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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Oct 18. 2024

[노파에세이] 어른이 청소년 소설을 왜 읽을까?


요즘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십대라서 청소년 소설로 써볼까, 하여 관련 소설을 우루루 빌려보았다.


빌리고 보니 <라마와의 랑데부> 빼고 전부 창비 책이다. 청소년 소설 시장은 창비가 잡고 있나 보다.



1.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 최정원

2. <나인>, 천선란

3. <스노볼>, 박소영

4. <터널 103>, 유이제

5.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클라크

 

<라마와의 랑데부>는 청소년 소설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책들과 함께 논할 책도 아니다.


청소년 소설이 대부분 장르 소설이다 보니, 장르 소설 거장이라는 사람(아서 클라크)의 책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여 봤던 것인데, 완전히 다르다.


일반인 수준에서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실제로 아서 클라크는 일반인이 아니다. <라마와의 랑데부> 관해서는 다음에 따로 쓰도록 하겠다.


* 청소년 소설 공모전 수상작

<라마와의 랑데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르 소설이다.


또 <나인> 외에는 전부 창비 청소년 소설(영어덜트 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한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다. 그래서 읽다가 문장 때문에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아아악, 눈 속에 거꾸로 처박아 놓기 전에 닥쳐!”나 “아아악! 미친 사이코! 살인마! 또라이!”처럼 욕설과 비속어를 직접 사용하여 여성 인물의 씩씩함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경우가 그랬다.


아니면 “어머니의 파리한 얼굴 위에 병든 육체만큼이나 지친 머리카락 한 가닥이 내려와 코와 입술을 갈랐다”나 “다형의 턱은 또다시 그 끝을 모르고 떨어졌다” 처럼 너무 힘을 주고 문장을 쓰는 바람에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거나 읽는 흐름이 깨지는 경우에 그랬다.


심지어 이런 문장도 있었다.

“다형이 왔니? 쿨럭쿨럭! 무, 무슨 약이니?” “기관지 확장제예요.” “쿨럭! 뭐라고?”


그래서 천선란 작가의 <나인>을 읽고 역시 프로 작가가 쓴 문장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 이야기 분석


그래도 모든 이야기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볼 수 있었다. 


1) 먼저 <스노볼>은 아포칼립스 시대, 액터와 노동자로 계급이 나뉜 사회에서 ‘스노볼’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욕망과 계급 갈등을 다룬다.


연예인, 리얼 버라이어티쇼, 출생의 비밀 등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화제성 높은 소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2) <터널 103> 역시 아포칼립스 시대에 무피귀라는 새로운 유형의 괴물을 등장시키며 터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 혈투를 보여준다.


빠른 좀비, 인간들 간의 생존 경쟁, 무피귀가 출현하게 된 비밀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3) <나인>은 식물의 씨앗에서 피어난 외계인 아이가 우연히 식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인 사건의 전모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설정만 들으면 현실성이 떨어져보이지만, sf적 이야기보다는 학교 폭력과 부모의 재력으로 나뉘는 아이들의 계급 등 현실의 문제를 밀도있게 다뤄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문장과 표현도 수준급인데, 다만 인물의 말과 행동의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청소년들의 대화가 많이 나오는 데도 정제되지 않은 말을 쓰거나 과도하게 멋을 부리는 문장도 별로 없어 안정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물의 심리를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해석해줘서 서른아홉인 내가 읽는 데도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외계인 아기의 가족 찾아주는 이야기라는 자칫 황당하게 들리는 소재를 통해 '차별'이라는 무거운 현실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야기하고, 성적 압박과 꿈, 인기 유튜버 등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다뤄 화제성도 높다.


무엇보다 쉽고 재밌고 감동적이다. 십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온기가 잔뜩 담겨있다.


* 청소년 소설을 왜 읽냐면...

청소년 소설엔 왜 환상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나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청소년들이 해결하기에는 현실의 문제가 너무 깊고 거대하여 환상의 힘을 빌리는 것 같다.

 

현실의 문제가 버거울 때, 권선징악의 원칙이 작동하는 세계를 보고 싶을 때 , 인간의 심연 같은 거 너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떄, 그럴 때 청소년 문학을 읽으면 만족스럽다.

모든 결말이 따뜻하고 시원하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61843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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