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내향인 관찰 일지 05.
이것은 내가 지금처럼 남편학박사가 되기 전 이야기이다.
사실 고백컨대 이정도로 남편이 혼자서도 이미 행복한 내향인인 줄 모르고 만났을 때는 첫 만남부터 연애 초기 까지 머릿 속에 물음표가 정말 많았다.
첫 만남을 회상해보자면, 예상보다 (내 기준) 잘생기고 멀끔한 사람이 나와서 1차 놀랐고, 비슷한 점이 많아서 2차 놀랐다.
그렇게 서로가 마음에 들었던 첫 만남에서 8시간 정도 영화관 - 카페 - 저녁 식사 - 카페 를 거쳐 가며 열심히 대화를 했던 우리.
당시에는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밤 9시면 모든 곳이 영업을 끝내던 때였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썸타는 기간에 우리는 항상 9시에 칼같이 헤어졌었다.
그렇게 약 5번 정도 만났을 무렵, 구썸남 현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의문이 2가지 있었다.
이 남자는 왜 주중 하루, 주말 하루만 만나자고 하는가.
매주 주말에 만나고 오면 다음 주 주중에는 언제 볼까? 이렇게 카톡이 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납득 가능하다.
남편의 그 당시 일주일은 3일 운동, 2일 공부를 반복하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무려 2일을! 썸녀에게 할애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전지적 썸녀 시점에서는 ‘왜 이렇게 시간을 정해두고 만나려고 하지? 평소에 갑자기 보고 싶거나 그러지는 않나?’ 라는 의문이 솔직히 좀 있었던 것 같다.
이 남자는 왜 손잡기는 커녕 사귀자는 말도 하지 않는가.
오후 9시면 헤어져야 하는 제약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5번 만나면서 영화를 2번 보고 같이 심지어 술도 한번 마셨는데! 우리는 어른인데! 세상 의도 없는 미소로 지하철 역에 딱 데려다 주고 잘가! 00일에 보자! 라고 말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가는 패턴이 5번 쯤 반복되자 약간 얄미웠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알고 있다. 회식과 개인 약속을 모두 포함해도 1년에 술 한번 마실까말까 한 남편이다.
그런 남자가 고작 몇번 만난 여자 사람과 술을 마셨다?
자체로도 구썸남 현남편에게는 내가 ‘매우 극상 호감’ 이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지.
위의 두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아직 사귈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는건가?’ 라는 약간의 의심을 하긴 했지만 모종의 이유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럴 리 없다고 결론 지었다.
하지면 여전히 왜 그렇지??? 라고는 생각했고,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사실 이것은 좀 도박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냥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5번째 만남 직후에도 ‘잘 가! 00일에 보자!’ 하고 지하철을 타러 돌아간 남편에게 썸타는 기간동안 처음으로 (그렇다. 그 전에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서로 할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 전화를 냅다 걸었다.
뭐라고 첫 마디를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 나는 것은 구썸남 현남편의 빵터짐이었다.
내 첫 마디는 대충 너는 나랑 만날 생각이 있는거냐 이런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로 나는 그 남자에게 집 들어가지 말고 지하철 역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쪽으로 갔다.
그렇게 만나서 ‘너는 왜 나랑 만나자고 얘기 안 하냐고!’ 라는 울분섞인 고백(?)을 한 나. 씩씩 거리는 나에게 허허 웃으면서 먼저 말하려고 했다는 남편과 본격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이때 얘기로 남편을 놀리곤 한다.
하지만 남편의 내향인스러운 코멘트 하나가 항상 나를 스르르 녹게 만드는데, 그것은 ‘마음에 안들었으면 처음에 나가지도 않았고 만날 생각 없었으면 그렇게 자주 (?) 만나지도 않았어.’ 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엥 그게 무슨 로맨틱한 말이냐’ 싶으실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남편은 약속이 있는 날이 1년에 손에 꼽는 사람이다.
이제 그의 삶의 패턴을 알게 된 나는 그런 사람이 일주일에 2번씩 매번 내가 보자는 쪽에서 봐주고, 같이 술도 마셔주고 (이건 아직도 놀라움), 집가는 길에 멈춰서 기다려주고, 카톡 답장 5분컷으로 매번 3-4줄씩 써서 답장해줬다는 사실이 감동적일 따름이다.
그렇게 혼자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던 내향인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 연애 기간에도 계속 물음표가 생겼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특별한 다정함을 제대로 알게 되기 전까지 지속되는데…..
다음 글은 내가 연애 기간동안 가지고 있던 물음표들, 그리고 연애하면서 발견한 행복한 내향인 남자의 특별한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이다.