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넘어서진 못하나 여전히 아름다운.
1. <가재가 노래하는 곳> 책
2년 정도 준비하던 언론고시를 완전히 접고 마치 폐허처럼 보이던 4.5평 원룸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그 해 제가 접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제 방이 마치 카야가 구류돼 있던 구치소같다고 느끼면서 언젠가 고양이가 생기면 이름을 선데이 저스티스라고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제겐 여전히 고양이는 없지만 대신 스무개가 넘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있습니다. 이젠 구치소가 아니라 카야를 살리는 늪지에서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지금은 책의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유독 한 장면만큼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카야가 늪지 해안에 서서 비싼 빵을 조각조각 내어 하늘에 뿌리는 장면입니다. 그 빵은 아마 체이스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며칠 동안 아끼고 모은 돈으로 산, 비싼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카야는 새벽에 캔 홍합을 판 돈으로 겨우 옥수수 가루만 사서 연명했습니다. 그런 생활에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카야는 며칠 동안 더 굶고 더 아껴서 부드럽고 향기로운 빵을 마련했습니다. 그 빵은 아마 카야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체이스의 배신을 알게 된 카야는 주저없이 그 귀한 빵을 들고 늪지로 나가 갈갈이 찢어 갈매기 먹이로 던져버립니다. 석양의 붉은 하늘 위로 흩뿌려지는 빵조각들과 새까맣게 달려드는 갈매기떼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 자존감과 단호함에 아찔해졌습니다. 저라면 빵이 무슨 잘못이냐며 와구와구 먹어서 없애버리는 방법을 택했을 겁니다.
2.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
영화는 카야의 늪지를 무척이나 아름답게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굉장히 잘 살린 각색이 돋보였습니다. 제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다만 섬세한 감정을 택하느라 버려진 것들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빵을 흩뿌리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고, 스릴러로서의 치밀한 스토리 전개 역시 상당 부분 제거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거해도 러닝타임은 두 시간이 넘습니다. 영화가 갖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밀한 감정선에 집중한 것도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책으로 읽으면 이야기를 두 개의 층위에서 더욱 풍성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카야가 늪지의 생명체로 단단하게 커가는 성장스토리와 함께 치밀하게 계산된 스릴러가 동시에 펼쳐집니다. 그 귀한 빵을 거침없이 하늘의 흩뿌리던 카야의 단호함이 어떻게 늪지의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지 감탄을 하며 지켜보게 됩니다.
3. 인상
이것은 우리가 배제하고 멸시하던 사람이 어떻게 강인한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힘과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명민함과 예민함으로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 낸 작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보잘것 없는 인간이 강해지기 위해 더 큰 힘과 더 큰 폭력으로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봐왔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기는 해도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가 끝나면 저는 다시 현실의 보잘것없는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속이 시원한 것은 영화를 볼 때뿐이고 힘이 없는 저는 다시 불안하고 쓸쓸해져야합니다.
그러나 카야의 이야기는 사람이 단단하게 살기 위해서 꼭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예민한 성정으로도 얼마든지 확고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단호함과 명민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힘센 침입자를 물리치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큰 것들은 힘으로, 작은 것들은 명민함으로 생존합니다. 그래서 카야는 늘 납작 엎드려 지켜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여성들이 지켜봄을 당하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렇게 작은 명민함이 큰 힘을 이깁니다.
4. 총평
작고 외롭고 쓸쓸한 인간이라면, 보세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