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초보, 겨울 설악산 총정리2 :가장 쉬운 코스

[노파 산행: 설악산 #5] 스님이 스님인 이유가 있다.

by NOPA
산행 날짜 : 2/11
날씨 : 체감 영하 10도
눈은 무릎 정도로 쌓임
코스 : 백담사-영시암-봉정암(1박)


#1. 설악산 정상 가는 가장 쉬운 코스

설악산 등산로가 진짜 많은데, 그중 지도 좌측 상단의 백담분소에서 시작해 봉정암을 거쳐 대청으로 가는 코스와 우측 상단의 설악동에서 들어오는 코스가 가장 쉽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 백담사-봉정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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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6:50

설악산 백담사까지는 보통 동서울 터미널에서 시외버스 많이 타는데, 고양시민인 저는 백석에서 첫차(6:50)를 탔습니다. 산악인들에게 이건 늦은 출발입니다. 당일 대청봉을 찍고 오는 미친 산악인 선생님들께서는 보통 집에서 두 시에 출발해서 오색이나 한계령에서 4시에 오픈하자마자 입장합니다. 그래서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버스가 15자리나 예매돼 있어 수요일 새벽부터 설악산 가는 사람이 많구나 했더니, 백담사에서 내리는 사람은 저 말고 한 명밖에 없고 나머지는 양양으로 빠졌습니다. 고양시에서 미친 사람은 저 앞의 아저씨와 저, 오붓하게 둘 뿐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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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인 저는 무조건 등산복 입은 사람을 따라갑니다


#2. 백담사

AM 9:40

아저씨를 따라 백담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들어갔더니 백담관광안내소가 나옵니다. 여기서 백담사까지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이거 안 타면 2시간가량 걸어 들어가야 해서 다 탑니다. 푯값은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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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출가하라는 선동포스터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백담사로 가는 다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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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로, 강점기 때 만해 한용운도 이곳에서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곳입니다. 명승지이니 당일치기 산행이 아니면 둘러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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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담사-영시암

10:40

여기서부터 진짜 산행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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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뭘 빈다. 비는 돌들이 지천이다.


그러나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영시암 도착. 이래서 백담사 코스가 쉽다고 하는 겁니다. 두 시간도 안 되어 뭐가 자꾸 나와줍니다.


영시암은 1709년 조선 후기 유학자 김창흡이 아버지를 기사환국(己巳換局)때 잃고 영원히 세상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세운 암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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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시암에서 등산객들 먹으라고 뜨신물에 커피믹스도 준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주는 날이 따로 있는가 봅니다. 서운해서 자리 깔고 구운 계란과 차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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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 화장실. 스님들이라 '님'자를 좋아하나 보다


그런데 영시암에서 점심 먹지 마십쇼.

여기서 30분만 더 걸어가면 올라가면 수렴동대피소가 나옵니다. 바람막이가 다 쳐진 취사실이 있어서 그곳이점심 먹기가 훨씬 좋습니다. 것도 모르고 한 데서 먹다가 입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화장실은 영시암과 대피소, 둘 다 재래식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외갓집 화장실이 재래식이어서 아주 못 견디겠다 정도는 아닌데, 이런 화장실은 통풍이 너무 잘 되는통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엉덩이로 찬 바람이 들이닥칩니다. 그건 영원히 적응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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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대피소


#4. 용아장성, 공룡능선, 쌍용폭포

PM 1:20

너무 놀았습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백담사 코스는 길이 쉬운 대신 풍경이 좀 답답합니다. 엔간한 서울 산들의 정상 고도가 넘는 500미터 이상 올라왔으니 시원하게 아랫동네를 보여줄 만도 한데, 가는 내내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에 막혀 있습니다.


처음엔 그 풍경이 근사하고 좋은데, 4시간 내내 볼라치면 답답해서 장도리로 조금 부수고 싶어집니다. 시원한 풍경은 해발 천 미터는 가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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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과 공룡능선. 지겨웠다고.


대신 이 코스에는 폭포가 많습니다. 만수폭포, 용소폭포, 관음폭포, 그 중의 제일은 쌍용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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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폭포. 얼었는데도 물소리 들림쌍용폭포. 얼었는데도 물소리 들림


듣기만 해도 발가락이 어는 느낌입니다. 추우니까 얼른 걸음을 재촉합니다.

