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by NOPA


첫 문장 수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다. 모임에 친목이 끼어드는 순간 공부는 끝나버린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 조금 독재를 했었다. 단톡방에서 사담 안 됩니다아.. 오프라인 모임은 없습니다아아..


그리고 며칠 전, 3년 만에 처음으로 현실 세계에서 만남을 가졌다. 대부분이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3년을 함께 써오신 분들이라 이제 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했다. 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읽는 것도 진저리를 치는 시대에 매달 비싼 돈을 내가며 몇 년째 글을 써오는 것인지.



여덟 분이 오셨고, 다들 선량한 얼굴이었고, 다들 한 군데씩은 이상한 점을 갖고 계셨다. 한 분은 호수에서 오리를 잘 보기 위해 눈 영양제를 먹는다고 하셨고, 한 분은 수면 없이 위내시경을 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하셨고, 한 분은 공부와 사업과 육아와 출간을 동시에 하느라 잠을 잘 안 주무신다고 하셨고, 나는 아침마다 물구나무를 선다고 했다. 내가 제일 평범했다.


홍대 토박이인 패션 리더 한 분을 제외하곤 다들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고 더없이 수더분하고 선량한 인상이었는데, 말을 나눠보면 확실히 차원이 깊었다.


특히 한 분은 박완서 작가님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웃는 인상과 달리 상대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글도 그랬다. 한 번도 단순하지 않았다.



가장 이상한 분은 역시, 일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여 총 180편의 글을 쓴 분이다. 첫 문장이 무슨 공식 기관도 아닌데, 어떻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글을 쓸 수 있을까.


제주도도 가고 태국도 가고 아프기도 오래 아팠는데, 그 모든 날에 글을 쓰셨다. 뭐든 해내고 말 사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소소한 시상식을 준비했다. 너무 좋아하셔서 조금 부끄러웠다. 약소한 상품엔 약소하게 좋아하셔도 된단 말이지요.



*

가장 추운 날 만났는데, 여덟 명의 여자들이 두툼한 옷으로, 부드러운 인상으로 자신의 이상하고 날카롭고 깊고 복잡한 내면을 꼭꼭 숨긴 채 마치 평범한 사람들인 양 걸어가는 모습이 제일 웃겼다.


벗어요! 가면을 벗으라고!


그래서 우리가 글을 쓰는가 보다. 이 인자하고 부드러운 껍데기가 자주 답답해서.


글만 보는 것과 몸만 보는 것, 보통은 이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는데 나는 운이 좋아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의 글과 몸을 함께 봤다.


그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였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깊고 아름답고 기이한 내면의 기록이 얼굴과 합쳐지는 순간이 정말 특별했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의 내면의 성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사이라는 것은 이토록 특별한 관계구나.


*


쓰는 여자들은 다정하기도 하여 여덟 명이나 모이는 자리에 누구는 양말을 가져오고 누구는 비누를 가져오고 누구는 반지를 가져왔다. 다정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정한 걸까. 나는 내 한 몸 씻기고 입혀서 나오는 것만도 벅차던데.


*

사실 수업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매 순간 레터 내용을 생각해야 하고 피드백 쓰는 일은 체력적으로 굉장히 버겁다. 그래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아마 정신을 공유하는 사이가 돼 있을걸? 더듬이 같은 거 없어도, 가까이 가기만 해도 마음이 읽히는. 여덟 마리의 개미들.

오래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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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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