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레몬나무를 키웁시다

by NOPA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어쩌다보니 초록병자가 된 저와 가장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식물이 바로 커피나무와 레몬 나무입니다. 오래 살아봤자 1년, 2년의 기간밖에 안 되기는 합니다. 커피가 두 살이고 레몬이 한살입니다.


레몬은 올 봄에 엄마한테 커피나무를 선물하면서 같이 샀는데, 맨 좌측에 찌그러져 있는 식물이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의 레몬의 모습입니다. 2개월 수령이라고 했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보다 훨씬 작아서 화원 아저씨한테 속았다고 생각하며 그냥 키웠습니다.


IMG_0141.JPG?type=w1 오랜만에 보는 썩파트 풍경입니다. 5개월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는데도 마치 전생처럼 느껴집니다.


화분도 두 번 분갈이 하기 귀찮아서 다이소에서 제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것을 사와 키웠습니다. 사실 키웠다기보단 그냥 오다가다 생각날 때 물을 한 번씩 주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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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의 무관심 따윈 아랑곳 않고 레몬은 폭풍 성장을 거듭하더니 9개월만에 이렇게 자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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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1년을 더 산 커피 언니보다 두 배는 더 자랐습니다. 아래 동그랗게 레몬까지 달고 말입니다. 4월 말에 2박 3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더니 느닷없이 레몬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때 우울이 바닥을 뚫던 때라 정확하게 레몬의 탄생 시기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깐 레몬나무라는 것은, 삽목한지 3개월만에 꽃을 피우는, 미친 생식 능력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지금이었으면 인간 벌이 되어 열심히 붓을 들고 설쳐대며 꽃들을 수정시켜줬을텐데, 그때는 우울한 마당에 식물에 관심이 있을 리 없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동안 그저 무심하게 바라만 봤더니 그 많은 꽃들 중 딱 한 꽃만 열매를 맺어 저렇게 천상천하 유아독존 레몬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겨울이 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미친 생식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식물이 겨울을 이길 재간은 없습니다. 오산이었습니다. 어느날 물을 주다 보니 끄트머리에 뭔가 동그란게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동그라미는 점점 커지고 점점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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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아침..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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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는 향까지 전달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레몬꽃은 아주 강렬하게 향을 뿜어냅니다. 아침에 거실로 나왔더니 새콤하면서도 황홀한 향이 집안 가득 퍼져 있어서 매우 낯설었습니다. 우리집에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4월의 아쉬움을 만회할 겸, 레몬꽃을 보자마자 붓을 들고 이 다산의 정열가를 조심스럽게 수정시켜주었습니다. 이제 고추꽃과 함께 레몬꽃도 수정시키는 일과가 생겼습니다. 식물계의 부킹 마스터가 된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221130_172417937.jpg?type=w1 정력가 고추나무


한 겨울에 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꽃들을 부비부비해주다 보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처량함인가 싶어 문득 붓을 집어던지고 싶어집니다. 그것 말고는 다 괜찮습니다. 그러니 레몬나무를 키워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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