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가장 전망 좋은 코스와 비용

[노파 산행: 설악산#6] 그리고 젊은 남

by NOPA

거짓말입니다.

산행일 : 2026. 2.12
하산 코스 : 대청-한계령
날씨 : 체감 영하 10도
눈은 130cm 정도 쌓임



# 1. 설악산에서 가장 뷰가 좋은 코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주 힘들지 않으면서 가는 내내 설악의 멋진 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코스가 한계령-서북능선 코스라는 건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참고로 바로 옆 오색 코스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초행자는 계단 오르다가 죽습니다. 한계령 코스는 해발 920m에서 시작하는데, 오색코스는 400m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1708m(대청)까지 올라야 합니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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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m라니! 북한산 백운대 837m도 아찔해 죽을 것 같은데 코스 시작점이 920미터라니!


문득 천 미터면 성층권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어림도 없습니다. 천 미터짜리 봉우리 열 개는 쌓아야 성층권에 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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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는 8,800미터. 설악산 대청봉을 다섯 개 쌓아 올린 높이입니다. 대체 얼마나 높은 것인가. 나는 얼마나 납작한 존재인가. 내가 터무니없이 하찮게 느껴집니다.


# 봉정암-소청-중청-대청

봉정암에서 소청, 중청, 대청을 갔다가 다시 중청으로 내려와 한계령 휴게소까지 걸리는 시간, 네이버 지도에서는 총 5시간 40분 걸린다고 알려줍니다.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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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시간 한 시간을 포함하고도 한 시간을 더 추가해 8시간으로 잡았으나 그것도 어림없습니다. 실제로 걸린 시간은 12시간입니다. 소청과 중청에서 한 시간씩 노닥거린 것 빼고도 꼬박 10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유독 느리게 걷고 눈까지 쌓여 더 느려졌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등산 초보에겐 온갖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 네이버 지도를 믿으면 안 됩니다.


# 설악산 새벽 산행

AM 6:30

산에서는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으므로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미역국도 뜨끈하게 먹고 양치도 하고 물도 챙기고 불당에서 삼배도 드리고 오만 것 다 참견하고 6시 반에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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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반, 해가 아니라 달이 뜬 시간


산에는 해 없으면 암흑입니다. 도시의 어둠과는 밀도가 다른 어둠입니다. 새카만 먹물 속을 헤엄쳐가는 기분입니다. 랜턴을 켜고 나무에 설치된 야광 표시물을 이정표 삼아 조심조심 발을 내딛습니다. 마침 봉정암부터 소청봉까지가 등산 난이도 최상의 길입니다.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어떻게 올라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빛이 저렇게 밝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설악산 새벽 산행 분위기


#2. 하산까지 마지막 편의 시설, 소청대피소

AM 7:20

한 시간쯤 오르니 소청대피소 도착. 일출 시각입니다. 서향이라 해는 못 봤지만 푸른 어둠 위로 태양의 붉은 층이 한 겹 덧씌워진 놀라운 풍광을 봅니다. 보다가 보다가 계 보고 싶어서 아예 대피소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와 초코바를 먹으며 하염없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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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 대피소는 시설이 꽤 잘돼 있습니다. 온 김에 젖은 양말 안에 새 양말을 하나 더 신으며 앞으로 눈길을 걷는 동안 동상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하산할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없습니다. 그냥 운에 맡기기로 합니다.


참고로 이곳이 대청을 거쳐 한계령 휴게소까지, 약 6시간(제 경우엔 10시간) 산행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마지막 편의 시설입니다. 중청 대피소가 공사 중이라 산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물을 1리터 이상 확보하기 바랍니다. 10시간을 5백 미리 한 병으로 버티느라 죽을 뻔했던 사람이 하는 말이니 들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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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청(그리고 중청 컨테이너)

AM 8:00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이 모든 여정의 목적인 대청을 보러. 해발 1600 미터에서 보면 파란 하늘 아래로 회색 대기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성층권 위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층권은 해발 만 미터에서 시작되고 경계면의 온도는 영하 60도입니다. 저건 그저 미세먼지가 꽉 찬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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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9:00

중청입니다. 중청 대피소를 새로 지을 동안은 이 컨테이너가 우리의 간이 대피소입니다. 꼭 공사 현장처럼 생겨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만 압시다.


