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PA Jan 01. 2024

'쓰는 인생' 실험. 그 첫 해

[노파의 글쓰기] '나로 살기로 했다' 첫 해 결산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다들 새해 첫 날 잘 열었는지요? 

여기저기에 빚진 글들을 보내고 나니 저도 이제야 작년 한 해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는 작년 이맘때 방송작가 일을 접고 본격적으로 쓰는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2023년 첫 새해 결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난생처음 온라인 강의를 열었고, 빵을 굽고 식물을 키웠습니다. 

쓰는 인생은 ㅈㄴ 가난으로 점철돼 있어서 일정 정도 자급자족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침 사료가 된 호밀빵


1. 그 결과, 저는 이제 호밀빵과 바질 생산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2023년 저의 첫 번째 성취입니다. 


2. 온라인 강의는 잘 안 됐습니다. 

이것이 2023년 저의 첫 실패입니다만, 실은 잘 안 돼서 더 좋았습니다. 

글쓰기 수업은 소수 인원으로 해야만 각자의 글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 안에서 많은 여자들을, 엄마들을, 딸들을,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신부님도 만났습니다. 다정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고, 울컥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작가들이여….


아무래도 이건 성공의 페이지에 기록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온라인 강의는 저의 두 번째 성취입니다. 


3. 유튜브도 했습니다. 이건 확실히 실패입니다. 대차게  망했습니다. 


4. 그리고 <어느 날, 글쓰기가 쉬워졌다>를 출간했습니다.


이것이 아마 올해 한 일 중 가장 큰 성취일 겁니다.

‘~일 겁니다’라고 쓴 이유는 책이 잘 팔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팔렸다면 보나 마나 제 자신에 취해 꼴사납게 굴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이 또한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수치심에 방바닥을 좀 긁긴 했지만, 실패는 또 해바라기 꽃밭 같은 녀석들은 놓치는 것들을 보게 하지 않습니까?

 

독자들은 실패에서 길어 올린 이런 예민한 고통의 고백을 좋아합니다. 인간은 타인의 성공보다는 고통에서 더 큰 위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통받았다면 쓰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쓰는 고통의 맛은 아주 달콤할 겁니다. 

원래 내 고통은 남의 고통으로 치유하고, 남의 고통은 내 고통을 수혈해서 치유해 주는 겁니다. 

이렇게 고통으로 하나 되는 우리! 피의 연대! 투쟁!


그러나, 비록 판매는 고통스러웠을지언정, 출간 자체는 제게 매우 큰 성취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쓰는 삶’으로 돌입하기 위해서는 제 이름으로 된 책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십 대부터 비행기를 탈 때마다 출입국 카드 직업란에 ‘writer’라고 쓰곤 했는데, 그럼 제 동거인이 슬쩍 보곤 사기꾼이라며 마구 비웃었습니다. 

...

너는 그때 사기꾼이랑 산 게 맞지만, 이제 나는 사기꾼이 아니게 되었고 더는 너와 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기쁘다. 미안하다. 진짜 기쁘다. 


물론 저는 소설가 앞에서는 여전히 사기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겠지만, 그들을 피해다니면 괜찮을 겁니다. 


5. 강의, 방송, 칼럼

올해 계획은 아니었지만 책을 쓰니 부수적으로 따라온 일들입니다. 


그 덕에 지금의 정체성은 작가라기보다는 어쩐지 강사에 더 가까워서 또 다시 사기꾼이 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제 생계를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축이므로 영혼을 팔아서 하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작가보다 강사 일이 더 재밌습니다. 쓰는 건 오롯이 혼자 되는 일인지라 고독과 외로움에 온몸을 두들겨 맞아도 그 통증을 홀로 악착같이 견뎌야 하지만, 강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괴로움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사실 그 이상입니다. 재밌습니다. 


태생적으로 ‘인간 혐오자’에 가까운 제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재밌어하는 이유는 강의가 주는 강렬한 환상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인데, 이걸 또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제가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환상에 푹 빠지게 됩니다. 이 맛이 또 무지하게 달콤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쓸모있다는 환상, 이 두 가지면 술 없이도 취해 살 수 있습니다. 


6. 소득

앞의 다섯 가지가 부러우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아이구 내 새끼! 하면서 소중하게 끌어안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소득 부분에서 완벽하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스타와 블로그로 제가 많은 강의와 방송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셨겠습니만, 실상은 소득 목표를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저는 지극히 소박하고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쓰는 삶을 결심한 주제에 소득 목표를 높게 잡았을 리가 없습니다. 최저월급보다도 만 원이나 낮은, 월 2백을 목표로 삼았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1년 내내 한 번도 이 목표를 성취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빚지지 않고 모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겐 친구가 없고,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제빵 능력과 재배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대출금과 공과금을 내고, 고기도 먹고 물고기도 먹으면서도 빵꾸 안 나고 아슬아슬하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혹여라도, 저의 후리한 작가 인생이 어쩐지 재밌다고 느껴져 한 번 따라해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일단 작물 재배법부터 배우라고 말씀올리겠습니다. 


7. 남자

이게 이 글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인데, 글이 길어진 관계로 짧게 줄여야 하는 게 참 애석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몇몇 분이 호기심으로 다가왔다가 놀라서 날아갔습니다. 참으로 초롱새 같은 남자들입니다. 


몇 년 전에 ‘울 아부지 백억 있다’라는 말로 다가온 남자가 있었는데, 지금껏 그를 능가할 만큼 인상적인 인물이 없다는 사실은 못내 아쉽습니다.


선생님의 부친께 백억이 있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마는, 선생님 입고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느가부지 백 억 없습니다.


그리고 돈 자랑을 하고 싶다면 고기라도 사주면서 하는 게 예의입니다. 예의를 갖추신다면 그놈의 돈 자랑, 주기적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2023년은 멋진 한해였길 바라고 2024년에도 소박하고 단단하고 평안한 날들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노파의글쓰기 #노파 #김수지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책리뷰 #서평 #감성글 #2023년 #연말결산 #새해결심 #작가일상 #실상



작가의 이전글 혼자 떠나기 최고의 여행지, 군산 - 볼거리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