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 방이 사라졌습니다.

by 문제없다

이층 집에 이사 와서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부모님은 처음에 나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숨기고 바쁜 일이 있으니 큰 이모네 집에 잠시 가있으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혼자 집에 있어도 되는데 왜 굳이 이모네 집에 가 있으라고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시키는 대로 근처의 큰 이모네 집에 가서 사촌동생과 함께 있었다. 저녁이 되어도 어른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계속 시계만 쳐다봤다. 그러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이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그래서 부모님이 나를 이모네 집에 맡겼구나. 엄마는 언제 데리러 오지라는 생각만 했는데, 이모가 잠시 외출한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실감과 슬픔이 몰려와서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구체적으로 할머니를 다시 못 보게 된다던가 죽음이라는 게 무섭거나 슬퍼서는 아니었다. 그냥 말로 표현하기 힘들게 훅하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촌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나를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서 빨리 부모님이 돌아와서 나를 집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가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할머니의 사진이 낯설었다. 엄마는 흰색 소복을 입고 있었고 아빠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삼베로 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는데,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있는 것도 처음 봤고, 복작복작한 장례식장 가득히 담배연기와 화투가 부딪히는 소리,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엄마는 나를 기둥에 세워두고 손님맞이를 하느라 분주했다. 예전에는 장례식장이 너무 조용해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밤새 화투를 치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당연했다. 양가의 친척들과 지인들이 밤새 장례식장을 지켜줬고 그 사이에 많은 술병과 음식들이 오고 갔다. 지금은 흔하지 않은 5일장이었으니 길고 지루하고 복작거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잠들어 있다는 관이 나가는 날. 어른들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웃고 떠들면 안 되는 분위기라는 건 알았다. 나보다 4살 어렸던 친척동생은 눈치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장난치기 바빴는데 나는 그런 친척동생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아빠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가는 길. 고모들은 그때부터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용미리의 공동묘지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자리까지 관을 옮기는데 산 꼭대기라서 아빠의 친구 여럿이 관을 들고 산을 올랐다.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에 길이 미끄러웠고 진흙탕이었다. 아저씨들의 검은 양복이 금방 더러워졌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겨우 도착한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이 생경했다. 볼록볼록 한 묘지들이 이 산 저 산을 다 채우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집이 필요하구나. 모두 똑같은 모양의 집. 무수히 많은 죽은 자 들의 집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우리 집에 할아버지가 함께 살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안방을 내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내 좁은 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다시 내 방이 사라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난봉꾼이었다. 고향의 선산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땅을 도박으로 날리고 술만 마셨다 하면 할머니와 자식들을 때렸다. 게다가 여자 버릇까지 안 좋아 두 집 살림을 했으니 아주 골고루 갖춘 난봉꾼이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피해 자식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서울로 도망 다니기 바빴고, 할아버지는 귀신같이 가족들이 있는 곳을 찾아와 어김없이 다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힘으로 이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윽고 폭력이 멈췄지만, 할머니는 이미 결핵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자식들은 전국을 도망 다니느라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할아버지 또한 돈과 체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 발 붙일 곳이 없게 되었는데, 할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다시 자식들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난 진심으로 싫었다. 게다가 같이 살게 되다니. 왜 아빠는 저런 난봉꾼 할아버지를 받아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식칼을 들고 쳐들어와서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날 나와 열 살 터울인 막내 고모와 작은 방에 들어가서 꼭 껴안고 어서 할아버지가 사라지길 빌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아주 가끔 우리 집에 찾아오곤 했지만 밥만 먹고 금방 어딘가로 떠났다. 지금도 할아버지가 그 당시 어디에서 생활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때도 알고싶지 않았고 지금도 알고싶지 않다.


할아버지와 살면서 우리 집엔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좁은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며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는데 할아버지와 살게 된 뒤로 티브이는 안방으로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모이는 일은 줄어들었다. 좁은 내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것뿐이었고 그나마 부모님이 출근을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하니까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런 생활에도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할아버지와는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고 긴장됐다. 나에게 말을 걸까 봐 무서웠고, 말을 걸면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고개를 푹 숙여 가급적이면 눈을 마추지지 않으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밖에 나가 있었고, 함께 집에 있을 때는 각자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살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 반주로도 부족해서 어딘가에서 항상 만취가 되어서 들어왔고, 안방에서 코를 드르렁 골면서 세상모르게 잠들었다. 낮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로 집을 비웠기 때문에 항상 내 방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깥에서 쿵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하여 밖에 나가보니 만취가 된 할아버지가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오다가 방앗간 출입문으로 돌진을 해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제대로 발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어서 부모님에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었으니 알릴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방앗간 아주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어디 사냐고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몸이 굳어버렸다. 나서서 우리 할아버지라고 말을 할 용기도 없었고 그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에 너무 빠르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술렁거리고 경찰이 찾아오고 나서야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를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펑펑 울면서 엄마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너무 무섭고 몸이 떨렸다. 경찰서에 끌려간 할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술이 깨지 않아서 인사불성이었고 엄마는 나중에 돌아온 아빠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할아버지를 빼왔다. 방앗간의 부서진 출입문도 변상해드린다고 사과를 했다. 모든 게 정리되어 집에 돌아온 아빠는 왜 할아버지 여기 산다고 말 안했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무서웠다.

그날 이후로 난 할아버지를 더 싫어하게 되었고 빨리 할아버지와 따로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20년 이상을 함께 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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