들어가면 라디에이터 하나 밖에 없는데, 그걸로 천국입니다. 소청부터 대청까지는 무한 콧물 구간입니다. 엄청나게 추워서 콧물을 훔쳐도 훔쳐도 계속 흐릅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국밥 들이키듯 콧물을 들이킵니다. 그러니 라디에이터 하나만 있어도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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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너무 낮아서 젖은 발이 꽝꽝 얼었습니다. 진짜 발가락 잘라내겠다 싶어서 가방을 뒤져보니 핫팩 두 개가 나옵니다. 친한 언니가 핫팩 꼭 챙겨가라고 해서 챙긴 건데, 그이가 제 발을 살렸습니다.


양말 아래 핫팩을 넣으니 동상은 면했으나 양말 세 켤레에 핫팩 두께 때문에 걸을 때마다 아파죽겠습니다. 그래도 발가락 자르는 것보다 멍든 게 여러모로 나으니 그냥 참습니다. 그 덕에 다섯 시간이면 갈 거리를 9시간 걸려 갔습니다. 물은 반 병밖에 없습니다. 총체적 난국임에도 대망의 멸쫀쿠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습니다.


대청 찍고 다시 내려올 것이기에 따뜻하게 데워지라고 멸쫀쿠를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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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9:40 중청 출발

AM 10:00 대청 도착

AM 10:30 다시 중청 컨테이너 도착

AM 11:30 한계령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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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과 표지석 뒤 풍경


제 멸쫀쿠는 안전했고, 냄비를 들고 퍼먹는 사이 두 팀이 들어왔다가 나갔으며, 각 팀은 50대 남녀 한 쌍으로 이뤄졌고, 가족은 아니었고, 그럼 무슨 관계냐고 묻지 않았고, 음식 나눠 먹지 않았습니다.


냄비에서 멸쫀쿠를 한 숟가락 서 드실래요?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정 없이 각자의 음식에 코를 박고 먹었고, 그래도 마지막에 온 커플은 제게 꿀물 한 잔 나눠줬습니다. 물도 없고 음식도 없는 곳이기에 꿀물 한 잔은 굉장한 선의입니다. 부부는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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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계령으로 출발

#4. 서북 능선의 봄 같은 남자

서북 능선은 길이 정말 좋습니다. 경사도 그다지 심하지 않고 네 발로 기어오르는 구간도 없습니다. 고도는 여전히 천 미터가 넘어서 산 아래 펼쳐진 절경을 보며 끝없이 눈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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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자주 시선을 빼앗기는 제겐 한없이 일정을 지체시키는 쥐약 같은 구간이기도 합니다. 샛길로 잠시 빠져 벼랑 아래로 펼쳐진 절경을 열심히 카메라로 찍어대다가 아래서 등산객이 올라오길래 인사를 하고 다시 사진찍기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올라갈 것처럼 하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제게 다가와서는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20대 중후반 정도 돼 보이는 앳된 청년이었습니다. 날이 추워서 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더니 제가 자기 또랜 줄 알았나봅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모른 척하고 네, 하면서 핸드폰을 내밀었습니다.


청년은 핸드폰을 받아들더니 길을 벗어나 눈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눈이 많이 쌓여있는 줄은 본인도 몰랐기에 비틀대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쪽 각도에서도 찍어드릴게요, 하면서 또 저쪽 눈숲을 파헤치고 가서는 찰칵찰칵. 스무 장쯤 찍어댔습니다.


내가 이런 순수한 호감을 언제 받아봤더라? 스무 살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저를 기쁘게 하려고 비틀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청년의 순수한 호감. 저게 바로 젊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겐 이젠 그것이 없다는게 깨달아졌습니다. 아, 난 이제 젊지 않!


더 이상 젊지 않은 저는 청년에게 함께 내려가서 내장탕에 소주 한 잔 하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는 올라가야 합니다. 젊은이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늙은이는 뒤안길로 내려가고. 역시 그게 순리인 겁니다.


