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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Aug 02. 2024

[여자 혼자 하는 여행] 제천 2일차 : 중부

[노파의 여행에세이] 미식 투어, 동네 책방, 갤러리 카페, 여성도서관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제천시 일주일 살기에 선정되어 제천에 왔습니다. 

제천은 정말이지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제천 2일차


#1. 가스트로 투어

가스트로 투어라는 것을 했다.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미식 투어다(23,500원). 식당 품질 관리가 잘 돼 있고, 특히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이 무척 좋다.


단, 2시간 동안 두끼의 식사와 세 번의 디저트를 다 먹어야 한다. 나는 불고기 전골과 막국수까지 먹고 전사했다. 그 이후에 떡 오뎅 맥주 등등을 먹는데 살려주십쇼 소리가 절로 나왔다.



#2. 제천시 동네 책방 <안녕, 책>


제천시 동네 책방 <안녕, 책>에도 갔다. 주인의 큐레이션이 내 취향이라서 사고 싶은 책을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그의 책을 보는 순간 모두 정리되었다.

언니, 난 언니의 영혼이 정말 좋아.


안녕, 책의 트레이드 마크는 두 마리의 고양이다. 둘 중 한 녀석은 눈이 하나다. 할머니가 생각나서 좋았다. 

여기서 잠시 책을 읽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한 후 책을 펼쳤다. 창을 사이에 두고 나는 책을 보는 척하며 고양이를 봤고, 고양이는 소나무를 보는 척하다가 잤다. 이번 제천 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안녕, 고양이.


#3. 미당 갤러리 카페

미당 갤러리 카페에 갔다. 가는 길에 동네 개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을 듯 짖으며 쫓아왔으나 기세에 비해 생김새가 너무 안 위협적이었다. 제천에는 귀여운 것들이 많다.  


드디어 도착한 미당 갤러리 카페.


규모에서 이미 짐작되지만, 그곳에는 제천의 큰손이 살고 계셨다. 사람을 좋아하는 큰손 언니는 내가 혼자 온 것을 보고 잘됐다 싶으셨는지, 살갑게 다가와 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를 들면, 미당이라는 동네는 워낙에 기운이 좋아서, 여기서 서울대 나오면 후진 데 나온 거고, 다들 하버드, 옥스퍼드는 나온다. 집안에 다들 고위 관리, 의사, 판사 등이 하나씩은 있다와 같은. 


그런데 정작 언니는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거라고 하신다. 기운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그래도 큰손은 큰손이셨다. 5천 원짜리 쌍화차 한 잔 시켰을 뿐인데, 직접 그린 부채도 선물해주시고, 재채기 한다고 뜨거운 꿀차도 서비스로 한 잔 주셨다. 그리고 나랑 일도 같이 하자고 하셨다. 역시 큰손은 다르다. 



약간 기운에 눌렸지만, 그래도 환대받고 가는 기분이다. 여행객을 좋아하는 현지인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이 잘생긴 녀석은 카페의 얼굴 마담인 마중이다. 그러나 노쇠하여 8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동물병원 의사의 말이다. 그러므로 마중이를 보고싶은 분들은 8월 안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 4. 세상의 끝, 시골 버스 정류장

시골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으면 마치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기분이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그 대단한 카카오맵 따위, 시골에서는 기를 못 편다. 그냥 기다려야 한다. 버스가 오는 쪽을 하염없이 보면서. 40분 동안. 


# 5. 제천여성도서관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도서관인, 제천여성도서관도 들러보았다. 집에서 여자라고 공부를 못하게 한 것이 한이 된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 수억을 기부해 지은 거라고 한다.


그러자 제천 남성들이 권익위에 성차별이라고 진정을 넣어 지금은 남자도 책을 빌릴 수 있게 됐다. 이 문제로 몇 년 전에 갈등이 꽤 컸다는데, 결과적으로 남자도 책을 빌릴 수 있게 됐고, 열람실은 계속 여성 전용으로 유지되고 있고, 제천시는 국내 유일의 여성도서관을 운영하는 도시의 타이틀을 지켰으니, 현명하게 해결된 듯 하다.


엘레베이터도 없고, 화장실은 재래식과 수세식 변기가 하나씩 있는 굉장히 검소하고 소박한 도서관이었다. 


열람실에서는 지체 장애가 있는 여성 두 분이 사서의 도움을 받아 시끌벅적하게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고 있었다. 일반도서관이었다면 벌써 여기저기서 눈총을 받았겠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여성도서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굉장하군. 


# 6. 홈홈스윗홈

역시 제천 맛집인 샌드타임에서 샌드위치를 사들고 왔다. 오른쪽 하나만 샀을 뿐인데, 서비스라며 또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제천은 정말 인심이 후하다. 그리고 음식이 다 맛있다.


다만 몸이 좋지 않았다. 이 좋은 저녁에,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샌드위치 싸들고 숙소로 가는 게 몹시 분했다. 관짝 같은 숙소로 돌아가는 주제에 홈홈스윗홈 그러는 것도 밉살스럽다. 

그래도 가스트로 투어 때 포장해 온 맥주가 있으니, 샌드위치와 함께 먹으려고 했는데 병따개가 없었다. 투어 때 받은 열쇠고리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초라한 둘째날이다. 역시 여행도 젊을 때 많이 해둬야 한다. 30대 후반만 되도 늙는 게 서럽다는 말을 매순간 실감한다.  


서러우니 일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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