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미결정>>
(이 시리즈는 귤을 의인화하여 같이 생각해 보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말 오후,
아이에게서 휴대폰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테이블 위에 귤사람 하나가 누워(?) 있었다.
머리가 과하게 큰 그 귤은
사고가 몸보다 큰 쓰임이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양팔을 벌린 채
“나 아무 짓도 안 했어”라고 항변하는 듯한 자세.
그 표정은 체념과 희망 사이 어딘가에
모호하게 걸려 있었다.
머리 위 하얀 부분은
오늘치의 에너지 잔량 표시등 같았다.
거의 꺼져 가지만,
아직
완전한 방전은 아니라는 "마지막 깜빡임".
'아직은 버틸 수 있어'라는 오기처럼 보였다.
나는 그 귤을 한참 바라보았다.
굳이 껍질을 벗겨
그의 속마음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귤사람은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손톱으로 껍질을 밀어 넣자,
예상보다 단단한 저항이 느껴졌다.
조금 더 힘을 주자 비로소 속살이 드러났다.
한 조각 베어 물었을 때, 맛은 생각보다 시었다.
그 찰나 귤사람이 내게 묻는 듯했다.
“당신은 오늘 좀 예민한가 보네?”
대답 대신 귤 하나를 귤사람 쪽으로 밀었다.
대단한 결심이 담긴 ‘공유’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귤사람은 그 껍질을 까지 않았다.
잠시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다.
정적인 머뭇거림이 전부였다.
벗겨진 과육과 벗겨지지 않은 껍질,
먹힌 것과 남겨진 것.
건네려다 만 마음과 건네진 제스처가
같은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 날은
‘아무것도 티 내지 않기'로 보였다.
우리는 이 정막의 시간을 '감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껍질은 감정의 레이어이고, 과육은 본심이다.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경계가 살아있다는 뜻이며,
벗길 마음이 없다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상태다.
시큼한 과육은 이미 거기 존재하고 있다.
다만,
언제 그 껍질을 벗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오늘의 기록: 큰 머리 귤사람과 ‘아직 어색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을 털어놓을지 아닐지 재촉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