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지식을 조금 얻었고, 팔꿈치를 조금 잃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어야 우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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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똑똑하다. 그의 산문은 심장보다 머리를 더 울린다. 그러나 나는 심장이 찌르르해지는 게 더 좋으므로 나의 선호는 아니다.
그래도 덕분에 노아 루크먼의 ‘프로그램’ 개념도 알게 됐고,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철학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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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로서 나는 왜 이리 걷는 것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됐는데, 그건 우리 인류가 “무시무시한 이동 능력과 지구력”으로 살아남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치타처럼 빠르지도 않은 우리의 선조는 영양 한 마리를 잡아먹기 위해 땡볕에서 여덟 시간을 걷고 뛰었다. 영양은 결국 지쳐서 쓰러지고, 체념한 영양을 잡아먹는 게 우리 조상들의 사냥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릴라보다 훨씬 활동량이 많아도 질병에 더 잘 걸린다. 하루에 10km는 우습게 걷던 족속에게 고작 오천 보, 만 보 걷는 활동량은 성에 안 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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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DNA가 내 안에 맹렬하게 살아 있다. 나는 걸으려고 여행을 간다.
오늘은 안 걸어서 다쳤다. 알고 보니 내 자전거는 식인 자전거였다. 탈 때마다 내 살을 조금씩 뜯어 먹는다.
프릴있는 블라우스를 입고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내동댕이쳐지니 조금 서러웠다. 마흔에는 자빠지면 부끄러운게 아니라 서럽다는 것을 알았다.
서러운 나는 옆 동네 사는 작가님 집에 빵을 한 바구니 사서 놀러 갔다.
가서는,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꼬박 글을 쓰는데 왜 아무도 내게 돈을 주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당신은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자신에게도 잘 안 준다고 하셨다.
원래 그런 거였다.
동지의 불행에 안도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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