참고로 겨울 등산은 안 춥습니다. 움직이는 동안에는. 멈추면 즉시 한기가 들기 때문에 멈추지 마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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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샘과 해탈고개 팻말이 나오면 거의 다 온 겁니다. 깔딱고개라고도 하는데, 깔딱고개는 산마다 다 있습니다. 봉우리 아래 5백 미터, 숨넘어가는 지점, 거기가 다 깔딱고개입니다(지리산은 코가 땅에 닿는다고 하여 “코재”).


#5. 봉정암(그리고 겨울산행 복장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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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봉정암 입구! 해발 천 미터가 넘어서니까 숨 막히는 능선들이 다 걷히고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기 시작합니다. 봉정암은 여기서 2백미터 더 올라가야 나옵니다.


PM 5:25

영시암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백담사에서 출발한지는 5시간 20분 만에 도착했습니다(영시암에서 논 시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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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보통 4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눈 쌓인 겨울산이기도 하고, 옷을 잘못 입어서 늦었습니다.


나는 왜 보드복을 입고 왔을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보드복을 보드탈 때만 입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드타다 넘어지고 구를 때 다치지 말라고 튼튼하고 무겁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무겁습니다. 멸쫀쿠 때문에 가방도 무거운데 옷도 무거워서 올라오는 내내 "멋있다" 보단 “무겁다”와 “괴롭다”라는 감각을 가장 많이 느꼈습니다.


신발도 잘못 신었습니다. 고어텍스라고 해서 샀더니 아니었습니다. 눈이 스며들어 양말이 다 젖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속았습니다. 원래 싼 걸 살 땐 속은 걸까 아닐까, 하며 룰렛하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해보는데, 속은 것으로 당첨!




물론 장비를 탓하는 것은 하수입니다. 스님들은 솜옷에 운동화를 신고도 이 산길을 날라다닙니다. 그러나 스님이 스님인 이유가 있으므로 중생들은 설악산처럼 큰 산을, 겨울에 오를 땐 웬만하면 가벼운 등산자켓(올록볼록한 패딩)과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고 오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비닐로 양말을 감싸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냥 고어텍스를 신으시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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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역국, 그리고 할머니 신도들

종무소에 가서 무사도착을 알리고(도착이 늦으니 가는 길에 전화왔었음) 배정받은 본채로 갔더니 나의 버킷리스트, 봉정암 미역국이 준비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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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받은 3호실 불이 꺼져있길래 벌컥 열었더니 먼저 와 계신 할머니 신도들이 성질을 부립니다. 춥다고. 문닫으라고.


불은 왜 꺼놓고 계시는 건데요? 라고 묻지 않습니다. 원래 할머니들은 추운 거, 밝은 거 싫어합니다. 그냥 네네 하면서 핸드폰 불을 켜서 주섬주섬 짐을 부리고 얼른 나가서 미역국에 밥부터 먹습니다.


해발 1200미터에서 뜨끈한 미역국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지극한 행복감이 몰려옵니다. 미지근한 물로 세수와 양치를 할 수 있고, 뜨거운 식수도 받아갈 수 있습니다. 화장실도 재래식이 아니라 신식입니다. 이 모든 것을 만원의 보시로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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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잠은 다 잤습니다. 할머니 신도들이 철야 기도하느라 무쟈게 들락날락하십니다. 힘드니까 아이고 아이고 하는 앓는 소리도 밤새 내십니다. 제가 일어나길 기다려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이냐 등등 호구 조사도 무쟈게 합니다.


갔다 왔어요~ 했더니 아이고 저런 사람을 왜 버렸을까 하며 더없이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있는 힘껏 불쌍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그려, 나 버림받은 여자여, 그러니 날 좀 불쌍히 여겨서 제발 잠 좀 자게 해줘요, 하는 메시지를 보내보지만 닿지 않습니다. 자기 손녀 서울대 간 것만 자랑합니다. 그게 뭐 대순가, 하는 얼굴을 지으니 더는 저를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있으면 뜨거운 미역국이 준비됩니다. 두 그릇을 먹고 떠납니다. 떠나기 전에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드립니다. 보시도 조금 더 합니다. 그래서 둘째 날 일정에서 안 죽고 살아돌아온 것 같습니다.


봉정암. 불자라면, 할머니 잔소리 쯤은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설악산에서 1박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공간입니다.


그러나 예민하고 미역국 풀때기 대신 싸갖고 온 고기를 실컷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시간 정도 더 위에 있는 소청 대피소를 예약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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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184970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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