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서관 수업은 난이도가 높다. 저녁 7시반 에 시작하는 게 그렇고, 퇴근 시간 강남을 뚫고 가야 하는 게 그렇고, 진중하고 침묵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 보려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침묵은 질감이 있어서 검은 막처럼 머릿속을 까맣게 덮는다. 말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아찔해진다. 어떻게든 혀를 놀려 침묵을 메우지만 그런 말은 질이 낮다.
사서님 말로는 분위기가 좋은 거라는데, 워낙 친절한 분이므로 신빙성은 없다. 반응이 없는 수업은 사람들 앞에서 음악 없이 춤추는 것과 같다. 어쩔 수 없다. 열심히 추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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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확장된 인간관계 속에서 너무 많은 감정을 느꼈다. 기쁨보단 서러움이 많았다. 너무 서러워서 주먹으로 눈두덩이를 쓱쓱 문지른 날도 있었다. 나이 마흔에, 카톡 좀 늦게 보냈다고 운다고?
내가 생각해도 내 반응이 너무 과하여 잠시 살펴보니 혼자 흥분하고 혼자 서러워하고 있었다. 나만큼 흥분하지 않는 인간들이 미워서 울었다.
못된 인간들에게 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이 11월이어서 그랬다. 펑펑 노느라 소설 한 편도 완결하지 못한 채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이제야 눈치챘기 때문이다.
실은 감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다. 과도한 타닌 섭취가 체내의 감정 작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놔서 그랬다.
사실은 한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다. 귀신 주제에 잊히지도 않고 때마다 찾아와 나를 들쑤신다.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최대치로 모두 펼쳐 놓는다.
인간들에게 사과해야겠다.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요, 귀신 들려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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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주제에 속이 꽉 찬 사람처럼 상냥하게 웃었다. 고심 끝에 조언도 해줬다.
얘야, 너나 잘하거라.
그러나 다른 인간도 그럴 것이다. 두드리면 텅텅, 슬픈 소리가 나는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다니고 내 수업 시간에도 과묵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인간들에게 좀 더 친절히 대해줘야겠다. 불쌍하니까.
그리고 지금이 다시 9월이면 좋겠다. 9월 날씨니까.
해남에서 생각 없이 놀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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