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여행에세이] : 청풍호, 유람선, 케이블카, 문화재단지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제천시 일주일 살기에 선정되어 제천에 왔습니다.
제천은 정말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습기로 푹푹 쪘다가 열기로 절절 끓었다가, 변덕이 심한 날씨에 무리해서 돌아다닌 탓인지 기어이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렸다.
눈을 뜨자마자 이거 안 되겠는데? 하면서도 발은 꾸역꾸역 청풍호로 가는 버스에 올라서고 있었다.
내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있어서 하나가 ‘나 진짜 안 되겠어’ 하면 다른 하나가 ‘아이고, 어떡하냐’ 하면서 병든 몸뚱이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후자가 더 힘이 세다. 개 같은 년. 약한 쪽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풍호는 제천시 관광의 꽃이라고 보면 된다. 유적지, 유람선, 케이블카, 물, 모든 게 이곳에 있다.
또한 제천시에서 가장 시골스러운 지역이기도 하다.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 그러나 시차가 균일하지는 않다. 실시간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삼사십분 정도는 그러려니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전통적인 시간 관념을 체득할 수 있다.
# 1. 청풍호, 충주호, 단양호
어제 가스트로 해설사분께 충주호에 간다고 했다가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제천에서는 청풍호라고 해야 한다.
같은 호수지만 제천에 있으면 청풍호고, 충주에 있으면 충주호고, 단양에 있으면 단양호다. 공식 명칭은 충주호이나 담수량의 60%가 제천에 속해 있다.
그래서 제천시에선 우리는 청풍호라고 부를 거야, 라며 모든 공식 행사에 청풍호라고 쓰고 있고, 충주에서는 그건 아니지! 하는 중이다.
# 2.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의 놀 거리는 대부분 청풍문화재단지 부근에 몰려있다. 그래서 청풍문화재단지부터 가보았다. 관람료는 3,000원인데 디지털 관광주민증이 있으면 반값 할인된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운영하는 할인 프로그램인데, 미리 앱을 다운받아 제천시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아가면 편하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매표소에 물어보면 알려준다.
단지 내에는 충주댐을 지으면서 수몰된 마을의 유적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돈 받기가 미안하므로 부지 전체를 민속촌처럼 꾸며놓았다.
아쉽게도 이번 달은 박물관이 수리 중이라 수몰 유적은 구경하지 못했다. 대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청풍김씨 김명중 씨를 볼 수 있었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와 곤장 때리는 사또도 구경했다. 아무래도 제천시는 모형 취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청풍문화재단지의 진짜 주인공은 민속촌이 아니다. 뷰가 압권이다. 청풍호에 있는 모든 시설이 결국 멋진 호수 풍경을 즐기기 위함인데, 유람선도 타고, 케이블카도 타본 결과, 이곳 문화재단지에서 본 풍경이 가장 근사했다. 몸이 좋았다면 산 위 정자까지 올라가는 건데... 원통하다.
# 충주호크루즈 청풍나루
유람선도 탔다. 왕복 19,000인데, 여기도 디지털 관광주민증이 있으면 3,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유원지 녀석들답게 자기네들은 그거 안 된다고 강짜를 부린다. 이미 전화로 다 확인하고 왔는데도 우긴다. 그러나 내게도 사정이 있으므, 무슨 사정이냐면 제천시 지원을 받고 여행하는 동안 이런 할인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홍보해야 하는 사정이 있으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싸웠고 승리했다. 나의 센 쪽 자아는 싸움을 잘한다. 이곳에 가실 분들은 미리 전화로 관광주민증 할인 어떻게 받냐고 물어본 후에 가서 싸우면 된다.
막상 유람선을 타서는 병든 닭처럼 내리 잤다. 자다가 눈을 뜰 때마다 신선들이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져서 내가 왜 호수 한가운데 있는 건지 깜짝깜짝 놀랐다.
청풍호에 오면 아무래도 가격 때문에 유람선과 케이블카 중 무엇을 탈지 고민하게 될 텐데, 내 추천은 유람선이다. 유람선은 1시간 반 동안 타는데, 케이블카는 편도 10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유람선이 그렇듯 뭔가 드라마틱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휴가 때 뭐했어? 할 때 어, 애들 데리고 청풍호에 갔어, 하기에 좋다. 혹은 이것이 젊은 날의 나다, 하며 자신에 취해 있기에도 좋다.
