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 효자 없

[노파에세이] 병구완 일기

by NOPA



KakaoTalk_20240914_201842242.jpg?type=w1

이번 여름은 정말 지독하다. 오장육부가 돌아가면서 아프다고 성화를 부린다.


프린세스 장기들을 돌아가며 구완하느라 두 달을 보내고 나니 그새 뒤지든 말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역시 뇌라는 녀석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악마다.


마지막 병명은 장염이었는데, 장염 5일 차쯤 되니 제법 괜찮아진 것 같아서 친구와 고기를 먹으러 갔다. 소를 먹고 돼지를 먹고 무를 먹고 양파를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장염 1일 차가 되었다. 흰밥에 물을 먹는 날들이 또 시작됐다. 그러자 나의 프린세스 위장이 이 거지 같은 거 더는 못 먹겠다며 야로를 부렸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럼 먹고 뒤지시든가, 하면서 원하는 것들을 쏟아부었다. 당근 케이크와 송편과 떡갈비로 근본 없는 상차림을 내온 후 하나하나 입에 넣어줬다.

KakaoTalk_20240914_201842242_02.jpg?type=w1


다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지만 확실히 기분은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니 똥꼬가 좀 푸닥거리를 해도 니 까짓게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하는 대범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산다는 건 원래 이토록 기쁜 거였지!


생의 의지가 고갈된 건강한 몸뚱이와 삶의 기쁨이 들어찬 너절한 몸뚱이 중 하나를 고르는 일, 나에게 여름이란 그런 것이다.


한주만 더 참으면 이 지겨운 여름도 간다.

기왕 못되게 군 거, 가지 말고 겨울까지 있어라, 가스비나 아끼게.


그러나 쓸모없는 여름은 기어이 갈 것이고 프린세스 장기들은 이번엔 춥다고 염병을 떨 것이다.

벌써 지겹다.


KakaoTalk_20240914_201842242_01.jpg?type=w1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583252850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장염 #장기 #여름 #긴병에효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밀빵을 먹으면 살이 안 찌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