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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Aug 04. 2024

[여자 혼자 하는 여행] 제천 4일차 : 에필로그

[노파의 여행에세이] : 찹쌀떡, 황태콩나물국밥, 관계의 미학

[여자 혼자 하는 여행] 제천 3일차 : 남부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제천시 일주일 살기에 선정되어 제천에 왔습니다.

제천은 정말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제천 4일차

끝난 줄 알았겠지만 기차 타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갈기갈기 물어찢을 것처럼 짖는 것과는 달리 너무 안 위협적이었던 동네 개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지방 여행을 할 때 천금처럼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시간을 맞춰 나가지 않는다’ 이다. 시골에서는 일찍 가거나 늦게 가거나 둘 중 하나다. 시간은 맞출 수 없다. 그러므로 늦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일찍 나서야 한다.


그래서 나도 12시 기차 시각에 맞춰 아침 8시부터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그리하여 다시 세 시간 반 동안 시내를 둘러볼 짬이 생겼다.


# 덩실분식


제일 먼저 덩실분식에 들렀다. 이곳은 빨간오뎅과 함께 제천시 최후의 맛집으로 꼽히는 곳이다. 3대에 걸쳐 우리 쌀, 우리 팥으로 찹쌀떡을 만드는 곳이라 그렇다. 6개 7,200원.

중국 팥에 길이 든 나로서는 가격이 약간 세다 싶었지만, 입에 넣는 순간 그럴만하다고 느꼈다. ‘살살 녹는다’라는 표현은 아마 이 집 찹쌀떡을 먹은 사람이 만든 말일 것이다.

진짜 살살 녹는다.


# 황태콩나물국밥

그러나 어제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찹쌀떡 같은 거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었다.

밥을 달라, 밥을!


안타깝게도 제천 맛집들은 대부분 점심 장사부터 한다. 그래서 겨우 하나 찾은 곳이 콩나물국밥집이었다.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은 게 분명한 모녀가 운영하는 넓고 깨끗한 식당이었다. 딸이 주방을 맡고 엄마가 홀을 맡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엄마의 심기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성실하게 물도 챙겨주시고 주문도 잘 받아주셨으나, 이내 꽥, 딸에게 소리를 질렀다.


“밥을 먹으라 마라! 알아서 먹게 냅두지, 뭔 놈의 잔소리야, 잔소리가!”


딸이 한 말이라고는, 여기는 자기가 할 테니 엄마는 가서 아침을 드시라고 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단히 토라진 엄마 때문에 결국 딸이 서빙까지 해야 했다.


나는 저 엄마 왜 저래, 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풍채가 좋은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셨다. 순간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할아버지는 오랜 단골인 듯 들어오자마자 주차 위반 딱지를 떼인 사연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어떡하냐며, 요즘 이 동네에 그런 일 정말 많다며, 자신도 몇 장이나 떼였다고 넉살 좋게 받아주었다.


엄마, 원래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러더니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콩나물국밥을 손수 끓였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주방 옆에 놓인 전기밥솥으로 다가가 밥을 양껏 펐다.


주방에서 나온 엄마는 할아버지가 앉은 자리에 뚝배기를 올린 후 김이고 고추고 다른 손님에게는 내놓지 않는, 그러니깐 나한테는 안 준 반찬들을 잔뜩 상에 내놓더니 마지막으로 자기 밥을 맞은편에 올려놓았다.


그렇다. 엄마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할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딸년이 먼저 밥을 먹으라고 해서 화가 났던 것이다.

딸이 잘못했다.


딸도 자기 죄를 아는지 엄마를 놀리지도 않고 가만히 자기 밥을 챙겨가 셋이 사이좋게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서로 반말하며 허물없이 대하는 태도가 마치 가족 같았으나 가족은 아니었다. 모녀는 할아버지를 꼬박꼬박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이 그들 관계의 마지노선이었다.


이 마지노선을 깨고 싶지 않은 이는 보아하니 할아버지인 듯했다. 할아버지는 정말 풍채가 좋았고, 그래서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고, 그 와중에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사모님 콩나물국밥 먹는 거 보니 나도 오늘은 콩나물이 먹고 싶네.”

“여기 분이 아닌가 보네, 여행 다니시는 거예요?”


이럴 땐 가능한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눈치를 챙겨야 한다. 안 그럼 엄마가 또 사나워질 테니.


국밥은 정말 맛있었다. 황태도 많이 넣어주셨고, 날계란도 하나 깨 넣으라고 가져다주셨다.


다만 체구가 적어서 그런지 밥을 부족하게 말아줬는데, 그럴 땐 밥솥 앞으로 가서 “사장님, 밥 좀 더 먹어도 되죠?” 하면 된다. 제천은 인심이 후한 곳이라 먹는 걸로 야박하게 내치지 않는다.

제천은 길거리에도 복숭아와 단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곳이다



#관계의 미학

여긴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가보는 줄 알았는데, 운 좋게 마지막에 짬이 났다. 역시 여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옛날 양옥집을 근사하게 꾸며놓은 카페로, 중정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은 카페, 왼쪽은 사장 부부의 집과 작업실이다.


언뜻 소박해 보이지만 공간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주인의 감성과 정성과 재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예쁘다.  


거기다 원두도 직접 볶는다. 부드럽게 마시고 싶어서 라떼를 시켰는데, 원두가 좋아서 무척 맛있었다. 나중에 제천 가면 꼭 한 번 들르시길.  


다만 의자가 딱딱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사업적으로도 훌륭한 곳이다.


제천 여행 끝!


 

Bonus! 제천 여행 팁
1. 2박3일 일정이라면, 북부(의림지)와 중부(시내)만 둘러보는 것이 좋다. 아니면 청풍호에서 2박3일을 전부 지내는 것도 괜찮다.

2.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라면, 역시 북부와 중부만 보는 것이 좋다. <안녕, 책>을 가고 싶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윽 추천! 그쪽으로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아 시간을 많이 버리게 된다.

3. 대중교통으로 남쪽 청풍호를 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여름은 피할 것!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의 기분을 알게 된다.

4. 제천 음식은 웬만하면 다 맛있다. 막국수, 하얀민들레밥, 청국장, 황태콩나물국밥, 찹쌀떡 전부 맛있고, 또 전부 몸에 좋다. 전국 약초의 80%가 유통되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음식에 최소 당귀 정도는 넣어주기 때문이다.

막국수 양념에도 뭐가 들어갔다고 했는데, 암튼 죄다 약재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고린내 난다고 안 좋아하는데, 그들도 서른만 넘어도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정신없이 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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