# 청풍호 맛집 : 1인분의 비애
아스팔트 열기를 30분을 해치고 간신히 ‘성현’에 도착했다. 네이버 지도에는 안 나와 있는데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유명한 맛집이다. 규모도 웬만한 회사 구내식당만큼 크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겨우 자리를 잡고 주문하니 1인분은 안 판단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무척 미안해하셨는데, 제발 그만 미안해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아이구, 미안해서 어떡해요?”를 반복해서 외치는 통에 여기저기서 “왜왜?” “여길 혼자 왔대~”라고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50명쯤 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등이 따갑게 퇴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밖을 나서자마자 고양이가 있어서 위로받았다. 가엾은 것, 너도 혼자라서 못 들어가는구나.
두 번째로 간 곳은 ‘예촌’이라는 맛집인데, 혼자 온 떨렁이에게도 시래기 밥 정도는 내줄 수 있다고 하여 감읍하며 먹었다. 그러나 나는 시래기 밥을 별로 안 좋아하여 남겼다. 미안했다. 음식 자체는 정갈하고 맛있다.
# 청풍호반 케이블카
이것도 디지털 관광주민증 할인받으면 16000원이다.
전에 친구한테 청풍호 케이블카는 코스가 한 시간 반이나 된다고 했더니 친구는 그런 건 없다고, 케이블카 타고 전망대에서 놀고 오는 시간까지 전부 합친 거겠지, 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성질이 뻗쳐서 내가 찾아보고 얘기하는 건데 왜 사람 말을 안 믿느냐며 화를 냈다.
와서 보니 친구의 말이 모두 맞았다. 케이블카는 편도 10분 정도 걸리고, 전망대에서 보고 놀고 하는 시간을 1시간으로 잡아 총 1시간 반 코스라고 소개해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친구에게 영영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잘난척쟁이한테 욕먹고 싶지 않다.
전망대는 4층 정도의 건물로 돼 있고 각 층마다 다른 측면의 청풍호를 볼 수 있도록 데크가 설치돼 있다 또 모노레일도 탈 수 있고 패러글라이딩도 할 수 있다. 실내에서는 카페나 족욕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뇌가 끓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기에, 실제로 내 몸 어딘가에서 뭔가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었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하산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여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류장에서 40분 동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는 쪽만 하염없이 보다보면, 개가 천천히 지나가는 장면이 마치 환영같다.
# 안마 의자
5시도 안 되어 겨우 숙소에 도착했더니 이날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 바로 안마 의자가 있었다. 아미타불... 어떻게 5만 원짜리 숙소에 안마 의자가 있는 것인지! 이 숙소는 꼭 에세이에 써주겠다고 다짐하며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다짐이 사라졌다. 의문의 구멍들이 곳곳에 있었던 것이다.
현직 판사도 지하철에서 불법촬영으로 입건되는 나라에 살면, 그러고도 여전히 판사 일을 하는 나라에 살다보면, 이런 구멍들을 보고, 이곳은 구멍이 많은 곳이군, 하며 결코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게 다. 일단 치약으로 다 막아놓았으나, 구멍은 내 키가 닿지 않는 곳에도 있었다.
정말 싸고 깨끗하고 좋은 곳이었는데. 앞에는 대형 카페가 있어서 몸이 좋았으면 저녁엔 이곳에서 호수를 보며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래서 이 숙소에 대해 엄청나게 좋은 말들을 써주고 싶었는데, 구멍의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숙소의 이름도 언급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안마 의자에 앉는 순간 나의 모든 날 선 생각이 눈 녹듯이 녹았다. 머리속엔 오직 안마 의자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과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저주만이 남았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끓는 기름에 몸을 담그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죽는 순간 지옥으로 끌려가 기름 물에 천년만년 튀겨질 테니.
안마 의자의 효과로 12시간을 내리 잤다.
오늘의 교훈
1. 특별히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면, 여름에 청풍호는 자차로 오는 것이 좋다.
2. 삼십대 중반이 넘었다면, 작작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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