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호랑이족과 멸치족, 그리고 나타샤

피지컬 아시아와 불법촬영

by NOPA

오늘은 카페에 체격이 유독 큰 남자 셋이 들어왔다. 카페는 남자고 여자고 죄다 초식동물만 상주하는 곳이기에 우리는 몽구스처럼 힐끔거리다가 그들이 외투를 벗는 순간 경계 발령을 내렸다.


세 명 중 두 명이 두꺼운 파카 안에 민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이 겨울에 그들이 굳이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은 이유는 온통 이레즈미로 뒤덮은 팔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뒤늦게 피지컬 아시아에 빠져 있어 다른 초식동물들과 달리 체격 좋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그래서 글을 쓰는 척 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다.


음료는 뜨거운 차 두 잔과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고, 그들 안에도 위계가 있어서 한 명이, 이거 뜨거워서 어떻게 먹으라고 준 거냐며 짜증을 부리자 다른 한 명이 귀찮은 내색도 안 하고 냉큼 카운터에서 얼음 컵을 얻어다 줬다.


그 사람만 유일하게 민소매 티를 안 입었는데, 나머지 둘의 시중을 군소리 없이 들고 옆에서 볼때기를 톡톡 치면서 함부로 대하는 걸 보니 위계가 낮아 문신 과시에 동참하지 못한 것 같았다.


대화는 주로 여자와 INTP에 관한 것이었고, 말은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자꾸 오빠 애 가지고 싶어, 라고 한다든가, 이 새끼는 질질 짤 때만 F고 그 외에는 전부 T야, 라고 하는 식이다. 이레즈미를 하고 수금가방(남성용 클러치 백)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는 것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니까 오전에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는 거겠지.


우리 어르헝바야르는 뭘 마실까. 카페는 갈까? 카페 가면 무슨 얘기를 할까. 아시안 게임에서 아디야수렌을 이긴 김하윤 선수는 대체 얼마나 센 걸까. 78kg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백 킬로에 육박하는 몽골 여자를 이겼지? 저 이레즈미들은 한손으로도 업어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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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하찮은 몸뚱이를 타고난 나는 호랑이로 태어난 족속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주먹과 어깨 골격을 보며 힘의 크기를 상상하며 내겐 없는 것들을 경외한다. 그러다 조금만 친해지면 “혹시 싸워보셨어요?”라고 물어본다. 내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쪽이 호랑이 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본 이레즈미들은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냥 돼지였다(미안합니다. 나는 멸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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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족속인 나는 어제 다이소에서 아주 얇은 드라이버를 하나 사서 핸드폰 커버에 키링처럼 달아 고정시켰다. 쇼핑몰 화장실에 불촬용 구멍이 많아서 하나씩 다 쑤셔 보려고 샀다.


너의 이름은 나타샤.

도라이버 계의 멸치인 너는 두려움을 모르지.

겁 없는 친구가 생겨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을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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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10411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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