저는 내장탕을 어금니 아래로 짓씹으며 청년이 전해준 푸르고 순박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가슴 가득 품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순간을 위해 이토록 험한 곳에 와야했나 봅니다. 역시 영산은 다릅니다.


KakaoTalk_20260220_130857288_22.jpg?type=w1 스틱의 125CM 눈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깊었는데, 자기는 참 용감했지.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제 또래의 늙은 남자를 만났고, 그는 자신이 지금 귀때기청봉에서 올라오는 길이라면서 빙벽에 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우는 소리를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푸른 봄 같은 남자의 화사한 호의를 받았는데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늙은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운이 빠졌습니다. 누가 늘갱이 아니랄까봐 봉우리도 무슨 귀때기 같은 걸 올랐담(알고 보니 귀때기청봉은 설악산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이며, 그는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자랑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예, 예, 안전 산행하세요, 하며 저는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여자도 젊은 남자가 좋고, 남자도 젊은 여자가 좋고, 모두가 젊은 사람을 좋아하니 늙으면 빠르게 뒤안길로 사라져 주는 게 예의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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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옥의 능선 끝자락

제가 아무리 하산 중이라고 해도 능선을 탄 이상 제 앞에 펼쳐지는 것은 내리막길이 아닙니다. 끝없이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특히 서북 능선은 마지막 2킬로미터를 남겨두고는 오르내리는 경사가 제 정신이 아니게 가팔라서 마음이 급한 저는 대체 하산길인데 왜 내리막길이 아니냐고, 기껏 내려왔는데 왜 이런 오르막이 나오냐고, 육성으로 있는 힘껏 성질을 부렸습니다.(“미친 거 아니야? 미친 거 아니냐고!”라면서)


어차피 그 시간에 그곳에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기에 모든 욕을 소리 내어 해도 됩니다. 저는 너무 느렸고, 해가 빠지고 있었고, 마음이 무척 조급했습니다. 그래서 발자국을 따라 간신히 올라간 곳이 길이 없는 천길 낭떠러지임을 알았을 땐 이 미친놈들아, 여길 왜 와! 하면서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 이유로 마지막 세 시간 정도 찍은 사진은 시계 사진밖에 없습니다. 해와 경쟁하고 경사와 씨름하고 있어서 바빴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한계령 코스는 휴게소에 접한 2KM 구간이 가장 험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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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산 (한계령휴게소에서 집에 가는 법)

PM 6:40

간신히 내려왔더니 휴게소는 문을 닫았고, 버스는 없고, 카카오 택시도 없고, 겨우 지역 콜택시 번호를 알아내 양양 터미널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마지막 동서울행 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터미널까지 택시비는 4만5천 원이 나왔습니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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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
- 장갑 한 짝.
- 고글 안경 알(실컷 사와서 쓰려고 봤더니 어딘가에서 안경 알이 빠져 한 번도 못 씀)
- 스틱 한 쌍(휴게소 화장실에서 두고 옴)


KakaoTalk_20260220_163608004.jpg?type=w1 설악산 어딘가에서 구르고 있을 내 알들. 잘 있니?


원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 아닌데, 이날 유독 많은 것들을 설악산에 두고왔습니다. 장갑과 고글과 스틱을 잃고, 근처 터미널이 문을 닫아 양양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했습니다.


그 대신 바람과 눈과 풍경과 청년의 순박한 호감을 얻었습니다. 발가락도 안 잘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얻은 쪽이 더 큽니다.


아, 손가락 살도 조금 잃었습니다. 산에서 사진 찍는다고 호주머니를 자꾸 들락날락하면 저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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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1박2일 비용
시외버스 : 21,800(하행)+ 23,900(상행)
택시비 : 45,400
백담사 버스비 : 2,500
봉정암 : 10,000
[+10,000(보시) + 5,000 (미역)]
꿀물 : 2,000
방풍 고글 : 20,000
코펠 : 20,000
총 : 160,600원


설악산,
겨울에 가시려거든
한계령으로 올라가서
백담사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초짜에겐 그게 최선입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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