안 들어오는 것이 좋은 이유

그럼에도, 이런 저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서른이 넘으신 분들은 방송작가가 일생의 꿈이 아닌 이상, 차라리 좋좋소에 취직하는 편이 정신적으로나 급여적으로나 더 낫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연차 서열에서 오는 서러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방송작가가 되면 대출이 잘 안나옵니다. 프리랜서라서 그렇습니다. 특히 방송작가는 계약을 6개월 단위로 하는 고용 불안정의 끝판왕인지라, 내집마련과 같은 30대의 중요한 생애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밤샘이 많아 몸을 상하게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방송작가를 꿈꾸는 30대분들이 계신다면, 도망가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럼에도 방송작가가 되겠다면,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 방송작가는 어떻게 되나?


#1. 방송작가 구인 사이트

사실 방송작가가 되는 방법은, 공고문이 어디에 올라오는지만 알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인크루트나 잡코리아 같은 구인 플랫폼에서도 방송작가 채용 공고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는 신원이 불분명한(a.k.a.돈 떼 먹을 것 같은) 개인 프로덕션 공고도 무작위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먼저 이곳을 살펴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http://www.docuwriter.co.kr/main/



사이트에 들어가면 번역/프리뷰와 구인/구직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구인/구직을 클릭하면 많은 구인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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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회원 가입을 해야 글을 볼 수 있으니 먼저 가입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처음 방송작가로 일하시는 분들은 '막내작가 구인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뿌리면 됩니다. 막내작가는 방송국 경험이 전혀 없는 작가를 말하는 것이니, 경력이 없다고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막내 작가를 구한다면서 '경력 있으면 우대' 라는 등의 파렴치한 내용을 덧붙인 공고도 때때로 올라오는데, 그것은 업체에서 서브작가에게 정당한 페이를 주기 싫어서 꼼수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럴 땐 싫으면 뽑지 말든가, 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냥 지원서를 넣으면 됩니다. 단, 이런 짓 하는 업체가 조건이 좋을 리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2. 외주사 채용? 본사 채용?

이제 적당한 구인글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인글은 대충 이런 내용으로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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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점은 SBS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채용도 SBS에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즘 방송사들은 프로그램 제작을 외주업체에 맡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방송국들은 프로그램도 직접 안 만드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SBS 생활의 달인'이라고, 모두가 알 만한 프로그램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구인글일고 해도 SBS에서 채용을 하는 것으로고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반드시 제작사 이름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방송사에서 직접 채용하는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일 방송국에서 직접 채용을 한다면 제목 앞에 '본사 채용'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 글을 봤다면, 꼭 한 번 지원해보시기 바랍니다. 외주제작사보다는 본사에서 일하시는 게 훨씬 낫습니다. 외주 제작사 잘못 들어갔다가 월급 떼먹혔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무엇보다 업무 강도가 본사에서 직고용하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고 하니 가능하면 본사 채용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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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사 채용 구인글은 정말이지, 가뭄에 콩 나듯이 올라옵니다.

다시 리스트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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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페이지 전체 공고에서 KTV와 아리랑TV, 딱 두 군데에서만 본사 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방송사 다, 방송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방송국은 아닐 것입니다. 그나마 아리랑TV는 유명한 가요 프로그램을 몇몇 갖고 있긴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은 공고가 잘 안 납니다. 어쩌다 공고가 올라오는 경우는 경제나 외교 관련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KTV는 아예 세종시에 있습니다.


그래도 방송작가로 한 번 일을 해보고 싶다면, 외주제작사보단 이렇게 출처가 분명한 방송국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인기있는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고 싶으시겠지만, 그게 꼭 좋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보통 업무량이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위클리 인기 프로그램들은 밤샘은 필수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밤샘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일주일에 2, 3일은 무조건 밤을 새는 일과를 돌리다보면 누구라도 현타가 찾아옵니다. 밤샘이 없는 날에도 일은 계속 쏟아집니다.


그렇게 힘들게 몸으로 일하다보면 건강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성격도 나빠지고, 수면욕을 못 채우니 식욕에 집중하게 되어 도시락 배달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불같이 화를 내는 인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예능 작가들 성격이 어떠어떠하더라, 하는 소문이 도는 이유도 그쪽 일이 많아서 그런 것입니다. 출연자처럼 돈도 못 벌면서(메인작가는 제외하고) 일은 거의 극한직업처럼 하니, 성격이 어떠어떠하게 되는 것이 사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이 또한 여러분이 메인작가가 되면 다 해결될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러려면 1퍼센트의 독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늘 천운이 함께 해야합니다.


그러니 스타트를 끊을 때는, 이런 핫한 프로그램보다 견디기 좋은 아리랑 TV 경제 프로그램이나 EBS 다큐멘터리같은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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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EBS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교육적이고 젠틀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도 그런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시청률 압박이 없으니 다른 데 보다 조금 낫겠다고 추측해볼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방송국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영방송이 다른 방송사보다 갑질이 덜하고 조금 더 인간 존중을 해주는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플러스가 있으면 언제나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약간 친절한 대신, 시청률 압박이 덜한 대신, 꽤나 고료가 낮습니다. 이래서 급여는 사이언스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데 보다 덜 일하면, 다른 데 보다 덜 받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덜 받고 더 존중받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대단한 존중은 아닙니다만, 괜히 핫한 프로그램을 하는 외주 제작사에 갔다가 며칠 만에 학을 떼고 방송국놈들 다신 보지말자, 하고 이를 가는 대신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가 방송작가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인가를 테스트해보는 것이 직업선택에 더 낫기 때문입니다.


프리랜서 생존전략 No.18

꼭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급여는 조금 낮아도 안전하고 검증된 곳에서 일을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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