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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May 26. 2024

퓨리오사와 페미

페미 소리를 들은 것은 나였고 퓨리오사는 끝내줬다



퓨리오사를 보러 갔다. 

일주일 만의 외출이었다.


‘가는 길’에 초딩 녀석들에게 페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만 외출하는 탓에 그냥 두 사건을 한 번에 붙여 쓰기로 했다. 어쨌든 영화관에 ‘가는 길’은 맞으니 아주 틀린 문장은 아니다.


녀석이 나를 페미라고 부른 이유는 내 머리 길이 때문이었다. 미용실 사장님이 이거 숏컷 아니라고, 가장 짧은 기장의 단발이라고 굳이 강조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이제는 숏컷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덥수룩한데, 그것도 참지 못하여 페미라고 하다니.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한국남자를 한남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쁘듯 페미니스트를 페미라고 불리면 기분이 좋지 않다.


언어가 오염됐기 때문이다. 

혐오와 경멸과 반감을 꼬깃꼬깃 구겨서 상대방 얼굴에 던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안전한 일상과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원할 뿐이다. 길 가다가 머리 짧다고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런 것도 싫고. 


그냥 머리 말리기 귀찮아서 짤랐다고, 이 어린 녀석아.


하지만 아이는 고작 12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용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도 12살 때 가장 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서 그때 처음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눈이 매워서 몇 번 피지도 않은 꽁초를 버렸다가 왕초를 버렸다고 친구들에게 욕을 먹었다.


12살은 그런 나이이다.

그러므로 용서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야,

사람을 머리 길이로 판단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영웅은 대가리 털 따윈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퓨리오사를 보아라.

그리고 디멘투스를 보아라.

머리털에 신경 쓰는 쪽이 죽는다.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정체성의 지분으로 따지면 나는 페미보다는 스님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나를 스님이라고 불러다오.

‘님’자를 붙이기 싫다면 그냥 ‘스’라고 불러도 된다.

헤이, 스!



<퓨리오사 매드맥스>는 그냥 ‘놀라움’ 그 자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액션들이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진다.

듄은 이미 잊었다.


그중에서도 퓨리오사가 팔이 하나 없다는 설정이 가장 좋았다.

목표를 향해 가던 사람이 팔을 잃으면, 그냥 의수 꽂고 다시 가면 된다. 팔을 잃어도, 눈을 잃어도, 다리를 잃어도 그냥 잃은 채로 계속 가면 된다.


그러나 조지 밀러는 눈을 잃은 사람을 실제로 보진 못한 것 같다. 사람의 눈알은 그렇게 작지 않다. 마치 심연이 뚫린 듯 얼굴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어떻게 아냐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눈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매일 우셨다.

매드맥스를 봤다면 덜 우셨을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 글을 못 쓸 것 같아 간만에 길게 써보다. 요즘 또 어떤 계략을 꾸미느라 시간을 아껴 쓰는 중이다.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영웅이라 그렇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448259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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